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0

동쪽의 에덴 극장판 : 더 킹오브 에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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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냥 I 라고 썼다

환한색칠· 2026. 10. 31.· 2,125자

요즘 애니메이션이라면 수순이 있다. TV로 시작하고, 인기가 붙으면 결말은 극장으로 가져가고, 그 극장판은 둘이나 셋으로 쪼갠다. 지난해 여름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3부작의 1장으로 개봉했고, 체인소 맨은 TV 1기 뒤를 레제편이라는 극장판으로 이었다. 쪼개면 짧아져야 할 것 같은데 요즘 쪼갠 영화들은 길다. (쪼갰는데 왜 길어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수순을 2009년에 이미 밟은 영화가 있다. 동쪽의 에덴 극장판 1편. TV 열한 편이 6월에 끝났고, 그 반년 뒤 이야기를 11월에 극장에 걸었고, 2부작의 앞 편이었다. 지금 보면 흐름의 조상쯤 된다. 조상답게 요즘 것들과 닮은 데가 있고, 조상이라 안 닮은 데도 있다.

먼저 닮은 데. TV를 안 본 사람에게 닫혀 있다는 것. 사키가 뉴욕에 간 이유, 타키자와가 기억이 없는 이유, 열두 명이 백억 엔씩 들고 뭘 하는 건지, 영화는 하나도 다시 설명하지 않는다. 일본 리뷰 하나는 보기 전에 예습 복습을 잊지 말라고 썼다. 무한성편 1장도 원작 16권에서 18권 치를 바로 꺼내 놓고 최종장의 서막이라고 소개된다. 아는 사람만 들어오라는 문이다. 2009년이나 2025년이나 극장판은 팬에게 보내는 청구서다. 요금은 미리 TV로 냈다.

동쪽의 에덴 극장판 : 더 킹오브 에덴 스틸컷

안 닮은 데가 더 재미있다. 요즘 쪼갠 극장판은 한 편 안에서 싸움 하나는 끝낸다. 무한성편 1장은 쿠키 영상이 없는 대신 엔딩곡이 흐르는 사이 다음 편 상대 얼굴을 슬쩍 비춘다. 끝냈다, 다음 있다,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알려 주는 게 요즘 매너다. 레제편은 아예 한 편 안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빗속 공중전화에서 꽃을 건네며 시작한 사이가 카페 안 덴지의 뒷모습을 보는 레제의 눈으로 닫히고, 자막 뒤에는 카페에서 아직 기다리는 덴지 앞에 파워가 나타나는 장면 하나를 더 붙인다. 한 편이 한 이야기다.

동쪽의 에덴 1편은 안 끝낸다. 사키가 뉴욕에 가고, 택시에서 총이 쏟아지고, 다리 밑에서 그를 만나고, 영화관에 숨고, 트레일러가 미사일을 맞고, 비행기가 뜨고, 끝. 싸움 하나가 매듭지어지는 자리가 없다. 한국 리뷰 하나는 극장판이면 한 편마다 어느 정도 결론을 내 줘야 하는데 막 시작하려는데 끝난다고 썼고, 일본 리뷰는 특별한 진전이 없다, 사실상 데이트 영화다, 라고 썼다. 틀린 말이 아니다. 뉴욕 장면은 두 사람뿐이고, 나머지 열 명은 전화기 너머에서 바쁘다.

물론 요즘도 안 끝내는 영화는 있다. 무한성편 1장도 다음 편이 있으니 안 끝낸 영화다. 다만 거기서는 한 편 안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가 분명하고, 여기서는 누가 이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1번은 미사일을 쐈고, 11번은 트레일러를 잃었고, 9번은 비행기를 탔다. 점수판이 없다.

그런데 안 끝내는 방식이 요즘과 다르다. 요즘 극장판은 다음 편을 예고로 판다. 이 영화는 다음 편을 사람으로 판다. 11번 쿠로하가 자기 주이스를 실은 트레일러를 타키자와 대신 미사일 앞에 내어 주고, 영화는 그 장면에 슬퍼할 시간을 배정하지 않고 두 사람을 비행기에 태운다. 엔딩곡 중에 다음 상대 얼굴을 보여 주는 대신, 방금 사라진 사람 생각을 들고 극장을 나가게 한다. 불친절한데 솔직하다. 요즘은 예고편이 영화 안에 들어와 있고, 그때는 영화가 예고편 노릇까지 했다.

여기서 한 번 정색하겠다. 사키는 반년을 기다렸다가 전화기에 남은 한 줄을 들고 바다를 건넜고, 그때 관객은 앞 편이 끝나고 석 달 반 뒤에 나온 뒷 편을 기다리면 됐는데, 요즘 쪼갠 극장판의 관객은 2장이 언제 나올지 모른 채 2027년이니 그 뒤니 하는 말만 들으며 기다림이 이야기의 일부라는 걸 제작사 대신 배우고 있다. 기다리는 쪽은 늘 관객이다. 영화 속 사람은 반년이면 간다.

동쪽의 에덴 극장판 : 더 킹오브 에덴 포스터

흐름 속 위치를 정리하면 이렇다. TV에서 극장으로, 극장판을 둘로. 수순은 요즘과 같다. 다른 건 한 편의 크기다. 요즘은 쪼개도 한 편이 한 끼다. 이 영화는 쪼갠 반쪽이 정말로 반쪽이다. 그래서 요즘 눈으로 보면 모자라고, 요즘 눈을 빼고 보면 그때는 이렇게도 했구나 싶다. (빨래 개면서 보다가 끝나서 빨래가 남았다.)

볼까 말까. TV 열한 편을 봤으면 뒷 편과 붙여서 하루에 보는 게 맞다. 그래야 요즘 극장판 한 편 크기가 된다. 안 봤으면 이 영화가 아니라 TV부터다.

요즘 같으면 제목에 1장이라고 붙였을 것이다. 그때는 그냥 I 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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