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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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한 사람

즉흥한모금· 2026. 10. 10.· 3,129자

미리 말한 사람은 대개 보상받지 못한다. 틀리기를 바랐던 말이 맞아 버리면, 세상은 그에게 사과하는 대신 조용해지기 때문이다.

2019년에 나온 영화가 칠 년 만에 다시 극장에 걸렸다. 사 분이 붙었고 화면이 조금 밝아졌다. 절반이 사라진 세계에서 남은 사람들이 그 절반을 되돌리는 이야기다. 세 시간이 넘고 사람이 많이 나온다. 나는 그중 한 사람만 보려고 한다. 토니 스타크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스틸컷

그는 오래전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경고해 온 사람이었다. 그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말한 날이 왔다. 절반이 사라졌다. 그가 옳았다.

우리는 이런 경우에 한 장면을 기대한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일어나 그 말이 맞았다고 인정하는 장면이다. 늦었지만 인정받는 장면. 그 장면이 있어야 앞의 고생이 말이 된다고 우리는 믿는다. 오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영화가 그 장면을 넣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장면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알아도 모인 자리에서 그 말을 꺼내지 않는다. 대신 화제를 바꾸고, 각자 할 일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흐릿하게 만든다. 영화는 그 흐릿함을 고쳐 주지 않는다. 고쳐 주는 영화를 나는 믿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그를 우주에 띄워 놓고 시작한다. 타이탄에서의 싸움이 끝난 뒤 그는 우주선에 고립돼 있다. 산소가 줄어든다. 그는 부서진 헬멧을 집어 들고 거기에 남은 말을 녹음한다. 받을 사람이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말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포스터

나는 이 장면에서 화가 나지 않았다. 부당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세상이 원래 이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경고한 사람이 제일 먼저 혼자가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경고를 들은 쪽은 경고한 사람을 피곤해하고, 일이 터지면 각자 자기 몫의 재난으로 바빠진다. 사과할 사람은 그때 이미 사라지고 없다.

영화가 넣을 수 있었는데 넣지 않은 거짓말이 하나 더 있다. 구조된 그가 극적으로 회복해 곧장 싸움에 다시 나서는 전개다. 영웅물은 그 전개를 좋아한다. 쓰러진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만큼 보기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돌아온 그는 싸움에서 물러나 교외에 집을 짓고 산다. 오 년 동안이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오 년 동안 그가 무엇을 하지 않는지를 보면 된다. 그는 억울해하지 않는다. 자기가 옳았다고 떠들고 다니지 않는다. 사라진 세상을 두고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아내와 딸이 있는 교외의 집에서 그는 그 오 년을 보낸다. 자기 인생이 망가졌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버틴다는 말을 사람들은 이를 악무는 일로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버틴다는 건 대개 저녁을 차리고, 같은 시간에 자고, 다음 날 또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오 년을 채운 사람에게 그 오 년은 포기가 아니다. 살아 낸 분량이다.

영화는 그 오 년을 길게 보여 주지 않는다. 몇 장면으로 건너뛴다. 나는 그 생략도 맞다고 본다. 버틴 시간은 원래 밖에서 보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실은 제일 많은 일이 일어난 시간이다. 그걸 설명하려 드는 영화가 오히려 그 시간을 망친다.

그러다 옛 동료들이 찾아온다. 되돌릴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선뜻 나서지 않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가진 것을 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망설임이 중요하다. 그는 체면 때문에 망설이지 않는다. 손에 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의 망설임이다.

그는 그날 밤 혼자 계산을 해 본다. 사라진 아이의 사진을 보고, 책상 앞에 앉고,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식을 끝까지 밀어 본다. 그리고 답이 나온다. 답이 나왔으니 그는 간다. 영화는 여기서 비장한 연설을 넣지 않는다. 계산이 맞았으니 움직인다. 그것이 평생 이 사람이 일해 온 방식이다.

싸움은 길고 시끄럽다. 그 와중에 그는 마지막 선택을 한다. 상대가 쥐고 있던 여섯 개의 돌을 자기 쪽으로 옮겨 붙이고, 자기 이름을 한 번 말하고, 손가락을 튕긴다. 그 힘을 사람의 몸으로 받아 낼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알고 했다.

사람이 감당 못 할 일을 알면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를 움직이는 건 용기가 아니다. 계산이 끝났다는 사실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뿐이고, 하지 않으면 벌어질 일을 이미 한 번 봤고, 그래서 손이 먼저 간다. 그는 오 년 전에 그 일을 한 번 막지 못했다. 두 번째 기회는 대개 이런 모양으로 온다. 유예 기간도 없고 고민할 시간도 없는 모양으로 온다.

대단한 대사를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은 십수 년 전 자기 입으로 처음 했던 문장이다. 나는 아이언맨이다. 새로 지어낸 말이 아니라 처음에 한 말을 한 번 더 한 것이다. 사람이 끝에 가서 꺼내는 말은 대개 그렇다. 평생 하던 말을 한 번 더 한다.

그가 옳았다고 선언하는 자리는 끝내 마련되지 않는다. 그를 피곤해하던 사람들이 모여 사과하는 장면도 없다. 영화는 그 자리를 비워 둔 채로 넘어간다. 나는 그 생략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끝까지 그 말을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단한 장면이 아니다. 대단하지 않아서 좋았다.

사과를 기다리는 일에 대해 하나만 더 적어 둔다. 기다리는 동안 사람은 자기 인생을 저당 잡힌다. 받아야 할 것이 있다고 믿으면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기다리지 않았다. 받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오 년을 살았고, 필요해졌을 때 돌아왔고, 할 일을 하고 끝냈다. 억울함을 품고 사는 것과 억울함을 지고 사는 것은 다르다. 그는 뒤쪽이었다.

칠 년 만에 덧붙은 사 분은 이 이야기가 아직 안 끝났다고 말한다. 끝났다고 믿고 지낸 쪽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 사 분도 이 사람을 되살려 주지는 않는다. 되돌릴 수 있는 것과 되돌릴 수 없는 것의 선은 그대로다. 영화가 그 선만은 건드리지 않은 점을 나는 높이 산다.

옳은 말을 먼저 했다가 혼자가 되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과를 기다려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과가 온다고 말하지 않겠다. 대신 이 말은 할 수 있다. 사과를 받지 못한 오 년도 분명히 산 시간이다. 집을 짓고, 밥을 하고, 다음 날 또 일어난 당신의 오 년 말이다. 그걸로 충분하다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그 시간은 없어지지 않는다.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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