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 2013

나 혼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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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기로 불을 켜도 우리는 똑같이 본다

붓끝수다· 2026. 11. 01.· 2,254자

혼자 사는 연예인의 집은 너무 좋다. 이 프로그램을 두고 가장 오래 돌아다니는 말이다. 나도 오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올가을 방송 두 편을 보고 나서,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다시 세어 보게 됐다.

통념

2021년 여름과 가을에 나온 두 비평이 같은 말을 한다. 하나는 제목을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나 혼자 잘산다」로 고쳐 부른다. 수십억 원짜리 집을 가진 사람들의 하루가 보통의 혼자 사는 사람의 현실과 너무 멀어서 보는 쪽에 박탈감을 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처음을 떠올린다. 가족을 외국에 보낸 아버지, 집에만 있는 사람, 쉰 넘어 혼자인 사람. 궁상맞고 짠해서 가까웠는데, 출연자들이 큰 스타가 되는 동안 보는 쪽과 정서가 갈라졌다고 한다. 소개문이 약속한 「사회적 공감대」를 집값이 밀어냈다는 진단이다.

이 말은 성실하다. 반박할 사실이 별로 없다. 집은 실제로 넓어졌고 가구는 비싸졌다. 통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통념이 원인으로 집값을 집은 것이 맞는지, 그것을 되묻고 싶다.

내가 본 것

10월 2일 방송. 동두천의 90년 가까이 된 집에 사는 배우가 나왔다. 아침에 신발을 신고 집 옆 수풀을 지나 발전기 줄을 힘껏 당긴다. 그제야 어두운 집 안 전구가 하나둘 켜진다. 물은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쓴다. 발전기 하나가 펌프까지 돌리는 바람에 샤워 도중 전구가 한꺼번에 깜빡인다. 아침은 바게트를 통째로 뜯는다. 부서진 바닥은 직접 시멘트로 메웠고, 목공과 무술 수련이 하루에 들어 있다. 낙법을 배우러 합기도 도장에 갔다가 사범 자격까지 땄고, 지금도 아이들을 가르친다. 혼자 산 지 28년이라고 했다. 「조금은 부족해야 더 행복한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부족한 걸 채워 가는 게 재밌다고도 했다.

통념대로라면 이 집은 「공감」의 집이어야 한다. 부자가 아니고, 전기도 제 손으로 만든다. 그런데 방송 뒤에 벌어진 일은 공감이 아니었다. 이 집이 진짜냐는 물음이 먼저 나왔다. 전봇대가 있는데 왜 발전기를 돌리느냐는 것이었고, 제작진은 실제 사는 집이며 촬영을 위해 준비한 장치가 아니라고 답했다. 그다음에는 사람들이 그 집으로 갔다. 4주 뒤 다시 나온 방송에서 사회자는 주변에서 언제 또 나오느냐고 묻더라고, 너무 화제가 됐다고 했다. 가난한 집을 보고 사람들은 자기 집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그 집을 보러 간 것이다.

9월 11일 방송은 반대쪽에서 같은 것을 보여 준다. 한 아나운서가 400만 원에 산 소형 승합차를 600만 원 들여 고쳤다. 에어컨은 달지 않았다. 「더운데 에어컨이 없네」라고 그는 차 안에서 말한다. 스튜디오에서 한 사람은 차를 바꿨으면 좋겠는데 돈을 너무 써서 바꿀 수도 없다고 한숨을 쉬고, 다른 사람은 자기라면 다른 걸 포기하고 에어컨을 달았겠다고 한다. 삼척 바닷가에서 수박을 자르다가 쪼개지자 속을 다 파내고 겉을 청테이프로 감는다. 감은 수박에서 물이 샌다. 촛대바위 앞에서 모르는 시민이 「장가가시겠네」라고 하고, 스튜디오에서 그는 비혼은 아니라고, 요즘 외롭긴 하다고, 억지로 결혼하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사람은 돈을 썼다. 천만 원을 썼다. 그런데 아무도 그 돈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 돈이 보는 사람과 그 사람 사이를 벌리지도 않는다. 벌리는 것은 액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 혼자 산다 스틸컷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통념이 집은 원인이 어긋난다. 비싼 집이 공감을 막은 게 아니다. 가난한 집도 공감을 만들지 않았다. 보는 쪽이 하는 일이 처음부터 공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싼 집은 부러워서 구경하고, 발전기 집은 신기해서 구경한다. 어느 쪽이든 구경이다. 소개문은 「사회적 공감대」를 약속했지만, 금요일 밤에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들여다보는 일은 집값에 따라 온도가 달라질 뿐 종류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 통념은 왜 집값을 집었을까. 아마 구경이라고 말하면 보는 자기가 불편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출연자가 너무 잘산다고 하면 책임이 화면 안으로 간다. 내가 남의 집을 구경한다고 하면 책임이 소파로 온다. 나는 소파 쪽이 맞다고 본다.

이 해석도 의심한다. 열세 해를 구경으로 버틴 프로그램이라면, 구경이 공감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수박에 청테이프를 감는 사람을 보고 웃다가 외롭다는 말에 잠깐 멈추는 것. 그것이 공감이 아니라고 할 근거가 내게는 없다.

나 혼자 산다 포스터

다시 처음으로. 혼자 사는 연예인의 집은 너무 좋다. 이 말은 맞다. 다만 그 집이 발전기로 불을 켜도 우리는 똑같이 본다. 그러니 문제가 있다면 집이 아니라 보는 눈에 있을 것이다. 그 눈을 어떻게 고치는지는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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