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1

불멸의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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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 적다가 펜을 놓은 자리

방랑객· 2026. 10. 27.· 2,179자

불, 불에 데면 아프다.

멸, 멸치도 한때는 헤엄쳤다.

의, 의미는 나중에 온다.

삼행시는 여기까지. 이 작품의 장점은 제목이 삼행시로 풀린다는 것이다. 농담이다. 장점은 더 있고, 아래에 적었다.

스무 편을 봤다. 대사와 장면을 받아 적었다. 그대로 옮긴 건 세 줄이다. 나머지는 상황으로 적는다.

  • 구체. 누군가 구체를 땅에 던진다. 돌이 되고, 이끼가 되고, 상처 입은 흰 늑대가 된다. 자극을 받아야 모습을 얻는다. 주인공이 돌멩이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나는 그 돌보다 조금 더 움직이는 날이 있고, 아닌 날이 있다.
  • 무덤. 늑대가 된 그것과 소년이 남쪽으로 간다. 마을 사람들이 먼저 떠난 낙원을 찾아서. 도착한 곳에 있는 건 앞으로 가지 말라는 표식과 무덤들이다. 소년은 다친 다리로 마을에 돌아가 운다. 낙원은 지도에 없었다. 무덤에는 있었다.
나를......줄곧 기억해줘.

소년이 의자에 앉은 채 늑대에게 한 마지막 부탁이다. 1화다. 스무 편 중 첫 편에서 작품은 할 말을 다 했다. 나머지 열아홉 편은 그 부탁을 지키는 이야기다.

  • 이름. 니난나의 소녀 마치가 그것에게 이름을 붙인다. 불사. 열매를 따 주고 인사를 가르친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아이가 아기를 하나 키운다. 어른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기는 했다.
  • 같이 어른이 되자.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기뻐하며 마치가 불사에게 웃으며 하는 말이다. 5화다. 이 작품에서 웃으면서 한 약속은 대체로 지켜지지 않는다. 알고 보면 아프고, 모르고 보면 두 배로 아프다.
  • 화살. 야노메의 하야세가 파로나를 겨눈다. 마치가 대신 맞는다. 죽기 전에 파로나에게 부탁한다. 자기 대신 불사의 엄마가 되어 달라고. 아이가 유언으로 육아를 넘긴다. 나는 여기서 받아 적기를 한 번 멈췄다.
불멸의 그대에게 스틸컷
나랑 같이 가자. 말, 글자, 인간으로서 마땅한 삶의 방식을 내가 가르쳐주마

노파 피오란이 불사에게 한 말이다. 야노메의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한 삶의 방식을 가르치겠다는 선생이 죄수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불사 곁에 제일 오래 있는 사람도 이 사람이다. 자격과 사랑은 다른 칸에 들어 있다.

  • 술. 타쿠나하의 소년 구구는 사고로 얼굴이 망가지고 배 속에 술을 담는 통이 들어 있다. 양조장 영감이 살려 낸 대가다. 구구는 불사의 형이 되기로 한다. 괴물이라 불리는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맡는다. 4년을 그렇게 산다. 그 4년이 이 작품에서 제일 긴 평화다.
  • 가면. 린의 열여섯 번째 생일에 노커가 온다. 구구는 배 속 술로 불을 뿜으며 싸우고, 무너지는 건물에서 린을 감싼다. 린이 구구의 가면을 벗긴다. 구구는 린을 제일 사랑하는 건 자기라고 말한다. 린이 입을 맞춘다. 구구는 죽는다. 문장이 다 짧은 건 내가 더 길게 못 쓰겠어서다.
  • 열네 살. 토나리는 배를 타려던 불사와 피오란을 속여 죄수들의 섬 자난다로 데려온다. 열네 살이다. 아버지가 무죄라고 믿었고, 투기장에서 아버지가 사람 죽이는 걸 즐기는 모습을 보고 그 믿음이 깨진 아이다. 친구들 이름을 적어 둔다. 우로이, 오우미, 미아, 우파, 산델. 노커가 오고 등불이 하나씩 꺼진다. 산델만 남는다.
  • 모닥불. 16화. 노커와 한 번 싸우고 난 밤, 아이들이 모닥불 앞에서 꿈을 말한다. 미아는 이름난 화가의 모델이 되고 싶다고 한다. 꿈을 말하는 장면은 어느 작품에서나 좋다. 이 작품에서는 그다음 회가 있어서 무섭다. 나는 그날 밤 나온 꿈 중에 이루어진 걸 세다가 그만뒀다.
  • 선물. 자난다의 결승전에서 하야세가 정체를 밝힌다. 마치를 쏜 사람이고, 파로나를 죽인 사람이다. 불사가 파로나의 모습으로 변하자 하야세는 그걸 자기가 준 선물이라고 부른다. 준 적 없는 선물을 줬다고 우기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불멸의 그대에게 포스터
불사, 나는 너를 만나서 행복했다

가장 조용한 조각이다. 20화. 기억이 흐려진 피오란이 잠깐 정신이 돌아온 순간에 하는 말이다. 그러고는 비가 올 것 같으니 말려 둔 음식을 가져와 달라고 불사를 밖으로 내보낸다. 거짓말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다정한 거짓말이다. 불사가 돌아왔을 때 무슨 일이 있는지는 적지 않는다. 받아 적다가 펜을 놓은 자리가 거기다.

총평 한 줄. 좋은 작품이다.

덧붙임. 스무 편 동안 불사는 사람을 잃을 때마다 그 사람의 모습을 얻는다. 받아 적는 사람도 비슷하다. 잃고 나서야 적는다. 적어 두면 남는 줄 안다. 소년은 늑대에게 기억해 달라고 했다. 그 늑대는 원래 돌이었다. 돌이 제일 오래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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