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돌아간다는 말의 두 가지 뜻

조용한근육맨· 2026. 10. 10.· 3,031자

우리는 '되돌리다'와 '돌아가다'를 자주 섞어 쓴다. 그러나 둘은 다른 일이다. 되돌리는 일은 세계를 원래 상태로 복구하는 일이고, 돌아감은 한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찾아 드는 일이다. 전자는 여럿이 힘을 모아 해낼 수 있지만, 후자는 끝내 혼자 하는 일이다. 나는 이 영화가 그 둘을 끝까지 구분했다고 생각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적어 보려 한다.

이야기는 절반이 사라진 뒤의 오 년에서 시작한다. 2019년에 나온 영화가 2026년 9월 23일 '앙코르'라는 이름으로 다시 극장에 걸렸고, 끝부분에 사 분가량의 영상이 더해졌다. 안소니 루소와 조 루소가 연출했다. 내가 이 글에서 따라가려는 인물은 스티브 로저스 한 사람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스틸컷

오 년 뒤의 그는 싸우고 있지 않다. 사라진 사람들을 잃고 남겨진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그가 이끌고 있다. 한 참석자가 오 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결국 사라진 사람들 이야기만 하다 울어 버렸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서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동료들이 세운 계획에 합류해 과거로 간다. 여섯 개의 돌을 모으고, 되돌리고, 마지막으로 그 돌들을 각각 있던 자리에 돌려놓는 일을 맡는다. 그리고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질문은 이것이다. 세계를 되돌린 사람이 왜 자기 자리로는 돌아오지 않았는가.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 이 영화는 되돌림과 돌아감을 처음부터 다른 일로 그려 놓았다. 그 증거가 상담 모임 장면이다. 그는 거기서 가장 상식적인 말을 한다.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 틀린 데가 없는 말이다. 그러나 정확하지도 않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누군가 함께 봐 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가장 하기 어려운 사람이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 주기만 한다. 같은 말을 그가 동료에게 건넸다가 가볍게 되받는 대목도 있다. 나아가라는 말이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말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는 그렇게 한 번 더 짚어 둔다.

그가 그 말을 하기 어려운 사람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에게는 돌아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인물들은 잃어버린 오 년을 되찾으면 제자리로 간다.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하던 일이 있다. 그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그는 이미 한 번 자기 시대를 통째로 잃고 여기에 도착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는 오 년 전부터가 아니라 훨씬 오래전부터 돌아가지 못한 채였고, 그러니 세계가 복구되어도 그의 몫은 복구되지 않는다.

둘째, 그래서 이 영화는 되돌리는 일의 마지막 절차를 그에게 맡긴다. 이것이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설계다. 훔쳐 온 여섯 개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임무 말이다. 되돌림이라는 작업은 결과만 챙기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빌려 쓴 것을 원래 있던 시점으로 하나씩 가져다 두는 데까지 가야 끝난다. 영화는 그 지루하고 사무적인 절차를 공들여 남겨 두었고, 그 일을 맡을 사람으로 돌아갈 자리가 없는 인물을 골랐다.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을 하러 간 사람이, 돌아오는 길에 자기도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여기서 한 사람을 더 말해 두어야 한다. 이 이야기에서 되돌림의 값을 치른 쪽은 그가 아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우주선에 고립된 채 부서진 헬멧에 남은 말을 녹음하던 사람, 토니 스타크다. 마지막 전투에서 그가 한 선택으로 세계는 복구되고, 그 대신 그는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되돌림을 공짜로 주지 않았다. 되돌린 자와 돌아간 자를 다른 사람으로 두고, 둘 사이에 돌아가지 못한 한 사람을 세워 둔 것이다. 나는 이 배치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 포스터

물론 도피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남은 사람들에게는 아직 수습할 일이 많은데 그는 자기 행복을 택해 떠났다고, 그렇게 읽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이 선택을 도피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는 떠나기 전에 자기가 맡은 일을 전부 끝냈고, 마지막에 노인이 된 모습으로 동료들 앞에 직접 나타나 제 몫을 넘겼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책임을 두고 간 사람의 순서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간 곳은 아무도 그를 영웅으로 알아보지 않는 시간이다. 도피라면 더 편한 곳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다시 읽어 본다. 돌아온 그는 노인이 되어 있고,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다. 그리고 영화는 오래전에 지키지 못한 약속 하나를 마저 보여 준다. 거실에서 두 사람이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 '보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고생한 사람이 마침내 받을 것을 받았다는 식으로.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다. 보상은 밖에서 누군가 주는 것인데, 이 장면에서 그에게 무엇을 주는 사람은 없다. 그는 받은 것이 아니라 간 것이다. 그러니 이 장면의 이름은 보상이 아니라 돌아감이다.

앙코르판은 바로 이 대목에 손을 댔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순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다른 질서에 속한 한 사람이 들어와 자기가 도우러 왔다고 말한다. 칠 년 동안 이 장면은 닫힌 문이었다. 이제는 문이 열려 있다.

이 변경을 두고 완결된 이야기를 흔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아쉬움은 이해할 만하다. 다만 나는 이 덧댐이 앞의 구분을 무너뜨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 가지를 분명하게 만든다. 돌아감은 도착해서 끝나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돌아간 자리에도 문은 있고, 누군가 그 문을 두드리며, 그러면 그는 또 한 번 무엇을 할지 정해야 한다. 자기 자리에 도착한 사람에게도 그다음 날은 온다. 그 점에서 이 사 분은 앞의 세 시간이 말해 온 것을 뒤집기보다 한 칸 더 밀고 간다.

요컨대 이 영화는 세계를 되돌리는 이야기의 끝에 한 사람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붙여 놓았고, 둘을 섞지 않았다. 되돌림은 여럿이 했고 돌아감은 혼자 했다. 되돌림은 한 번에 끝났고 돌아감은 평생이 걸렸다. 이 영화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무너진 것을 복구하는 일과 무너진 자리에서 한 사람이 자기 삶으로 돌아가는 일은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앞의 일은 끝낼 수 있지만 뒤의 일은 대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는 것이다.

댓글

0 / 1,000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어벤져스: 엔드게임 앙코르의 다른 리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