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7
신: 세렝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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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승인 없는 화기 사용 건에 관한 보고
우리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해마다 봄이 오면 승강기 안에 공문 한 장을 붙이신다. 제목은 「사전 승인 없는 옥상 출입 및 화기 사용 금지에 관한 안내」 되겠다. 나는 이 공문을 볼 때마다 승강기가 내려오는 열몇 초 동안 몇 가지 의문에 빠진다. 사전 승인은 누구에게 받는 것인가. 관리소장님이신가, 입주자대표회의이신가, 아니면 그 위의 어떤 분이신가. 승인 신청서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있다면 지금껏 그것을 써서 낸 입주민이 한 분이라도 계셨는가. 그리고 그 승인을 받고 옥상에서 고기를 구운 분이 이 아파트 역사상 단 한 분이라도 계셨는가. 공문 아래에는 「위반 시 관계 법령에 따라 조치함」이라는 한 줄이 붙어 있는데, 그 관계 법령이 무엇인지, 조치라는 것이 과태료인지 방송인지 눈총인지, 그리고 그 조치를 집행하시는 분이 경비 아저씨인지 소장님 본인이신지도 적혀 있지 않다. 공문은 금지만 알려 주고 승인의 길은 알려 주지 않으므로, 나 같은 민간인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튼.
〈신: 세렝게티〉 되겠다. 2017년에 어느 이름난 감독의 단편 공방에서 내놓은 네 분짜리 영화로, 유튜브에 무료로 올라와 있어 승강기를 두어 번 타는 사이에 다 볼 수 있다. 줄거리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할 정도로 짧다. 짙은 나무 벽에 대리석 벽난로가 있고 꽃무늬 전등갓 아래 찻잔과 삼단 접시까지 갖춘 어느 고풍스러운 서재에서, 긴 백발에 긴 수염에 동그란 안경을 쓰신 어르신 한 분께서 가죽 의자에 깊숙이 앉아 두 발을 탁자에 올리신 채 두꺼운 책을 읽고 계시는데, 그 탁자 위가 코끼리 떼가 물웅덩이에 모여 있는 과연 세렝게티스러운 초원이고, 거기 원시 부족이 손톱만 한 크기로 살고 있으며, 어르신 옆에는 턱시도에 흰 장갑을 낀 집사 양반이 꼿꼿이 서 계시다는 것, 그것이 설정의 전부다. 어르신의 직함은 제목에 나와 있다. 긴 수염, 동그란 안경, 그리고 격조 높은 영국식 억양까지, 신이라는 직함에 업계가 오래전부터 배정해 둔 표준 복장과 표준 발음을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셨으니 명패가 없어도 알아볼 수 있다. 책이 어떠냐는 집사의 물음에 어르신께서는 좀 기술적이라고 답하시는데, 당신께서 만드신 세계의 설명서를 당신께서 지루해하시는 것이다.

신께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영화 좀 보셨다는 분들은 다음 전개를 맞히실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 한숨 쉬는 신, 하필 그중 한 사람의 작은 선행, 하필 그것을 보신 신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마침내 책을 덮으시며 저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중얼거리시는 것. 업계가 수십 년간 갈고닦은 표준 문안의 정수라 하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다 차려진 밥상을 물린다. 네 분 동안 어르신은 책에서 거의 눈을 떼지 않으시고, 탁자 위에서 무슨 일이 나든 집사에게 저기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고는 재미있군 한마디로 끝내시며, 마지막에는 아무 사정 설명 없이 "역병을 풀게, 제프리" 하시고 그것으로 끝이다. 배우는 것도 없고 촉촉해지는 것도 없다. 밥상을 물리는 정도가 아니라 상을 아예 차리지 않으신 것이다.
그 물리시는 솜씨가 또 빠르다. 처리 기한이 네 분이다. 불, 비, 역병, 세 건의 민원이 접수되고 처리되고 종결되는 데 네 분이니, 우리 구청 민원실에서 서류 한 장 떼는 시간보다 짧다. 그 속도로 세 건을 처리하시고도 어르신께서는 한 번도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으신다. 탁자에 손을 대는 쪽은 언제나 집사 양반이고, 어르신의 몸에서 세계에 닿는 것은 올려놓으신 두 구두 바닥뿐이다. 결재권자와 집행자가 이토록 깨끗하게 나뉜 조직은 보기 드물다 하겠다.
