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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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와 종이 관은 맞고, 틀어 놓은 노래는 틀렸다

밤선율· 2026. 11. 03.· 2,472자

승합차 얘기를 기대했다면 다른 글을 읽으면 된다. 옆면에 생닭 공급업체 문구와 전화번호가 그대로 찍힌 그 차 얘기는 이 영화를 다룬 글마다 했다. 나는 안 한다. 차는 이 집의 형편을 한 번에 말해 주는 물건이고, 그래서 다들 그 차부터 본다. 나는 차 말고 셋을 봤다. 흰머리, 종이 관, 그리고 틀어 놓은 노래.

「가족여행」은 108분짜리 가족 로드무비다. 치매가 온 시어머니 순임, 생계를 혼자 떠안은 며느리 영주, 10년 전 영화가 잘 안 된 뒤로 이제야 다시 기회를 잡았다는 남편 창욱, 베트남전에 다녀온 시아버지 만철, 자기를 뱀파이어로 여기는 딸 윤진. 주간보호센터가 순임을 더 못 맡겠다고 하자 영주가 생일을 핑계로 부산행을 꺼낸다. 진짜 목적지는 요양원이다. 두 사람이 같이 연출했고 부산과 기장에서 찍었다. 여기까지가 사실이고, 아래는 판정이다.

순임의 머리부터. 하얗다. 염색을 안 했다. 배우가 방송에서 제 머리색 그대로라고 말했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보도된 사실이다. 역을 맡은 뒤 부산의 요양원과 노래교실에서 한 달쯤 어르신들과 지냈다고도 했다. 화면의 순임은 거기서 본 사람들의 머리를 하고 있다.

맞다. 이 영화에서 제일 먼저 맞는 물건이다. 각본을 쓴 연출자는 「이런 예쁜 사람도 치매에 걸린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머리에서 확인했다. 염색한 흰머리는 예쁘다. 염색 안 한 흰머리는 그 사람이다. 영화는 둘째를 골랐고, 그래서 순임이 차 안에서 밥 달라고 소리칠 때 나는 배우를 보지 않고 며느리와 함께 통닭집에서 닭을 튀기던 사람을 봤다. 배달을 나갔다가 쓰러진 사람의 머리가 그래야 한다.

하나 더. 배우는 촬영 내내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제작진도 몰랐다고 했다. 그래야 걸음이 종종걸음으로 바뀐다는 이유였다. 화면에 기저귀는 안 나온다. 걸음만 나온다. 보이지 않는 옷이 보이는 걸음을 만든다. 스타일은 원래 그렇게 작동한다. 겉에 걸친 것이 아니라 밑에 깔린 것이 걸음을 정한다.

순임의 머리를 염색했다면 나는 10분 안에 껐을 것이다.

가족여행 스틸컷

손녀 윤진의 관. 이 아이는 낮에 햇빛을 안 받고 관에 집착한다. 늘 그러는 건 아니고 뱀파이어 모드와 인간 모드를 바꿔 가며 산다. 그런데 그 관이 종이 상자다. 종이 상자로 관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눕는다. 관 속에서 웃는 얼굴이 스틸로 나왔다.

맞다. 나무였다면 틀렸다. 나무 관은 돈이 들고, 돈이 든 관은 어른이 사 준 관이다. 이 집에 그런 어른은 없다. 생계를 혼자 떠안은 어머니가 사 줄 리 없고, 아버지는 10년 동안 영화를 못 찍었다. 그러니 종이다. 아이가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관. 나는 그 상자가 아이의 취향이 아니라 이 집 살림의 크기라고 읽었다.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 아이도 결국 집 형편만큼만 뱀파이어가 된다. 영화가 거기까지 계산했는지는 모른다. 아마 형편이 먼저였을 것이다. 결과는 같다.

종이 관은 접힌다. 이 아이도 뱀파이어 모드를 접고 인간 모드로 돌아올 줄 안다. 접히는 관에 접히는 아이. 어른들은 안 접힌다. 고집도, 꿈도, 거짓말도 108분 내내 펴진 채로 있다. 이 집에서 제일 유연한 물건이 종이 상자라는 게 웃기고, 웃고 나면 조금 아프다.

노래. 좁은 차 안에서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식구들은 거기에 짜증을 낸다. 그러다 영화 중간에 순임이 옛 노래 「세월아」를 부른다. 같은 노래가 엔딩곡으로 다시 나온다.

틀어 놓은 노래는 틀렸다. 부르는 노래는 맞다. 둘을 같은 글자로 부르는 게 문제다. 틀어 놓은 노래는 차에 붙은 물건이다. 누가 골랐는지 모르고, 끄는 사람도 없고, 그냥 나온다. 이 집 식구들이 서로에게 하는 말이 딱 그 꼴이다. 틀어 놓고 아무도 안 듣는다. 그러다 순임이 입을 열면 노래가 처음으로 사람 것이 된다. 차 안의 넷이 짜증 내던 소리와 같은 종류의 소리인데, 한 사람이 제 목으로 부르는 순간 아무도 짜증을 안 낸다. 그 차이가 이 영화의 음악 전부다.

그런데 엔딩에 다시 나오는 「세월아」는 틀어 놓은 노래다. 순임의 목소리가 아니라 가수의 음반이다. 나는 여기서 고개를 갸웃했다. 부르는 노래로 시작해 틀어 놓은 노래로 끝낸다는 건, 사람이 떠난 자리에 음반이 남는다는 뜻이다. 영화가 그렇게 설계했다면 잔인하고, 아니라면 무심하다. 어느 쪽이든 나는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앉아 있었다. 틀렸다고 해 놓고 끝까지 들었다. 틀린 것도 끝까지 듣게 만드는 영화는 흔치 않다.

가족여행 포스터

세 물건이 가리키는 사람은 결국 한 명이다. 흰머리의 주인도 종이 관의 주인도 아니다. 그 둘을 한 차에 태운 며느리다. 염색도 나무 관도 없는 집에서 영주는 거래처에서 차를 빌리고 생일을 핑계로 길을 나선다. 이 영화의 스타일은 돈이 없다는 사실을 꾸미지 않는 데서 나온다. 꾸미지 않아서 멋이 있다. 다른 가족 영화들이 거실에 놓는 소파 하나 값으로 이 영화는 흰머리와 종이 상자와 노래 한 곡을 샀다. 그쪽이 싸고, 그쪽이 맞다.

볼까 말까. 차 얘기는 남들이 했으니 머리와 상자와 노래를 보러 가면 된다. 차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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