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8
일상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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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은 어떻게 됐어요
기태 씨. 영화 보다가 당신한테 말을 걸게 될 줄은 몰랐어요. 세 토막짜리 옴니버스에서 당신은 맨 마지막 토막, 그것도 손님으로 나오잖아요. 주인공은 가위 든 쪽이지 의자에 앉은 쪽이 아니거든. 그런데 나는 자꾸 앉은 쪽을 보게 되더라고.
「일상의 관계」는 2018년에 나온 76분짜리 영화예요. 강의실, 군부대, 미용실. 세 군데서 세 쌍이 생기는 이야기고, 당신은 미용실 토막이에요. 당신이 한 일을 순서대로 적어 볼게요. 틀리면 말해 줘요.
하나. 밤에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가게 안에는 수습 정연 씨 혼자 마네킹을 의자에 앉혀 놓고 연습하고 있었죠. 손님 받는 시간은 아니었을 거예요. 거기 들어가서 회사 면접이 있다고, 머리 좀 잘라 달라고 했어요. 간판 불이 켜져 있었는지 꺼져 있었는지 영화는 보여 주지 않아요. 나는 꺼져 있었을 거라고 봐요. 이건 내 짐작이에요.
둘. 수습이 자르는 걸 끝까지 맡겼어요. 서툴다는 건 당신도 금방 알았을 거고. 거울 보면 알잖아요. 그래도 안 일어났죠. 소개 글에는 서툰 솜씨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호감이 생겼다고 적혀 있더라고.
셋. 그 가게 안에서 손님과 수습의 자리를 넘어갔어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이 영화에 붙인 사유에 「헤어샵에서의 성행위」라고 적혀 있어요. 그게 당신 토막이잖아요.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는 여기 안 적을게요. 소개 글에 없는 건 내가 지어내는 게 되니까.
저 나이엔 그럴 수 있다, 싶은 건 하나와 둘이에요.
면접 앞두고 머리를 밤에야 자르러 다니는 거. 그거 그럴 수 있어요. 낮에는 다른 데 면접 보러 다녔거나, 돈 아끼느라 미루고 미루다 밤이 됐거나. 면접 머리라는 게 그래요. 하루 전에 자르면 티가 난다고 그러고, 일주일 전에 자르면 그새 자란다고 또 그러고. 거기다 돈이에요. 면접 보러 다니는 사람한테는 머리 한 번 자르는 값도 돈이고, 차비도 돈이고, 셔츠 다림질도 돈이에요. 밤에 문 열린 가게가 있고 수습이 잘라 준다면 값이 쌀 거라고 계산했을지도 모르죠. 그랬다면 그것도 그럴 수 있어요. 젊을 때 머리 자르는 날짜 가지고 혼자 고민하던 건 나도 기억이 나요. 그리고 서툰 사람한테 끝까지 맡기는 것도 그럴 수 있어요. 가위 든 사람이 땀 흘리면서 열심히 하는데 거기서 일어나는 게 더 어려운 법이잖아요. 그 마음, 저 나이엔 호감이라고 부르는 거 맞아요.
그래도 저건 아니다, 싶은 건 셋이에요.
남의 일터예요, 거기. 정연 씨가 밤마다 마네킹 앉혀 놓고 연습하는 건 거기서 밥벌이를 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수습이라는 게 월급은 제일 적고 잘리기는 제일 쉬운 자리예요. 그 자리를 지키려고 퇴근하고도 남아 있는 사람이고. 일은 일이거든. 의자에 앉은 손님이 호감을 느꼈다는 데까지는 좋은데, 가게 안에서 그 뒤로 가는 건, 글쎄, 손님이 할 일이 아니에요. 가위 든 사람은 거절하기 어려운 자리에 있어요. 내일도 그 가게에 출근해야 하니까. 영화가 그걸 모르고 찍었는지 알고 찍었는지는 내가 말 못 해요. 다만 당신은 알았어야 해요. 면접 보러 다니는 사람이면 남의 일터가 뭔지는 알 나이니까.
당신 토막에서 내가 제일 오래 본 건 그 의자예요. 손님이 앉으면 거울을 보게 돼 있고, 자르는 사람은 손님 뒤에 서 있잖아요. 손님은 자기 얼굴을 보고 자르는 사람은 손님 뒤통수를 봐요. 서로 눈을 맞추려면 거울을 거쳐야 하고요. 그 자리에서 호감이 생긴다는 게 나는 조금 이해가 돼요. 똑바로 안 보고 거울로 보니까 말이 쉬워지는 거. 그런데 그 의자는 그러라고 있는 의자가 아니에요. 머리 자르라고 있는 의자예요.
하나만 물을게요. 면접은 어떻게 됐어요.
영화는 그 얘길 안 해 줘요. 머리가 잘 됐는지 못 됐는지도 안 보여 주고. 나는 그게 제일 궁금했는데. 정연 씨 손이 서툴렀다면서요. 그 머리로 회사에 들어가서 면접관 앞에 앉았을 거 아니에요. 면접관이 머리를 봤을까, 안 봤을까. 봤다면 뭐라고 생각했을까. 붙었을까. 그 가게에 다시 갔을까. 갔다면 돈은 제대로 냈을까.
이런 게 궁금한 걸 보면 나는 이 영화를 영화가 바란 대로 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당신 토막이 셋 중에 제일 오래 남아요. 밤에 남의 가게 문 열고 들어간 사람은 많은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 눈에 자기가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하는 사람은 적잖아요. 당신이 그걸 생각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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