내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대목은 불 장면이다. 탁자 위의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비벼 불을 피우자 어르신께서 책에서 고개를 드시고 처음으로 놀라신다. 놀라시는 이유가 인상적인데, 불이 위험해서도 아니고 기특해서도 아니고, 당신께서 허락하신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일정보다 20만 년이나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집사에게 끄라 하시고, 저들의 뇌를 다시 줄여야겠다고 혼잣말을 하신다. 여기서 나는 우리 아파트 공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전 승인 없는 화기 사용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민원인의 입장에서 몇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일정표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탁자 위의 분들께 사전에 고지되었는가. 둘째, 승인 신청은 어디로 하는가. 하늘을 향해 춤을 추면 접수가 되는가. 셋째, 뇌를 줄이는 조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 이전 건의 기록은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가. 영화는 이 세 가지에 대해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다만 담당자께서 당신 규정집을 좀 기술적이라며 건성으로 넘기시는 장면이 앞에 있으니, 아마 그분도 일정표를 끝까지 읽지는 않으신 모양이다. 담당자가 규정집을 안 읽는 관공서라니, 설계 오류라 하기엔 차라리 구수하다. 불이 꺼진 뒤 탁자 위의 분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으시는 모습은, 승강기 공문 앞에서 숯불 집게를 든 채 서 있는 우리 윗집 아저씨의 표정과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 장면도 민원 사항 되겠다. 탁자 위에 가뭄이 든 것은 어르신께서 끄는 것을 잊으셨기 때문이라니, 이것은 명령에 의한 가뭄이 아니라 담당자 부재 중 발생한 가뭄이다.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춤을 추자 집사 양반이 자비로운 신의 이름으로 물을 뿌려 주시는데, 그 자비라는 것이 실은 잠그는 걸 잊은 수도꼭지를 뒤늦게 잠그는 일이었다. 공문으로 치면 「담당자 부주의로 인한 단수 사과문」이 나와야 할 자리에 「자비」 두 글자가 적혀 있는 셈이라 하겠다. 춤을 춘 분들은 그 사실을 끝까지 모르신다. 알았다 한들 어디에 민원을 넣겠는가. 그 와중에 어르신 옆 삼단 접시의 간식은 한 번도 떨어지지 않는데, 그 예산은 어디서 나오는지도 영화는 밝히지 않는다.
마지막은 짧다. 사람들의 춤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께서 역병을 풀라 하시고, 집사 양반이 흔들면 방울뱀 소리가 나는 병을 가져다 탁자 위에 뿌리시고, 사람들이 쓰러지고, 카메라는 어르신의 무표정한 얼굴에 머문다. 처음에 천사 합창처럼 시작했던 음악이 끝에는 영 다른 소리를 내며 화면이 어두워진다. 그게 다다.
여기까지 읽고 이 영화가 신을 흉보는 영화라고 생각하신 분들께는 한 가지 정정을 드려야겠다. 이 영화는 신을 흉보는 것이 아니라 결재 체계를 흉보는 것이고, 그 결재 체계는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네 분 동안 웃다가 마지막 삼십 초에 웃음이 멎는 것은, 탁자 위 분들의 사정이 어디서 많이 본 사정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승강기에 탔더니 그 공문이 좀 달리 보였다. 사전 승인이라는 것은 애초에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받을 수 없게 적어 둔 것이구나 싶었던 것이다. 탁자 위의 사람들도 누구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는지 몰랐고, 알았다 해도 20만 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나뭇가지를 비볐다. 뭐, 생각해 보면 허락을 받고 피운 불이란 세상에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불은 원래 그렇게 피워진다.
올봄에는 관리소장님께 승인 신청서 양식이 있는지 한번 여쭤볼 생각이다. 없다고 하시면, 그것도 답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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