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1
불멸의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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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가면이 맞고 원형경기장은 틀렸다
첫 회에는 오프닝 영상이 없다. 오프닝 곡은 첫 회에서 엔딩 자리에 소리만 깔리고, 영상은 2화부터 붙는다. 나는 이 결정을 먼저 적어 둔다. 스타일은 무엇을 보여 주느냐보다 무엇을 안 보여 주느냐에서 드러난다. 눈밭에 떨어진 구체가 돌이 되고 이끼가 되고 늑대가 되고 소년이 되는 한 회 동안, 이 애니메이션은 노래 한 곡 앞세울 틈을 주지 않았다. 좋은 출발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이야기로 읽지 않기로 했다. 물건으로 읽는다. 가면 하나, 옷 한 벌, 건물 하나. 셋 다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입보다 먼저 말한다. 맞은 것 둘, 틀린 것 하나다.
물건 1. 구구의 가면 — 맞다
타쿠나하에서 술 파는 노인의 집에 얹혀사는 소년 구구는 얼굴을 다친 뒤로 가면을 쓴다. 자료들은 이 가면을 두고 이상하게 생겼다, 우스꽝스럽다고 쓴다. 한 리뷰는 아예 도롱뇽 투구라 부른다. 나는 그 말들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래서 맞다고 본다.
얼굴을 가리려는 아이가 얼굴에 가장 시끄러운 물건을 올렸다. 이 모순이 구구라는 인물의 전부다. 숨고 싶은데 눈에 띈다. 남과 다르게 됐는데 그 다름을 머리에 쓰고 다닌다. 가면이 잘생겼다면 이야기는 저주받은 미남 쪽으로 미끄러졌을 것이다. 가면이 못생겨서 이야기는 남과 다른 아이에 머문다. 나는 구구의 가면이 멋있게 생겼다면 거기서 껐을 것이다.
물건은 한 번 더 변한다. 노인은 구구의 배 속에 술을 담는 장기를 넣어 두었다. 재미와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구구는 그 술과 횃불로 불을 뿜어 적을 태우고 불사를 구한다. 4년 뒤에는 횃불 없이도 불이 나오는 새 가면을 쓰고 린의 열여섯 살 생일 잔치에 간다. 저택의 손님들은 그 가면과 그가 들고 온 꽃 한 송이를 비웃는다. 여기서 가면은 더 이상 가리개가 아니다. 노인이 몸에 심어 둔 장난이 무기가 되고, 무기가 다시 얼굴이 된다. 마지막 싸움에서 구구는 돌을 두른 노커의 머리 틈에 창을 꽂고 가면을 열어 그 안에 불을 넣는다. 가면을 연다, 는 동작이 중요하다. 이 아이는 가면을 벗어서가 아니라 열어서 싸운다.
물건 2. 야노메가 입히는 옷 — 맞다, 그래서 무섭다
니난나 마을의 옷은 단순하다. 마치도 파로나도 연한 갈색 옷에 붉은 테두리를 두르고, 마치는 머리에 노끈을 감는다. 늑대에서 소년으로 바뀐 불사는 추운 땅의 아이가 입던 갈색 외투와 갈색 장화 그대로다. 이 셋이 하야세를 따라 야노메로 간다.
야노메는 불빛이 환하고 집이 높고 먹을 것이 많은 도시다. 글자가 있고 기와지붕이 있다. 하야세는 이들에게 새 옷을 입힌다. 밥을 먹인다. 그 밥에 잠드는 약을 탄다. 깨어나면 감옥이다.
