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10

동쪽의 에덴 극장판 : 더 킹오브 에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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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보는 시간

필름속산책자· 2026. 10. 31.· 2,993자

당신에게 먼저 묻고 싶다. 이 영화를 어디서부터 보았는가. 극장판 1편의 첫 장면부터인가, 아니면 그보다 반년 앞서 방송된 열한 편의 첫 장면부터인가. 나는 뒤의 쪽이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열한 편을 옆에 놓지 않고는 쓸 수 없었다. 같은 사람이 만들었고, 같은 질문을 쥐고 있고, 무엇보다 같은 장면을 한 번 더 찍었기 때문이다.

전작

제작 정보부터 적어 둔다. TV 시리즈 「동쪽의 에덴」은 2009년 4월 9일부터 6월 18일까지 후지TV의 심야 애니메이션 시간대에서 열한 편이 방송됐다. 원작과 감독과 각본을 한 사람이 맡았고, 극장판도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 제작사도 같고, 캐릭터 원안을 그린 사람도 같다. 그러니 두 작품은 전작과 후속작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같은 문장을 두 번 쓴 것에 가깝다.

첫 편의 첫 장면. 졸업 여행으로 워싱턴에 간 사키가 백악관 앞에서 동전을 던지다 경찰과 실랑이가 붙는다. 그때 아무것도 입지 않은 일본인 남자가 나타난다. 손에 든 것은 권총과 휴대전화뿐이다. 그는 사키를 그 자리에서 빼내 주고, 사키는 그에게 코트를 건넨다.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전화기 속 목소리가 일러 준 아파트에는 가짜 여권이 여럿 있고, 그는 그중에서 타키자와 아키라라는 이름을 고른다. 두 사람은 함께 일본으로 돌아오고, 전화기에는 82억 엔이 들어 있다.

마지막 편의 마지막 장면. 일본으로 미사일 60발이 날아오고, 그는 자위대를 움직여 그것을 막는다. 그런 다음 주이스에게 자기를 이 나라의 왕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고, 기억을 지우는 프로그램을 받고, 전화기를 사키의 주머니에 넣어 둔 채 사라진다. 시리즈는 거기서 끝난다. 여러 리뷰가 그 끝을 두고 벌써 끝이냐고 물었다. 나도 물었다.

동쪽의 에덴 극장판 : 더 킹오브 에덴 스틸컷

관객이 앉은 자리를 하나만 적겠다. 첫 편에서 관객은 사키 옆에 앉아 있다. 사키가 아는 만큼만 알고, 사키가 놀라는 순간에 놀란다. 남자도 모르고, 사키도 모르고, 관객도 모른다. 셋이 같은 위치에서 출발한다.

이번 작품

극장판 1편은 2009년 11월 28일 일본에서, 2010년 1월 말 한국에서 공개됐다. 시리즈가 끝난 반년 뒤를 그린다. 상영 시간은 자료마다 82분과 85분으로 조금 다르게 적혀 있다.

이번에도 미국이다. 이번에도 사키가 있다. 이번에도 기억 없는 남자가 있다. 사키는 전화기에 남은 한 줄, 함께 있던 그곳에 있다는 말을 따라 혼자 뉴욕으로 간다. 그리고 브루클린 다리 아래 산책로에서, 짐에서 쏟아져 나온 총 가운데 남은 한 자루를 강에 던지려다 그를 만난다. 그가 먼저 말을 건다. 그는 사키를 모른다. 이름은 이이누마 아키라로 바뀌어 있고, 영화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사키의 사정을 듣고, 택시 영수증을 들고 가서 기사에게 빼앗긴 가방을 되찾아 온다.

여기가 같은 장면이다. 미국의 공공장소, 경찰이거나 그에 준하는 위협, 손에 든 총,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남자가 사키를 곤경에서 꺼내 준다. 백악관 앞 장면을 반년 만에 다시 찍은 것이다. 한 일본 리뷰는 이 되풀이를 두고 기억상실 설정을 다시 우려먹었다고, 두 번째 달인 차라고 썼다. 그 말을 부정하지 않겠다. 다만 나는 그것이 게으름이 아니라 의도라고 읽는다. 같은 장면을 다시 찍어야만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의 끝도 적어 두겠다. 모노노베가 주이스를 실은 트레일러를 미사일로 때리고, 쿠로하가 자기 트레일러를 타키자와 대신 내어 준다. 두 사람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시작하려는데 끝난다는 불만이 한국 리뷰에 있었다. 그 불만도 맞다.

사이

되풀이되는 것은 장면이고, 달라진 것은 그 장면에서 아는 사람의 수다.

첫 편의 백악관 앞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남자도, 사키도, 관객도. 이번 영화의 다리 아래에서는 한 사람만 모른다. 남자만 모른다. 사키는 알고, 관객은 더 많이 안다. 관객은 열한 편을 봤고, 그가 왜 모르는지까지 안다. 그러니 같은 장면인데 관객이 앉은 자리가 다르다. 첫 편에서 관객은 사키 옆에 앉아 처음 보는 사람을 봤다. 이번에는 사키의 뒤에 서서, 사키가 아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을 본다. 이 거리가 이 영화의 전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뉴욕 장면에 두 사람밖에 안 나와서 늘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늘어진다는 느낌의 정체는 아마 그것일 것이다. 관객은 알고 그는 모르는 시간이 길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지켜보는 시간은 늘 길다.

총의 자리도 바뀌었다. 첫 편에서 총은 남자의 손에 있었다. 이번에는 사키의 손에 있고, 사키는 그것을 버리려 한다. 남자가 쥐고 있던 위험을 반년 뒤 여자가 쥐고 있고, 여자는 그것을 강에 넣으려 한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단정하지 않겠다. 다만 같은 사물을 다른 손에 쥐여 준 것은 만든 사람이 한 일이지 우연이 아니다.

동쪽의 에덴 극장판 : 더 킹오브 에덴 포스터

그렇다면 두 작품은 같은 질문을 다시 묻고 있는가. 시리즈의 질문은 이 남자가 누구인가였다. 열 번째 편의 제목이 아예 그렇게 묻는다. 누가 타키자와 아키라를 죽였는가. 열한 편은 그 답을 향해 간다. 그는 미사일의 날에 2만 명을 옮긴 사람이고, 다시 미사일을 막은 사람이다. 극장판의 질문은 다르다. 이 남자를 누구로 만들 것인가. 그의 이름 앞에는 죽은 전 총리의 숨겨 둔 아들이라는 기록이 붙고, 그 기록을 누가 붙였는지는 자료마다 조금 다르다. 6번 세레손은 그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으려 하고, 공안은 그를 쫓는다. 시리즈에서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찾았다. 극장판에서는 남들이 그가 누구인지를 정한다. 그는 그 사이에서 영화관 일을 하고 있다. 같은 질문의 주어가 바뀐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너는 누구여야 하는가로.

쓰지 않으려 했다. 이 영화를 지지하는지 아닌지. 두 편짜리 영화의 앞 편만 두고 지지를 말하는 것이 온당한지 망설였다. 망설임은 망설임이라고 쓰고, 그래도 한 문장은 적겠다. 같은 장면을 다시 찍어서 관객이 앉은 자리를 옮겨 놓은 영화를 나는 지지한다.

마지막 장면은 비행기다. 두 사람이 일본으로 간다. 첫 편의 끝에서도 두 사람은 함께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둘 다 몰랐다. 지금은 한 사람이 안다. 반년 사이에 바뀐 것은 그것뿐이고, 그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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