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 2026
연애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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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는 조정장이 없다
연애전쟁을 처음 소개한 기사들은 이 프로그램을 이혼숙려캠프의 미혼 커플 판이라고 불렀다. 같은 방송사가 만들었고, 진행자 한 사람이 두 프로그램에 모두 나온다. 여섯 번째 회에서는 그 진행자가 어느 커플을 향해 이혼숙려캠프에도 못 나올 거라고 소리치는 장면까지 있다. 그러니 두 프로그램을 나란히 놓는 것은 내 발명이 아니다. 질문은 이것이다. 헤어질까 말까를 정하는 자리를, 두 프로그램은 각각 어떻게 지었는가.
이혼숙려캠프: 절차가 있는 이별
이혼숙려캠프는 2024년 4월에 파일럿으로 시작해 그해 8월부터 정규로 방송되고 있다.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들이 기수 단위로 모여 합숙하고, 세 단계를 지난다. 남편 측과 아내 측 가사조사관이 각자의 일상을 따로 찍어 문제를 꺼내 놓는 가사조사, 심리상담사가 들어오는 심층상담, 그리고 변호사와 판사가 앉는 최종조정이다. 캠프의 소장이 조정위원을 겸한다. 이름부터가 법의 말이다. 숙려, 조사, 조정.
이 절차가 무엇을 하는지는 열다섯 번째 기수의 한 부부에서 가장 잘 보인다. 이 부부는 이미 재산을 나누고 따로 살고 있었다. 남편은 이혼을 원하지 않았고, 아내는 이혼을 잘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최종조정에서 남편은 이미 준 위자료를 돌려 달라고, 재산 분할도 다시 하자고 요구했다. 판사가 중재했고, 아내가 양보해 천만 원을 돌려주는 것으로 조정이 끝났다. 아내는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고 했고,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조정 자리에서 실제 이혼을 결정한 부부가 됐다. 끝난 뒤 인터뷰에서 아내가 남편을 두고 한 말을 옮긴다.
잘 못 살 것 같은데 잘 살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만 원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가 프로그램 바깥에서도 효력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판사와 변호사가 앉아 있고, 재산 분할과 위자료가 논의되고, 결정은 법의 언어로 적힌다. 이혼숙려캠프의 마지막 선택은 텔레비전 안의 의식이 아니라 실제 이혼의 예행연습이다. 그래서 느리다. 합숙이 있고 단계가 있고, 숙려라는 말 그대로 시간이 있다.
연애전쟁: 절차를 발명해야 하는 이별
연애에는 그런 것이 없다. 헤어지는 데 판사가 필요 없고 나눌 재산도 대개 없다. 그래서 연애전쟁은 절차를 처음부터 지어야 했다. 6월 23일에 시작해 스무 번째 회로 끝날 예정인 이 프로그램의 틀은 이렇다. 헤어지기 직전의 커플이 스튜디오에 직접 나온다. 두 사람이 자기들이 찍힌 영상을 본다. 진행자 셋과 그 회의 특별 외교관이 남자 쪽과 여자 쪽으로 갈라서서 대신 협상한다. 조건이 오간다. 끝에 두 사람이 각자 고른다. 계속 만난다, 아니면 헤어진다. 이 모든 것이 한 자리에서, 한 회 안에 일어난다.
외교관, 협상, 조건, 결렬. 연애전쟁이 빌려 온 말은 법정이 아니라 외교의 말이다. 법이 없는 곳에서 구속력을 흉내 내는 가장 가까운 제도가 외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흉내가 어디까지 가는지는 열한 번째 회가 보여 준다. 부산에서 광고대행사를 같이 하는 커플이었다. 회사를 만든 것은 여자인데 대표는 남자였고 여자는 이사였다. 지분이 없었고, 월급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여자는 영상 속에서 내가 네 직원이냐고 물었다. 협상 끝에 남자는 여자에게 지분 40퍼센트를 보장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진행자들은 두 사람이 헤어지기를 바랐고, 두 사람은 둘 다 계속 만나기를 골랐다. 진행자들은 축하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장면은 이혼숙려캠프의 천만 원과 나란히 놓인다. 둘 다 돈을 적는다. 그러나 천만 원은 법이 집행하고, 지분 40퍼센트는 약속이 집행한다. 연애전쟁의 조건들은 종이에 적히지만 그 종이를 들고 갈 데가 없다. 협상이 아예 깨지는 회도 있다. 여섯 번째 회의 커플은 남자가 유학 다녀와서 결혼하기를, 여자가 일주일에 몇 번을 조건으로 냈고, 진행자가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이제 그만이라는 카드를 들어 협상을 포기했다. 결렬이었고, 여자가 이별을 골랐다. 깨질 수 있다는 것이 이 협상이 진짜라는 거의 유일한 증거다.
무엇을 택했는가
반대 의견을 먼저 적는다. 연애전쟁은 이혼숙려캠프에서 법을 빼고 소리를 키운 복제품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합숙도 상담도 없이 한 회 안에 결판을 내니 깊이가 없고, 외교관이라는 이름은 포장이며, 지분 40퍼센트 같은 조건은 방송용 소품이라는 것이다. 이 평가의 절반은 맞다. 연애전쟁은 실제로 더 빠르고 더 시끄럽고, 그 결정은 방송 밖에서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혼숙려캠프가 느릴 수 있는 것은 이혼이라는 제도가 이미 느리기 때문이다. 연애는 제도가 아니어서 느릴 수가 없다. 하루 만에도 끝나는 이별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한 회 안에 결판을 내는 것은 깊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대상에 맞는 속도를 고른 것이다. 그리고 그 속도 안에서 연애전쟁이 해낸 것이 하나 있다. 사귀는 사이에는 원래 없는 자리, 그러니까 두 사람이 서로의 영상을 보고 제삼자 앞에서 조건을 말하고 각자 따로 답을 내는 자리를, 없는 데서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혼숙려캠프는 있는 절차를 보여 주고, 연애전쟁은 없는 절차를 발명한다.
그래서 두 프로그램이 택한 것은 이렇다. 이혼숙려캠프는 법을 택했다. 결정이 바깥까지 가게 하는 대신 시간을 지불한다. 연애전쟁은 말을 택했다. 결정이 방 안에서 끝나는 대신 속도를 얻는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나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열한 번째 회의 두 사람이 지분 40퍼센트를 적은 종이를 들고 같은 회사로 돌아갔을 때, 그 종이가 아무 데도 제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만 적어 둔다.
연애전쟁은 11월에 스무 번째 회로 끝날 예정이다. 그 뒤로 조정장은 열리지 않는다. 애초에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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