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8

일상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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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미끼였다

즉흥한모금· 2026. 10. 25.· 2,188자

제목이 「일상의 관계」다. 소개 글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여섯 남녀」로 시작한다. 당신이 이 두 줄만 보고 틀었다면, 아마 나와 같은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지루함이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는가.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낯선 사람 앞에서 어떻게 흔들리는가.

그 기대는 76분 안에서 두 번 부서지고 한 번 살아난다.

기대

근거는 셋이었다. 제목. 소개 글. 그리고 세 개의 장으로 짜인 옴니버스라는 틀. 76분을 셋으로 나누면 한 장에 스물다섯 분 남짓이다. 그 짧은 시간에 인물을 세우려면 일상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과로로 코피를 쏟는 강사.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둔 병장. 밤마다 마네킹 앞에서 가위를 쥐는 미용실 수습. 세 사람의 하루는 소개 글에 이렇게 적혀 있고, 그것만 보면 꽤 괜찮은 출발이다.

물론 청소년관람불가라는 등급은 알고 있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사유도 읽었다. 「3가지 옴니버스 성애 영화」. 그러니 기대가 순진했다고 당신이 말해도 할 말은 없다. 다만 성애 영화라고 해서 일상을 못 찍는 건 아니다. 나는 그 둘이 같이 가기를 바랐다.

실제

첫 장 「방과후 수업」. 미영은 일타 강사가 되려고 몸을 갈아 넣는 사람이다. 코피를 쏟는다. 야근 끝에 강의실에 남아 있던 학생 원재와 마주친다.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둘 다 우산이 없다. 여기까지는 좋다. 비 그치기를 기다리는 강의실만큼 일상에 가까운 자리도 없다.

그다음이 문제다. 천둥이 친다. 미영이 놀라 원재의 품에 안긴다. 시선이 맞닿는다. 소개 글은 이 대목을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라고 쓴다. 비어 있는 것은 그 사이다. 코피를 쏟을 만큼 지친 사람이 왜 그 학생 앞에서 무너지는가. 소개 글에 적힌 경로만 보면 천둥 소리 한 번이 그 답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짧다. 일상이 길게 깔렸어야 할 자리에 날씨가 들어와 있다.

둘째 장 「불침번」. 상희 병장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두고 있다. 욕설이 기본이고 매일 자신을 갈구는 은영 중사와 불침번을 선다. 여자친구 정연에게서 약속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별을 직감한다. 은영도 연인에게서 비슷한 메시지를 받는다. 두 사람이 같은 밤에 같은 종류의 문장을 받는다는 설정은 좋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그 밤에는 어울린다.

그런데 등급 사유에는 「군대 내 성폭행 시도 장면」이 적혀 있다. 위로에서 그 장면까지 가는 길이 이 장 안에 있다는 뜻이다. 매일 욕을 먹던 부하와 욕을 하던 상관이 같은 밤에 버려졌다는 사실만으로 그 길이 설명되는가. 나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본다. 상하 관계라는 가장 부당한 조건을 깔아 놓고, 그 부당함을 들여다보는 대신 다른 곳으로 건너간다. 길어야 했던 것은 그 밤의 어색함이고, 비어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람으로 보게 되는 과정이다.

셋 중 남은 건 셋째 장이다. 그 얘기는 아래에서 하겠다.

일상의 관계 스틸컷

남은 것

「한밤의 미용실」. 수습 정연은 밤마다 마네킹을 의자에 앉혀 놓고 연습한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 머리를 자르는 사람. 그 앞에 기태가 온다. 회사 면접이 있으니 머리를 잘라 달라고 한다. 서툰 손이 최선을 다하고, 기태는 그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

이 장이 건진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여기서는 일상이 관계를 만든다. 천둥도 아니고 이별 통보도 아니다. 마네킹에 대고 연습한 시간이 손님 앞에서 드러나고, 그 서툰 손을 손님이 믿어 주는 것. 그게 전부다. 소개 글이 약속한 「지루한 일상」이 이 장에서만 제값을 한다. 세 장 중 가장 조용한 장이고, 그래서 가장 오래 남는다.

정연이라는 이름은 둘째 장에서 상희의 여자친구 이름으로도 나온다. 같은 사람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같은 사람이라면 둘째 장의 그 메시지가 셋째 장의 밤과 이어진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이 영화는 자기 제목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성실했던 셈이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믿어 주지는 않겠다.

일상의 관계 포스터

당신이 이걸 볼지 말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한다. 성애 영화를 보러 간다면 등급 사유에 적힌 것을 받을 것이다. 일상을 보러 간다면 셋째 장까지 기다려야 한다. 스물다섯 분씩 두 번을 버틴 뒤에야 당신이 기대한 것이 나온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셋째 장이 끝났을 때 당신에게 남는 것은 마네킹 앞의 밤일 것이다. 그 밤이 좋았다면 그걸로 됐다. 영화 한 편에서 하나를 건지면 손해는 아니다.

기대한 것은 지루함이 사람을 움직이는 이야기였다. 받은 것은 날씨와 통보가 사람을 움직이는 이야기 둘, 그리고 일상이 사람을 움직이는 이야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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