영화 · 2026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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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 하고 우주가 돌아왔다

삐딱선· 2026. 10. 10.· 2,939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칠 년 만에 다시 걸린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쥐 생각을 했다. 세 시간이 넘는 영화고, 등장인물이 세다가 포기할 만큼 많고, 중간에 우주가 두어 번 뒤집히는데도 그랬다. 내 머릿속 지분의 절반쯤은 계속 쥐였다. 창고에 처박혀 있던 밴의 계기판 위를 종종종 걸어가던 그 쥐 말이다. 그 밴 안에는 양자 터널이 실려 있었고, 쥐는 그 위를 걸어가다가 하필이면 조작 패널의 버튼을 밟았고, 그 바람에 오 년째 양자 영역에 갇혀 있던 아저씨 한 명이 뒷문 쪽으로 튕겨 나왔다. 그러니까 사라진 절반을 되돌리는 그 길고 복잡한 작전의 시작 버튼을 누른 것은 쥐다. (칠 년 전에도 이걸 알고는 있었다. 그때는 그냥 웃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왜 못 넘어갔는지 나도 모르겠다.)

쥐가 계기판 위를 지나가는 그 몇 초 동안 내 안에서는 혼자 중계가 시작됐다. '밟는다, 저 걸음걸이는 무조건 밟는다, 안 밟으면 내가 들어가서 밟는다.' 그리고 밟았다. 그런데 영화는 그 길로 쥐를 버린다. 다시는 안 보여 준다. 이름도 없고, 돌아보는 컷 하나 더 붙여 주는 일도 없고, 엔딩 크레디트를 끝까지 훑었는데 (나는 원래 끝까지 훑는 사람이다) 그 생명체에 관한 표기는 한 줄도 없었다. 우주 지분이 최소 삼 퍼센트는 되는 분께 이러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걱정이 시작됐다. 그 쥐는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 밴은 창고에 오래 세워져 있었고 쥐는 그 안에서 나름대로 생활을 꾸리고 있었을 텐데, 어느 날 발밑에서 빛이 터지고 사람 하나가 튀어나가 뒷문에 부딪혔다면 그건 쥐 입장에서 거의 천재지변이다. 나는 이 부분을 정말 진지하게 걱정했다. 놀라서 어디 틈으로 쏙 들어간 다음 한동안 안 나왔을 것이다. (영화에 그런 장면은 없다. 없는데 나는 봤다.) 아저씨는 정신을 차리고 창고 직원을 불러서 자기 짐까지 챙겨 유유히 나가는데, 쥐에게는 아무도 아무 설명을 해 주지 않는다.

창고 직원 쪽도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그 밴은 버려진 채로 발견되어 창고에 들어왔고, 오 년 가까이 거기 있었다. 그 오 년 동안 아무도 계기판의 버튼을 한 번 눌러 볼 생각을 안 했다는 뜻이다. 먼지떨이로 대시보드를 훔치다가 손등이 스치기만 했어도 아저씨는 사 년쯤 일찍 나왔을 것이고, 그랬다면 세상은 훨씬 덜 슬픈 상태에서 다시 시작됐을 것이다. 세상을 구하는 일이 '아무도 그 버튼을 안 눌렀다'와 '쥐가 눌렀다' 사이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 이걸 깨닫고 나서 나는 한동안 화면을 못 따라갔다.

이 영화의 이번 제목에는 '앙코르'가 붙어 있다. 나는 이 말도 한참 들여다봤다. 앙코르는 원래 다 끝나고 불이 켜지려 할 때 객석 쪽에서 손뼉을 쳐서 한 번 더 시키는 것이다. 요청은 밑에서 올라가고, 무대는 못 이기는 척 다시 나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대 쪽에서 먼저 앙코르를 외쳤다. 포스터에는 "극장에서 다시 한번 어셈블"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런 문구에는 정확한 이름을 붙여 줘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이것을 '이미 아는 사람에게만 작동하는 초대장' 계열로 분류하고 싶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여섯 글자고, 아는 사람은 저기에 칠 년을 욱여넣는다.

아저씨 쪽 사정도 따져 보면 꽤 딱하다. 바깥에서는 오 년이 지났는데 그에게는 다섯 시간이었다. 다섯 시간 만에 세상이 반으로 줄어 있는 것을 본 사람이, 어벤져스 본부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다들 모여 있는 방 한가운데서 양자 영역이 어떻고 시간이 어떻고 하는 말을 꺼낸다. 그 방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그 오 년을 하루씩 다 통과한 사람들이다. 다섯 시간짜리 사람이 오 년짜리 사람들 앞에서 처음 입을 떼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방에서 아무도 그를 비웃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 여기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스틸컷

그다음부터는 다들 아는 이야기다. 흰 양자 수트를 맞춰 입고, 둥글게 서서 장갑 낀 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각자 자기 과거로 흩어진다. 나는 이 손 모으는 컷을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 저 손들 가운데 어느 것도 쥐보다 먼저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는 생각. 지구에서 제일 센 사람들이 모여 세운 계획의 1단계가 '우연히 살아 돌아온 사람의 제보'였던 셈이다. 그걸 알고 보면 이 거대한 작전이 갑자기 좀 귀여워진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포스터

이번 판에는 사 분가량의 영상이 더 붙었다. 끝에서 스티브와 페기가 둘만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그 조용한 장면에, 티브이에이 제복을 입은 로키가 끼어들어 당황한 두 사람에게 자기가 돕겠다고 선언한다. 지하 벙커에서는 배너와 둠이 마주 앉고, 어두운 화면에서 망치 소리가 들리고, 가면이 나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로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에 좀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에 누가 다시 들어오는 장면이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칠 년이라는 시간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쥐 생각을 했다. 이 영화가 세 시간 넘게 들여 보여 주는 것은 결국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한 사람들의 목록이고, 그 목록의 맨 앞줄에 아무것도 모른 채 계기판을 밟은 발 네 개가 있다. 그 쥐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끝내 모른다. 모르는 채로 어딘가 틈에 들어가 한참 숨어 있었을 것이고, 세상이 다시 반쯤 채워진 날에도 그냥 밴 어딘가를 종종종 걸어 다녔을 것이다. 세상을 돌려놓는 데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한 쪽이 그 일을 기억조차 못 한다는 것, 나는 그게 이 긴 영화가 품고 있는 가장 다정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아보지 못한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이 영화는 대사 한 줄 없이 쥐 한 마리로 해치운다. 그래서 어셈블이라는 구호가 저렇게 오래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이라는 말은 센 사람들끼리 뭉치라는 뜻이 아니라, 누가 어디서 뭘 밟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로 다 같이 한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에 가깝다. 적어도 나는 이번에 그렇게 읽었다.

보고 나서 책상 밑에 엉켜 있는 멀티탭 스위치들을 하나씩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안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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