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0

동쪽의 에덴 극장판 : 더 킹오브 에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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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한 목소리는 로밍이 안 된다

고요한땀· 2026. 10. 31.· 2,648자

미사일 60발을 막은 사람이 뉴욕의 영화관에서 일한다. 이 영화에서 내가 제일 오래 생각한 사실이 이것이다. TV 시리즈 마지막에 그는 일본으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고, 자기를 왕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뒤, 기억을 지우고 사라졌다. 반년 뒤 그가 서 있는 곳은 왕좌가 아니라 영화관이다. 이름은 이이누마 아키라로 바뀌어 있고, 기억은 없고, 영어는 서툴다고 한다. 세상을 구한 사람의 다음 자리로 이보다 겸손한 곳을 나는 떠올리지 못했다. 내 다음 자리도 아마 이보다는 화려할 것이다. 그것이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진지하다. 음악도 진지하고, 뉴욕의 거리도 진지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자꾸 웃었고, 웃은 자리가 영화가 웃기려던 자리인지 아닌지 끝까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자리들을 적어 보기로 했다. 웃긴 장면을 적는 것은 웃기지 않은 일이지만, 원래 나는 웃기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첫째. 세레손 6번, 나오모토 타이시. 그는 영화감독이다. 백억 엔이 든 전화기와 무엇이든 들어주는 목소리를 받고 나라를 구하라는 임무를 받은 열두 명 중 한 사람인데, 그가 고른 방법은 영화를 찍는 것이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타키자와와 사키를 쫓아다닌다. 사키의 짐에 총을 넣은 것도 그다. 그랜드 센트럴 앞에서 가방이 열리고 총이 쏟아지는 장면은 사키에게는 재난이지만, 6번에게는 아마 촬영이었을 것이다. 그는 장면이 필요했고, 장면에는 총이 필요했고, 총은 남의 가방에 넣었다. 한 일본 리뷰는 그의 방해를 두고 영화 촬영이라는 수수한 장애물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수수함이 좋았다. 다른 세레손들이 미사일과 법안을 다룰 때 이 사람은 앵글을 다룬다.

동쪽의 에덴 극장판 : 더 킹오브 에덴 스틸컷

진짜 우스운 대목은 그다음이다. 그는 자기 주이스에게 두 사람이 샤워하는 사이 호텔 방을 터뜨리라고 주문한다. 살인 교사다. 웃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 주이스가 받아 주지 않는다. 사람 마음까지는 조작할 수 없다고 대꾸하고, 서비스 범위 밖이라는 식으로 넘겨 버린다고 한다. 노블레스 휴대폰은 일본 안에서만 유효하다는 설정이 있으니 그 말이 맞기는 하다. 뉴욕은 로밍이 안 된다. 세상을 구하라고 준 전능한 기계가 국외에서는 전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영화는 가장 위험한 주문의 순간에 알려 준다. 그리고 6번의 주이스는 그에게 유독 쌀쌀맞다. 한 리뷰는 그 목소리가 주인의 터무니없는 주문에 지쳐 비뚤어졌다고 썼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주인을 닮는다면, 6번은 자기 자신에게 매번 핀잔을 듣는 셈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웃고 나서 한 칸 생각했다. 무엇이든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망신에 가깝다. 그 존재는 내가 시킨 것을 전부 기억하고 있고, 그 목록이 곧 나다.

둘째. 주이스가 트럭이라는 것. TV 시리즈 내내 주이스는 목소리였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존재였다. 이 영화에서 그 목소리는 트레일러에 실린 기계로 드러나고, 그 트레일러는 공공 도로를 달린다. 세레손 1번 모노노베는 그 트럭을 미사일로 때린다. 이 장면은 영화의 절정이고, 11번 쿠로하가 자기 트레일러를 타키자와 대신 내어 주는 희생의 장면이기도 하다. 숙연해야 할 자리다. 그런데 나는 미사일이 트럭을 조준하는 순간 조금 웃었다. 신을 없애는 방법이 교통사고라는 것이 우스웠다. 한 일본 리뷰는 주이스가 트럭에 실려 공도를 달린다는 설정을 무리라고 썼다. 무리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전능한 것이 결국 화물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가 던지는 농담 중 가장 큰 것이고, 영화가 그것을 농담으로 알고 던졌는지는 모르겠다.

셋째는 짧다. 왕이 되게 해 달라고 한 사람에게 돌아온 것이 서류라는 것. 반년 뒤 그의 이름 앞에는 죽은 전 총리의 숨겨 둔 아들이라는 기록이 붙어 있다. 누가 붙였는지는 자료마다 조금 다르게 말한다. 그의 주이스가 정계 데뷔를 위해 꾸민 일이라는 설명이 있고, 2번 세레손이 소문을 퍼뜨렸다는 설명이 있다. 어느 쪽이든, 왕이 되는 길이 출생 기록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같다. 왕이란 무엇인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서류가 맞는 사람이다.

동쪽의 에덴 극장판 : 더 킹오브 에덴 포스터

자, 영화는 알고 있는가. 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앞의 둘 중 하나는 안다. 주이스의 목소리가 주인마다 다르게 연기되어 있고, 2번 세레손은 자기 주이스에게 별명으로 불린다. 일본의 한 관객은 2번과 6번이 각자의 주이스와 주고받는 대화에서 극장이 웃었다고 적었고, 진지한 장면과 웃기는 장면의 완급이 좋다고 썼다. 그러니 6번의 망신은 설계된 것이다. 트럭은 모르겠다. 트럭은 아마 진심일 것이다. 진심으로 찍은 장면이 우스울 때 나는 그 영화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된다. 나도 진심으로 사는데 자주 우습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불만이 많이 따라붙는다. 뉴욕 장면에 두 사람밖에 안 나와서 늘어진다는 말, 기억상실을 또 쓴다는 말, 시작하려는데 끝난다는 말. 다 맞다. 그래서 볼까 말까 묻는다면, TV 시리즈를 본 사람에게만 보라고 하겠다. 다만 보게 된다면 세상을 구한다는 일이 이 영화에서 어떤 크기로 줄어드는지를 봐 주었으면 한다. 백억 엔이 영화관 일자리가 되고, 전능한 목소리가 화물이 되고, 살인 주문이 통화권 이탈로 끝난다. 큰 것이 자꾸 생활의 크기로 내려온다. 나는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진지한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추신. 자료마다 상영 시간이 82분이라고도 85분이라고도 한다. 세상을 구하는 영화치고는 둘 다 짧다. 나는 짧은 쪽을 믿기로 했다.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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