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3
러브 액츄얼리: 크리스마스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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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북은 고백이 아니었다
사랑 이야기가 열 개 넘게 든 영화에서 사람들은 장면 하나를 기억한다. 2003년에 나와 10년 뒤인 2013년 겨울에 무삭제판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다시 걸렸고, 그 뒤로 두어 해마다 극장에 돌아오는 영화다. 돌아올 때마다 기사 제목에 오르는 것은 같은 장면이다. 문 앞의 남자와 스케치북.
통념
통념을 성실하게 적어 둔다. 마크는 친구 피터의 결혼식을 도맡아 준비한 사람이다. 신부 줄리엣에게는 내내 쌀쌀맞다. 줄리엣은 그 이유를 모른다. 크리스마스 밤, 마크가 줄리엣의 집 문을 두드린다. 남편에게는 캐럴 부르는 사람들이라고 하라는 첫 장을 들고, 카세트에서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틀어 놓고, 말없이 종이를 한 장씩 넘긴다. 내게 당신은 완벽하다고. 낭비된 마음이 오래도록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그리고 돌아선다. 줄리엣이 뒤따라 나와 짧게 입을 맞춘다.
이 장면을 두고 신문은 「레전드」라고 쓴다. 영화를 소개하는 글마다 이 영화를 대표하는 명장면이라고 적고, 셀 수 없이 패러디됐다. 감독이 사무실 사람들에게 다섯 가지 안을 보여 주고 고른 것이 이 스케치북이었다는 뒷이야기까지 함께 돈다. 요약하면 이렇다. 말로 할 수 없는 사랑을 종이로 한 고백. 로맨틱 코미디가 만든 가장 로맨틱한 고백.
근래에는 반대쪽 통념도 자랐다. 결혼식 영상을 신부 얼굴로만 채운 남자가 친구의 아내 문 앞에 찾아온 것이 과연 사랑인가, 집착 아닌가. 해마다 겨울이면 두 진영이 다툰다. 로맨틱하다는 쪽과 섬뜩하다는 쪽. 그런데 두 쪽은 하나를 공유한다. 저 장면이 고백이라는 전제다. 한쪽은 아름다운 고백이라 하고 한쪽은 해서는 안 될 고백이라 한다. 고백이라는 것 자체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본 것
나는 다르게 보았다. 저것은 고백이 아니다. 순서대로 보면 안다.
첫 번째 장면. 줄리엣이 마크의 집에 와서 결혼식 비디오를 보여 달라고 한다. 틀어 보니 화면이 온통 자기 얼굴이다. 가까이서 찍은 얼굴, 또 얼굴. 줄리엣이 말한다. 「꽤 가까이 있었네요.」 마크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집을 나가 버린다. 줄리엣은 그날 알았다. 그러니 크리스마스의 문 앞은 처음 알리는 자리가 아니다. 이미 들킨 사람이 뒤늦게 찾아온 자리다.
두 번째 장면. 문 앞의 첫 장은 사랑이 아니라 거짓말이다. 남편에게 캐럴이라고 해 달라는 부탁. 고백은 듣는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는 말이다. 그런데 마크의 종이에는 물음표가 없다. 당신은 완벽하다, 나는 오래 사랑할 것이다. 전부 마침표다. 그는 대답할 자리를 남기지 않고 돌아선다. 줄리엣이 쫓아 나와 입을 맞추자 그가 하는 말은 「됐어. 이제 됐어」다. 상대가 무엇인가를 주려는 순간에 그는 끝을 선언한다.
세 번째 장면. 줄리엣은 집 안으로 돌아간다. 피터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 뒤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더 꺼내지 않는다.
시작이 거짓말이고 끝이 종료 선언인 말은 고백이 아니다. 통보다. 더 정확히는 혼자 치르는 의식이다. 그는 줄리엣에게 무엇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 안의 것을 꺼내 보이고 덮었다. 그래서 두 진영은 절반씩 틀렸다. 로맨틱하다는 쪽은 줄리엣의 입맞춤을 대답으로 읽는다. 섬뜩하다는 쪽은 스케치북을 요구로 읽는다. 스케치북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입맞춤은 대답이 아니라 배웅이었다. 장례식에서 관에 손을 얹는 것과 비슷하다. 마음의 표시이되, 관계의 시작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것을 고백으로 기억할까. 줄리엣이 제때 웃기 때문이다.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줄리엣은 웃어야 할 자리에서 웃는다. 관객은 줄리엣의 자리에서 그 종이를 읽는다. 읽는 사람이 웃으면 읽히는 글은 고백이 된다. 마크가 무엇을 했는지보다 줄리엣이 어떻게 받았는지가 장면의 기억을 정한다. 그러니 이 장면의 로맨스는 마크의 것이 아니라 줄리엣의 것이고, 더 정확히는 줄리엣의 얼굴을 보는 우리의 것이다.
내 해석이 틀릴 수 있는 지점은 그 입맞춤이다. 나는 배웅이라고 했다. 대답일 수도 있다. 줄리엣이 남편에게 그 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밤이 줄리엣에게도 무엇인가였다는 뜻일 수 있다. 영화는 거기서 끊는다. 끊었으므로 나는 배웅이라 읽었고, 끊었으므로 누군가는 대답이라 읽는다. 어느 쪽도 영화가 보증하지 않는다.
다시 「레전드」라는 말로 돌아간다. 전설은 있었던 일을 부풀려 전하는 말이다. 이 장면에서 있었던 일은 하나다. 한 남자가 친구의 집 문 앞에서 혼자 무엇인가를 끝냈다. 부풀려진 것은 그 뒤에 붙은 말들이다. 고백, 로맨스, 명장면. 종이 몇 장과 「됐어」 한 마디가 스무 해 넘게 그 말들을 지고 있다. 종이가 무겁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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