나는 이 순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정확한 스타일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옷을 먼저 갈아입혔다는 점이. 새 옷은 선물이 아니라 소속이다. 니난나의 갈색과 붉은 테두리를 벗기는 순간 이 아이들은 야노메 것이 된다. 그다음에야 약을 쓴다. 폭력보다 의상이 먼저 온다. 하야세라는 인물이 무서운 이유도 여기 있다. 그녀는 칼을 먼저 꺼내지 않는다. 옷을 먼저 꺼낸다. 자료에 따르면 야노메는 곰 신을 믿지도 않았다. 제물은 주변 마을을 다루는 수단이었고, 신이라는 곰의 등에 박힌 가시는 실은 화살이었다. 마치가 야노메에서 그 화살을 하나씩 뽑는 장면이 있다. 믿음이라는 옷을 벗기면 상처 입은 짐승이 남는다.
하야세는 자난다 섬에서 다시 나타난다. 한 리뷰는 첫 만남 이후 그녀가 얼마나 망가졌는지가 한눈에 보인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그녀는 마비 약으로 불사를 쓰러뜨리고 섬의 요새 같은 건물로 끌고 간다. 야노메에서 옷을 입히던 사람이 이제는 벗는다. 스타일이 뒤집힌 것이 아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다만 더 멀리 간 것이다. 옷은 끝까지 하야세의 언어였다.
물건 3. 자난다의 원형경기장 — 틀렸다
솔직히 말하자. 자난다 편에서 나는 처음으로 지루했다.
자난다는 죄인을 유배하는 섬이고, 섬의 살림은 투기 대회로 돌아간다. 불사는 피오란과 함께 속아서 배에 오르고, 둘의 자유를 걸고 경기장에서 싸운다. 그 경기장이 문제다. 자료는 이 공간이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본뜬 것이라고 적는다. 어디서나 본 그 집이다.
나는 이 작품이 그때까지 지켜 온 것을 생각한다. 눈밭, 숲속 제단, 술 파는 집의 뒷방, 저택의 발코니. 전부 작고 구체적인 자리였다. 그 자리들이 인물을 설명했다. 그런데 경기장은 어느 작품에 갖다 놓아도 되는 모양이다. 섬의 경제가 왜 이 건물로 돌아가는지, 이 바닥 위에서 왜 사람이 찔리고 토막 나고 목이 잘려야 하는지, 건물 자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설명은 토나리가 입으로 한다. 나는 건물이 인물보다 말이 적은 공간이 싫다.
그런데도 이 공간에서 건질 것이 하나 있다. 관객이다. 불사가 상대를 죽이지 않자 관객석이 먼저 상대를 다치게 한다. 그리고 불사가 끝내 손을 더럽히지 않자 관객은 그것을 모독으로 받아들인다. 건물은 빌려 왔지만 관객은 이 작품의 것이다. 토나리의 친구들이 들고 나오는 무기도 그렇다. 한 리뷰가 다트 소녀, 의자 소녀라 부른 아이들. 다트와 의자. 원형경기장에 다트와 의자라니, 이것은 맞다. 공간이 틀렸고 그 안의 물건이 맞았다. 모순이 아니다.
그러니 판정은 이렇다. 경기장이라는 집은 틀렸다. 그 집이 아니라 섬 어디든 더 좁고 더 이상한 자리에서 같은 싸움을 시켰다면, 자난다 편은 지금보다 짧고 날카로웠을 것이다.
세 물건을 세워 놓고 보면 이 작품의 취향이 보인다. 못생긴 것을 못생긴 채로 두는 데 자신이 있고, 옷으로 권력을 말할 줄 알며, 큰 건물 앞에서는 자신이 없다. 구체가 돌과 이끼와 늑대와 소년으로 바뀌는 작품답게, 작은 몸에 붙은 것들은 전부 맞고 큰 틀은 자주 틀린다. 나는 그런 작품이 좋다. 이걸 봐야 하나 묻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답한다. 구구가 가면을 여는 장면까지는 보라. 그다음은 각자 알아서.
추신. 2화부터 붙은 오프닝 영상은 뒤에 일어날 일을 꽤 많이 보여 준다고들 한다. 첫 회에 영상을 안 붙인 결정을 칭찬하며 시작했는데, 붙이자마자 앞질러 말하는 영상이었다면 그 칭찬은 절반만 남는다. 노래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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