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1

불멸의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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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게 죽음을 맡긴 스무 화

환한색칠· 2026. 10. 27.· 2,469자

다섯, 일곱, 여덟. 스무 화를 이렇게 나눠 쓴 애니메이션이다. 첫 다섯 화는 눈밭과 숲의 마을, 그다음 일곱 화는 한 집에서 네 해, 마지막 여덟 화는 섬. 열두 화와 열세 화 사이에는 총집편이 한 번 끼어 있다. (총집편은 빨래 개면서 틀어 놨다가 반쯤 졸았다. 자백이다.)

2021년 봄부터 여름까지 일본 공영방송의 교육 채널에서 매주 월요일에 나갔고, 국내에서는 수요일 밤에 동시 방영했다고 한다. 교육 채널에서 스무 화를 끊지 않고 한 번에 끝낸 구성. 요즘 기준으로 보면 조금 옛날식이다.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흐름

요즘 애니라면 수순이 있다.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거나 사람이기를 그만둔 쪽이고, 싸움은 뒤로 물리고, 시간이 흐르는 걸 지켜보는 게 이야기의 전부다. 한 시즌을 두 쿨로 나눠 내보내고, 끝나면 OTT에 통째로 올라가 거기서 두 번째 생을 산다.

2023년 가을에 시작한 엘프 마법사 이야기가 그 수순의 대표다. 마왕을 쓰러뜨린 다음부터 시작한다. 거의 죽지 않는 엘프가 쉰 해 만에 옛 동료들을 다시 만나고, 용사였던 사람이 늙어 죽는 걸 본 뒤에야 그 사람을 몰랐다는 걸 알고, 고아 소녀와 젊은 전사를 데리고 북쪽으로 간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몇 해씩 건너뛰고, 어릴 때 만난 장난꾸러기가 다음 장면에선 마을의 늙은 어른이 돼 있다. 첫 회를 금요일 밤 영화 시간대에 두 시간짜리로 틀었고, 스물여덟 화를 두 쿨에 걸쳐 냈다.

같은 해 초에는 바이킹 이야기의 두 번째 시즌이 스물네 화 내내 농장에 머물렀다. 전 시즌에 칼을 휘두르던 주인공이 노예가 되어 숲을 개간하고 곡식을 심고, 여덟아홉 화쯤 가서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습격 장면이 거의 없어 느리다는 말을 들었고, 그래도 끝까지 갔다. 마지막 화에서 고향 섬으로 돌아간다.

둘의 공통점을 꼽으면 이렇다. 죽음이 늙어서 오거나, 아예 오지 않는다. 싸움을 빼도 이야기가 서는지 한 시즌을 걸고 실험한다. 그리고 그 실험이 통했다.

불멸의 그대에게 스틸컷

이 작품

이 애니메이션은 그 둘보다 두 해 먼저다. 그래서 반은 그 흐름에 서 있고 반은 아니다.

흐름에 서 있는 쪽부터. 첫 화는 한 회짜리 완결된 이야기다. 누군가 던진 구체가 돌이 되고, 돌 위에 이끼가 앉고, 늑대가 되고, 늑대를 따르던 소년이 얼어붙은 땅을 건너다 죽자 소년이 된다. 말이 거의 없고 설명은 화면 밖 관찰자의 목소리 몇 마디뿐이다. 이걸 첫 회로 내보낸 건 요즘 OTT 작품들이 첫 회에 거는 방식과 같다. 한 회만 봐도 뭘 하려는 작품인지 안다.

두 번째 장도 그렇다. 소년의 몸을 한 불사가 노파 하나와 소년 하나 곁에서 네 해를 산다. 일곱 화를 썼다. 바이킹 농장보다 덜 느리고, 엘프의 건너뛰기보다 촘촘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저녁 먹으면서 봐도 밥이 넘어갔다.

벗어난 쪽은 노커다. 이 작품은 조용한 장 하나가 끝날 무렵마다 덩굴 같은 괴물이 나타나 불사의 몸 하나를 빼앗아 간다. 열두 화에서는 곰의 몸을 노리고 집을 무너뜨리고, 그 와중에 소년이 죽는다. 불사는 죽은 소년의 모습을 얻고, 그 얼굴로 소년이 좋아하던 아가씨의 아버지를 속인다. 다음 화에서 노파 피오란이 눈치챈다. 불사가 첫 장의 소녀를 잊었다는 걸. 몸을 빼앗기면 그 몸에 묶인 기억도 간다. 이 설정은 좋다. 불사는 죽지 않지만 잃을 건 제일 많다는 말이 되니까.

문제는 그걸 쓰는 방식이다. 엘프 이야기는 죽음을 세월에 맡기고, 농장 이야기는 죽음을 아예 치워 버린다. 이 작품은 죽음을 괴물에게 맡긴다. 그래서 정이 드는 순간마다 괴물이 올 시계가 돌기 시작한다. 셋째 장에서 특히 그렇다. 열세 화에서 배에 속아 올라 죄수들의 섬으로 가서 싸움 대회에 나가고, 열여덟 화에서는 구덩이에 버려진 시체들이 노커에게 조종당해 아이들을 찌른다. 아이들 이름을 외울 틈도 없이. 그 회를 보고 든 생각은 슬픔이 아니라 「아, 또 왔구나」였다.

불멸의 그대에게 포스터

정색할 데가 여기다. 사람 아닌 것이 사람을 배우고 그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는 이야기를 하려면 떠나는 이유가 꼭 괴물일 필요는 없었고, 두 해 뒤에 나온 엘프 이야기가 그걸 증명했는데, 이 작품은 매주 월요일에 사람들을 붙잡아 둘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간 방송의 버릇을 끝내 못 버린 채로 스무 화를 갔다. 그게 아깝다. 그뿐이다.

그래도 이 작품이 먼저였다. 사람 아닌 것이 죽은 이의 모습을 빌려 사는 설정, 첫 회를 단편으로 세우는 배짱, 한 장에 일곱 화를 주고 집 안의 일로만 채우는 여유. 뒤에 온 작품들이 그걸 더 깔끔하게 했다고 해서 먼저 한 쪽이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볼까 말까 묻는다면, 첫 열두 화는 보고 나머지는 각오하고 보라고 하겠다.

추신. 불사가 몸을 얻는 조건은 강한 자극이고, 죽은 것의 모습도 베낄 수 있다. 두 번째 화에서 소녀가 숲의 탁한 물속에서 불사가 벗어 두고 간 눈알 하나를 먼저 발견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이 작품의 설정을 설명하는 데 그 한 컷이면 됐다고 생각한다. 벗어 둔 몸은 그냥 거기 남는다. 그걸 사람이 먼저 보느냐 괴물이 먼저 집느냐가 스무 화 내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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