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7

신: 세렝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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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세렝게티

활보러· 2026. 10. 13.· 3,030자

세렝게티 초원에 코끼리 떼와 원시 부족이 삽니다. 그 초원은 신의 서재 한가운데 놓인 탁자 위에 있죠. 신은 가죽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집사 제프리가 곁에 서서 시중을 듭니다.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고, 신은 그때마다 집사에게 뭔가를 시킵니다. 서재에는 벽난로와 책장과 소파가 있고, 신의 의자 옆에는 찻잔과 삼단 접시가 놓인 작은 탁자가 따로 있어요. 4분입니다.

닐 블롬캠프가 2017년에 세운 오츠 스튜디오의 단편입니다. 유튜브와 스팀에 무료로 올라온 「볼륨 1」 가운데 하나로, 그해 여름에 공개됐습니다. 앞서 나온 「라카」와 「파이어베이스」가 20분짜리 SF였다면, 이건 그 사이에 끼워 넣은 짧은 코미디예요. 가짜 요리 방송 「쿠킹 위드 빌」과 같은 부류죠. 신 역은 「디스트릭트 9」 이후 블롬캠프 영화에 계속 나온 샬토 코플리, 집사는 제이슨 코프입니다. 같은 둘이 나오는 속편 「신: 시티」가 뒤따랐고, 2021년에는 넷플릭스에 한국어 자막으로 묶음이 올라왔습니다. 오츠 스튜디오는 반응이 좋은 단편을 장편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으로 이 묶음을 만들었고, 다음 볼륨은 관객 후원으로 만들겠다고 했죠. 4분짜리 코미디가 장편이 될 가능성은 처음부터 낮았을 겁니다.

신을 사람으로 그리는 설정은 대개 두 가지 길로 빠집니다. 하나는 신이 인간을 보고 뭔가 배우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신이 인간을 괴롭히는 폭군인 쪽이죠. 이 영화는 두 번째를 고르되 폭군을 좀 작게 만듭니다. 화를 내는 폭군이 아니라 귀찮아하는 독자예요. 수염을 길게 기르고 영국 상류층 억양으로 말하는 이 신은 자기가 만든 세계보다 무릎 위의 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책이 어떠냐는 집사의 물음에 좀 기술적이라고 답하죠. 세계를 만든 사람이 세계의 설명서를 지루해하는 겁니다. 이 설정은 통합니다. 전능한 존재가 나쁜 게 아니라 심심하다는 쪽이 더 불편하거든요.

신: 세렝게티 스틸컷

이 소재로 할 수 있는 일은 꽤 많습니다. 집사가 신의 결정을 어디까지 대신하는지, 신이 모르는 사이 세계가 어디까지 가는지, 설명서에 뭐가 적혀 있는지. 영화가 실제로 한 일은 세 가지 사건을 차례로 보여 주는 겁니다. 불, 비, 역병. 세 사건 모두 탁자 위에서 시작해 의자 위에서 결정되고 집사의 손으로 끝납니다. 순서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아요.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비벼 불을 피우자 신은 허락한 적 없다며 끄게 합니다. 일정보다 20만 년 빠르다는 게 이유예요. 가뭄은 신이 끄는 걸 잊어서 생긴 거라, 사람들이 춤을 추자 집사가 물을 줍니다. 사람들이 기뻐서 계속 춤을 추는 동안 비는 계속 내리고요. 그러다 갑자기 역병을 풀라고 하죠. 이 「갑자기」가 영화의 유일한 반전입니다. 집사라는 직업이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주인의 명령을 어디까지 다듬어 전달하는가 하는 문제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아깝긴 합니다.

통하는 건 불 장면입니다. 신이 놀라는 이유가 불 자체가 아니라 일정이라는 점이 웃겨요. 20만 년이라는 숫자를 정확히 대는 신은 세계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계획표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그러고는 "뇌를 다시 줄여야겠다"고 중얼거리죠. 「다시」가 붙어 있어서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과가 있는 신입니다. 집사가 불을 끄고 나면 사람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요. 탁자 위에 합성한 작은 사람들은 꽤 그럴듯합니다. 전략 게임 화면처럼 보이는데, 그게 설정과 맞습니다. 신이 하는 일이 게임 플레이어가 하는 일과 다르지 않거든요.

신: 세렝게티 포스터

걸리는 건 길이입니다. 4분은 세 사건을 늘어놓기엔 충분하고, 그 사이에 뭔가를 쌓기엔 모자랍니다. 비 장면에서 집사가 자비로운 신이라는 말을 붙이며 물을 주는데, 이 집사가 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끝까지 나오지 않죠. 역병 장면에서 집사는 병을 꺼내 탁자 위에 뿌립니다. 병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요. 그 뒤에 신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여 주고 성가풍 음악과 함께 끝납니다. 시작과 끝에 같은 성가풍 음악이 깔리는데, 엄숙한 소리로 유치한 일을 포장하는 농담은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두 번째는 좀 길어요.

코플리는 이 역할을 과하게 연기하고, 그게 맞는 선택입니다. "건방지기는" 같은 짧은 대사를 툭툭 던지는데 즉흥처럼 들려요. 코프의 집사는 표정을 거의 바꾸지 않습니다. 둘 다 할 일을 합니다. 문제는 각본이 둘에게 준 일이 세 번의 명령과 세 번의 집행뿐이라는 거예요. 집사가 한 번쯤 명령을 늦게 수행하거나 잘못 수행했다면 인물이 생겼을 텐데, 그런 장면은 없습니다.

그래도 집사 쪽이 좀 더 재미있긴 합니다. 턱시도에 흰 장갑을 끼고 벽난로 앞에 서 있다가, 신이 한마디 하면 탁자로 다가가요. 물을 줄 때 자비로운 신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집사지 신이 아닙니다. 역병 병도 같은 손으로 가져오죠. 이 사람이 하는 일은 주인의 변덕을 격식으로 포장하는 겁니다. 영화는 그 포장을 한 번 보여 주고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저라면 거기 좀 더 머물렀을 거예요. 세계의 운명을 쥔 건 명령하는 쪽이 아니라 전달하는 쪽일 때가 많거든요.

인물을 세 보면 이름이 있는 사람은 둘입니다. 신과 집사. 둘 다 남자예요. 탁자 위의 사람들은 이름도 대사도 없고, 숫자로만 존재하죠. 불을 피우는 한 명, 춤추는 여러 명, 쓰러지는 전부. 코끼리 떼가 그들보다 먼저 화면에 나옵니다. 첫 장면이 초원을 가로지르는 코끼리 떼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림이거든요. 그 정도면 이 영화가 누구 편인지는 분명합니다. 사람 쪽에 서 주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이 영화의 농담이고,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죠. 4분 안에 편을 들어 줄 사람을 하나 더 넣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도 설정 하나로 4분을 끌고 가긴 합니다. 더 길었으면 좋았겠다는 말이 칭찬인지 불평인지는 좀 애매하고요. 시트콤 파일럿이라고 생각하면 그 정도면 됐죠.

(덧) 집사 이름은 자료마다 Jeffrey와 Geoffrey로 갈립니다. 발음은 같으니 상관없긴 한데, 신이 철자를 정해 주지 않은 모양이에요.

(덧) 벽난로 위에 걸린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입니다. 자기 초상화를 걸어 둔 셈이죠. 제목에 지역명이 붙은 건 속편 때문이고, 국내 한 서비스에는 「신의 장난: 세렝게티」로도 올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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