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 2026

술래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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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이 세 줄을 넘으면 나는 끈다

밤선율· 2026. 11. 01.· 2,557자

나는 보드게임 상자를 열면 설명서를 맨 뒤로 미뤄 둔다. 누가 읽어 주는 동안 딴생각을 한다. 서바이벌 예능도 같다. 규칙 설명이 길어지면 나는 그 시간을 광고로 친다. 「술래게임」은 디즈니+가 9월 30일부터 10월 21일까지 열 편으로 내놓은 추격 서바이벌이다. 열세 명이 뛰고, 그 안에 정체를 숨긴 술래 하나가 섞여 있다. 이 글은 추격전 이야기가 아니다. 규칙과 내가 열 편 동안 싸운 이야기다. 승패는 회마다 갈렸다.

먼저 내가 싫어하는 것의 목록이다. 십 분짜리 규칙 설명 영상. 게임 도중에 튀어나오는 히든 룰. 이름부터 외워야 하는 아이템. 「베네핏」이라는 말. 탈락 면제권. 그리고 이것들을 한 회에 다 집어넣고 두뇌 서바이벌이라 부르는 버릇. 이 목록을 들고 보면 「술래게임」은 저지르는 회와 피하는 회가 따로 있다.

저지른 쪽부터 말한다. 두 번째 메인 매치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개는 개만 잡는다. 늑대는 개와 늑대를 잡는다. 사냥꾼은 다 잡는다. 잡을 수 없는 상대를 건드리면 감점이다. 여기까지는 외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사냥꾼과 사냥감이 뒤바뀌고, 게임 중간에 히든 룰이 몇 개 더 나온다. 「히든 늑대」가 그중 하나였다. 나는 이 회에서 화면 속 사람들보다 내가 더 바쁘다고 느꼈다. 그들은 뛰고 나는 외웠다. 외우는 사람은 긴장하지 못한다. 긴장은 규칙을 이미 아는 사람에게만 온다.

이긴 사람에게 돌아간 것도 내 목록에 있었다. 자금 2천만 원과 탈락 면제권 한 장. 면제권은 서바이벌이 게을러질 때 꺼내는 물건이다.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미리 빼 두는 것이니까. 면제권이 쓰이는 순간보다 면제권이 있다는 사실이 판을 식힌다.

술래 규칙도 한 겹이 아니었다. 술래는 메인 매치마다 숨은 미션을 받고, 투표로 잡히면 탈락 후보가 되고, 그러면 새 술래가 뽑힌다. 들키지 않고 버티면 결승에 바로 간다. 여기까지도 많다. 그런데 일곱째·여덟째 회에서 첫 술래가 잡힌 뒤 새 술래에게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마지막 메인 매치에서 한 번도 검거되지 않으면 결승 자동 진출. 그 조항 하나가, 그 매치에서 2위를 해 결승을 눈앞에 둔 사람의 자리를 흔들었다. 투표에서 가장 많이 지목된 사람은 술래가 아니었고, 술래는 둘 중 하나로 좁혀졌다. 나는 이 대목에서 리모컨을 들었다 놓았다. 규칙이 사람을 흔드는 건 좋다. 규칙이 규칙을 흔드는 건 싫다.

술래게임 스틸컷

이제 피한 쪽이다. 첫 데스매치 「시간 가방」. 규칙은 한 줄이다. 가방마다 터지는 시간이 숨겨져 있고, 자기 가방이나 자기가 정한 구역의 가방이 먼저 터지면 떨어진다. 그게 다다. 1라운드는 45분 만에 끝났다. 규칙이 짧아지자 사람이 보였다. 감옥에 다녀온 셋이 손을 잡아 첫 탈락자를 만들었고, 2라운드에서는 누가 누구를 제물로 삼았는지가 가방보다 먼저 보였다. 나는 이 회에서 처음으로 외우기를 멈췄다. 네 번째 회였다. 네 회를 기다려야 보이는 프로그램을 나는 보통 세 회에서 끈다. 이번엔 끄지 않았다. 첫 네 회가 한꺼번에 풀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 한 회씩 풀렸으면 나는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결승도 피한 쪽이다. 다섯이 남았고 종목은 술래잡기였다. 그냥 술래잡기. 규칙 설명이 필요 없는 유일한 놀이를 맨 마지막에 놓았다. 열 시간이 걸렸고 4초 차이로 끝났다. 아이템이 셋 있었다. 술래를 빼앗는 것, 위치를 숨기는 것, 버티면 상을 받는 것. 셋은 외울 수 있는 숫자다. 나는 셋까지는 참는다. 다섯부터 끈다.

연출자는 이 프로그램을 「게임은 쉽게, 경쟁은 치열하게」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규칙을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짰다고도 했다. 나는 그 말을 반쯤 믿는다. 첫 메인 매치 「경찰과 도둑」에는 지하에 숨겨 둔 장치가 있었는데 경찰이 너무 빨리 잡아 버려 쓰이지 못했다고, 연출자가 뒤에 털어놓았다. 숨겨 놓은 걸 못 찾으면 그대로 끝나는 거라고. 나는 이 고백이 좋았다. 규칙을 더 얹지 않고 안 쓰인 채로 둔 것이다. 설계자가 설계를 포기하는 순간이 서바이벌에서 가장 정직한 순간이다. 저지른 회와 피한 회의 차이는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사람이 규칙보다 빨랐던 날은 좋았고, 규칙이 사람보다 많았던 날은 지루했다.

술래게임 스틸컷

그런데도 규칙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았던 순간이 하나 있다. 술래가 처음부터 박지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연출자는 그것이 내정이 아니라 추첨이었다고 말했다. 규칙이 술래를 고른 게 아니라 운이 골랐다. 나는 설계자가 손을 떼는 지점을 좋아한다. 지하의 장치가 안 쓰인 것과 같은 자리다. 규칙은 판을 깔고 거기서 물러난다. 물러나지 않는 규칙이 내 목록에 있는 것들이다.

스무 날을 찍었고 카메라가 백 대였다고 한다. 백 대가 찍은 것을 열 편으로 줄이면서 규칙 설명을 더 줄일 수는 없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설명 없이 내보냈으면 나는 더 빨리 꺼졌을 테니까. 그러니 이 프로그램의 문제는 설명이 긴 게 아니라, 설명이 필요한 게임을 두 번째에 놓은 것이다. 「시간 가방」이 두 번째였다면 나는 세 회 안에 이 프로그램을 믿었을 것이다.

술래게임 포스터

외우느라 지루했고, 외운 것이 깨지는 걸 보느라 좋았다. 모순이 아니다. 설명서를 안 읽는 사람에게 권한다. 네 번째 회까지는 참으라는 말을 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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