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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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잃고 혼자 길을 떠난 분께

심장쫄깃러· 2026. 10. 10.· 2,850자

이분께 먼저 이 말씀부터 드리고 싶었어요. 그 오 년 동안, 얼마나 혼자셨을까요. 누가 옆에 있었더라도 결국 혼자셨을 거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2019년에 나왔던 이 영화가 '앙코르'라는 이름을 달고 2026년 9월 23일에 다시 극장에 걸렸습니다. 안소니 루소와 조 루소가 연출했고, 사라진 절반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오늘 읽고 싶은 분은 활을 쓰는 사람, 클린트 바튼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분을 '복수에 빠져 사람을 해치고 다닌 사람'으로 기억하실 거예요. 그 오 년 동안 그가 한 일만 떼어 놓고 보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요,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스틸컷

이분의 행동을 한번 볼게요. 영화의 맨 처음, 이분은 집 마당에서 딸에게 활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의 자세를 봐 주고, 잘 맞혔다고 칭찬해 주고, 가서 화살을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아주 평범한 오후예요.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전부 사라지고 없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하고 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꼭 보셨으면 합니다. 이분은 그때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곁에 서서, 자세를 고쳐 주고 있었어요.

그다음 오 년 동안 이분은 집에 머물지 않습니다. 뉴욕에서, 멕시코에서, 도쿄에서, 범죄 조직을 찾아다니며 혼자 싸웁니다. 이름도 바꿔서 다른 사람처럼 다닙니다. 많은 분들이 이걸 보고 '사람이 변했다'고 하실 텐데요, 저는 이분이 변했다기보다 멈추지 못하신 거라고 봅니다. 슬픔은 갈 곳이 있어야 하는데, 사라진 사람에게는 갈 수가 없어요. 그러면 그 마음은 움직일 수 있는 쪽으로 갑니다. 영화는 그 오 년을 길게 보여 주지 않지만, 아마 이분은 그 집 마당에 다시 서는 일을 가장 무서워하셨을 거예요.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이분이 그 오 년 동안 한 일은 사람을 해치는 일이었고, 그건 어떤 슬픔으로도 정당해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일과 행동을 눈감아 주는 일은 다른 일이에요. 저는 이분 편에 서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 사람이 왜 그랬는지를 아는 것과, 그래도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은 같이 가야 하거든요.

이제 장면 하나를 같이 볼게요. 비 내리는 도쿄의 밤, 오래된 동료 한 사람이 이분을 찾아옵니다. 그 사람은 이분을 말리지 않고, 혼내지도 않습니다. 이 사람들을 다 없애도 가족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 다음, 이렇게 말해요. "더 빨리 주지 못해서 미안해." 저는 이 한마디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우리는 이런 사람에게 '그만해',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아'라고 말하거든요. 그 말에는 '옳고 그름'만 있고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이분이 들은 말에는 사과가 들어 있었습니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말이요.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포스터

그 자리에서 이분은 희망을 주지 말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을 오래 생각했어요. 희망이 싫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한 번 무너져 본 사람은 희망이 무섭습니다. 기대했다가 또 없어지는 일을 한 번 더 겪을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은 보고 싶다는 말도, 무섭다는 말도, 도와 달라는 말도 끝내 하지 않습니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아서 못 하는 거라고 저는 봅니다. 이건 이분이 모질어서가 아니에요.

그래도 이분은 그 손을 잡고 돌아옵니다. 동료들이 세운 계획에 들어가서, 같은 옷을 입고, 둥글게 서서 손을 모읍니다. 오 년 만에 다시 누군가와 같은 편에 서신 거예요. 저는 이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사람이 다시 사람들 쪽으로 걸어 나오는 데에는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자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 하나가 필요하거든요.

그 길에서 두 사람은 한 행성에 도착하고, 거기서 하나를 내놓아야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분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섭니다. 자기가 그래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다투고, 결국 그 자리는 동료가 가져갑니다. 이분은 혼자 돌아와, 그 소식을 모두에게 전하는 일까지 해내야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이분이 또 한 번 혼자가 되셨다고 생각해요. 이 이야기는 여기서 가볍게 지나가면 안 되는 자리라서, 저는 길게 풀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중요해요. 모든 일이 끝난 뒤 이분은 아내의 전화를 받습니다. 동료의 장례에 다녀오고,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마당에서 가족을 다시 만납니다. 영화는 여기서 크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분께 꼭 필요했던 것이 가족이 돌아온 그 사실만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다시 누군가의 곁에 서는 자리, 자세를 고쳐 주고 잘했다고 말해 줄 사람이 앞에 있는 자리, 그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필요했던 거예요. 오 년 동안 이분이 잃었던 건 사람이기도 했지만, 자기가 곁에 있어 줄 상대이기도 했습니다.

혹시 주변에 이런 분이 계신가요. 큰일을 겪고 나서 오히려 더 바빠진 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분, 괜찮냐고 물으면 늘 괜찮다고 하는 분이요. 그런 분께는 힘내라는 말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잘 닿지 않습니다. 그 말들은 다 '언젠가'를 말하는데, 그분은 지금이 힘들거든요. 대신 이렇게 한번 물어봐 주세요.

요즘 바쁘신 건 알아요. 바쁜 거 말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 물음에는 평가가 없습니다. 그만하라는 말도, 괜찮아질 거라는 말도 없어요. 그냥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뜻만 있습니다. 사람은 그 한마디에 발을 멈추고, 멈춘 자리에서 겨우 뒤를 돌아봅니다. 오 년을 혼자 다닌 사람도 결국 그런 한마디에 손을 잡았어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이 글은 전문가의 견해가 아니라 한 관객의 감상이며, 실제 사람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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