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8

일상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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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세 일터

지도대장· 2026. 10. 25.· 2,256자

2018년 8월 30일. 이 영화의 개봉일이다. 그해 한국에서 일어난 일 몇 가지를 먼저 적어 두고 싶다. 영화와 무관해 보이지만, 세 장의 주인공이 서 있는 자리를 재는 데 필요한 눈금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관계」는 76분짜리 옴니버스다. 강의실, 군부대의 불침번 자리, 밤의 미용실. 세 장의 배경은 모두 일터다. 집도 아니고 술집도 아니고 여행지도 아니다. 여섯 사람이 낯선 이성과 만나는 자리가 전부 일하는 곳이라는 점이,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사실이다.

그때

첫 장의 미영은 「일타 강사」가 되려고 코피를 쏟는다. 2018년 한국의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19조 5천억 원 가까이였고, 학생 한 명이 다달이 쓰는 돈은 평균 29만 원 남짓이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이듬해 봄에 발표한 숫자다. 사교육이 한 해 19조 원이 오가는 시장이라면, 그 꼭대기에 오르려는 사람이 밤늦게까지 강의실에 남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영의 과로는 그녀 개인의 성격이기 전에 그 시장의 생김새다.

둘째 장의 상희는 병장이고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두고 있다. 2018년 7월 27일, 국방부는 병 복무기간을 줄이는 안을 발표했다. 육군은 21개월에서 18개월로, 그해 10월 1일 전역자부터 2주마다 하루씩 줄여 가는 방식이었다. 영화가 개봉한 8월 말은 그 발표와 시행 사이에 끼어 있다. 상희가 어느 해에 입대한 병장인지 영화는 말해 주지 않는다. 다만 2018년의 관객이 「병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복무기간은, 막 흔들리기 시작한 숫자였을 것이다.

셋째 장의 정연은 미용실 수습직원이다. 2018년 1월 1일부터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이 됐다. 전년보다 16.4퍼센트가 올라 당시로서는 역대 가장 큰 인상액이었다. 수습이 밤마다 마네킹을 앉혀 놓고 연습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애틋하지만, 그 밤이 임금에 들어가는 시간인지 아닌지는 영화가 말하지 않는다. 아마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가설 하나. 이 영화는 2018년의 세 일터를 골라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찍은 영화다. 절반만 맞다. 세 일터가 2018년이라는 눈금 위에 놓여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영화 자체가 그 눈금을 의식했다는 증거는 없다. 소개 글은 「지루한 일상」이라고만 쓴다. 시대를 읽은 것은 영화가 아니라 보는 우리 쪽일 가능성이 크다.

일상의 관계 스틸컷

지금

왜 세 장 모두 일터일까? 공간으로 보면 답이 조금 보인다. 강의실은 수업이 끝나면 비는 곳이고, 불침번 자리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만 사람이 서는 곳이고, 미용실은 영업이 끝난 뒤에야 수습이 의자를 차지하는 곳이다. 셋 다 낮에는 공적인 자리인데 밤에는 아무도 없다. 이 영화는 그 빈 시간을 쓴다. 비 때문에 못 나가는 강의실, 둘만 서는 초소, 손님 없는 미용실. 낯선 이성과 둘만 남게 되는 조건을 영화가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일터의 밤이 그 조건을 대신 만들어 준다.

지금 보면 달리 보이는 지점이 둘 있다. 하나는 둘째 장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사유에는 「군대 내 성폭행 시도 장면」이 적혀 있다. 2018년의 극장에서는 이 장면이 성애 영화의 한 수순으로 넘어갔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 매일 욕설을 듣던 부하와 그 상관이 같은 밤에 각자의 연인에게서 이별 신호를 받는다는 설정은, 지금의 눈으로는 위로의 조건이 아니라 위계의 조건으로 먼저 읽힌다. 영화가 그것을 알고 찍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또 하나는 셋째 장이다. 면접을 앞둔 기태가 밤의 미용실에 들어와 수습에게 머리를 맡긴다. 2018년에는 이 장면이 우연한 만남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밤에 문을 열어 두는 미용실, 수습이 혼자 남아 있는 가게, 예약 없이 들어오는 손님. 그 세 가지가 한꺼번에 성립하는 가게가 지금은 많지 않다고 나는 느낀다. 이 장이 애틋하게 보이는 이유의 절반은 아마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관계 포스터

어려운 말을 하나 썼다면 「조건」이라는 말이다. 일상의 예로 풀면 이렇다. 야근하는 사무실에 둘만 남으면 평소 안 하던 말을 하게 된다. 막차를 같이 기다리는 정류장에서는 모르는 사람과도 말을 트게 된다. 새벽 편의점에서는 점원과 손님이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된다. 조건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달리 세우는 것. 이 영화는 그 조건을 세 번 쓴다.

그래서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2018년의 세 일터가 그 뒤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우리는 대충 안다. 그런데 그 일터의 밤에 사람들이 흔들리는 방식도 같이 바뀌었을까, 아니면 자리만 바뀌고 흔들림은 그대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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