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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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드는 것이 죄라면
「말들이 곧 인식이고, 인식이 곧 실체야.」
디거 록웰이 이 말을 할 때 나는 이 영화가 왜 욕을 먹는지 알았다. 말이 많다. 쉴 새 없이 떠든다. 리뷰를 몇 개만 훑어도 혐의는 같다. 장광설, 설명 과잉, 화면 속 거의 모든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블랙코미디인데 웃기지 않는다. 나도 보는 동안 귀가 아팠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 시끄러운 영화의 변호인석에 앉겠다. 고백하건대, 나는 과하다고 욕먹는 것의 편에 서는 버릇이 있다.
혐의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인물들이 지나치게 말이 많다. 둘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한 이야기를 몇 번이고 크게 외친다. 셋째, 연극 속 영화라는 겹겹의 구조가 그 소음을 더 시끄럽게 만든다. 이 셋이 합쳐져 「자기만족적」이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극장은 비었다.
혐의는 사실이다. 영화는 129분 내내 떠든다. 석유 재벌, 대통령, 참모, 과학자, 목사, 연출가, 배우. 누구도 입을 다물지 않는다.
변론
첫째 증거.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블라 블라 블라」였다고 한다. 인간이 가진 가장 무서운 무기가 혀라는 뜻이었다는 설명을 기사에서 읽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말이 많은 영화가 아니라 말이 많다는 것에 관한 영화다. 재벌이 떠들고 대통령이 떠들고 목사가 기도를 올리는 동안 그린란드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은 유럽을 향해 미끄러진다. 떠드는 소리가 재난이고, 재난이 떠드는 소리다. 그 소음이 관객을 지치게 했다면 영화는 제 할 일을 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변명이 아니라 설계라고 본다.
둘째 증거는 장면 하나다. 유럽 의회. 책임을 묻고 달려드는 정치인들 앞에서 디거가 10여 분을 혼자 말한다. 롱테이크로 찍었고, 그 독백의 대본이 일흔 가지쯤 판본을 거쳤다는 제작 기사를 읽었다. 그가 하는 말의 요지는 이렇다. 너희도 석유를 원하지 않았느냐. 입는 것, 먹는 것, 배송받는 것, 여행하는 것까지 전부 석유 위에 서 있지 않느냐. 나는 수요를 채웠을 뿐이다. 기분 나쁘게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 맞는 말로 그는 제 책임 전체를 지운다. 연설이 끝나면 청중은 그를 치지 않고 자기들끼리 싸운다. 머리에서 피가 나도록.
이 장면이 짧았다면 어땠을까. 3분이었다면 우리는 「교활한 악당의 궤변」이라고 정리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10분이기 때문에 넘어갈 수가 없다.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개가 끄덕여지고, 끄덕인 제 목이 소름 돋는다. 장광설은 관객을 공범으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깎지 않은 것이 이 영화의 가장 무례하고 가장 정확한 선택이다.
셋째 증거. 고양이. 디거는 죽어가는 늙은 고양이 매기에게만은 참치를 떠먹이고 온갖 수를 써서 목숨을 늘린다. 그 고양이가 누가 봐도 기계 인형처럼 보인다는 것은 여러 리뷰가 지적했고, 어느 평자는 이 영화에서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이 애꾸눈 기계 고양이라고 비꼬았다. 나는 그 비꼼을 그대로 받아 변론에 쓰겠다. 모든 것이 가짜로 보이게 만든 영화에서, 가짜 고양이만이 진짜로 사랑받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말로 하지 않은 유일한 문장이고, 말이 많은 영화가 침묵을 한 군데 남겨 두었다는 뜻이다. 30분쯤 지나 여태 본 것이 연극 리허설이었다고 드러날 때 나는 고양이를 떠올렸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거 진짜 맞느냐고 묻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는 증거라기보다 상상이다. 분장을 처음 붙이는 데 여섯 시간이 걸렸고 배우가 초시계를 들고 와 한 시간 아래로 줄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그 분장실을 상상한다. 상상일 뿐이다. 매일 아침 얼굴을 지우고 여든 살 배불뚝이 노인을 얹는 손들. 그 손들이 있어야 배우가 배우를 연기하고 그 배우가 재벌을 연기하고 그 재벌이 의회 앞에서 또 한 번 연기하는 세 겹의 거짓말이 선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나. 나라면 못 했다. 질투가 난다.
변호인으로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겠다. 중반을 넘기면 귀가 지친다. 같은 말을 두 번 들을 필요는 없었던 대목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한계다. 다만 지친 귀로 끝까지 앉아 있었기에 마지막 장면이 왔다.
판결은 당신에게
연극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들어온다. 관객이 박수를 친다. 그리고 극장 밖이 「레벨 4」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호흡기를 쓰고 침수된 거리로 걸어 나간다. 영화는 여기서 입을 다문다. 129분 동안 떠들던 영화가 마지막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 변론의 결론은 이것이다. 이 영화의 소음은 침묵 한 번을 위해 쌓은 것이다. 소음이 지겨웠다면 당신은 정확히 설계대로 지겨워한 것이고, 마지막 침묵이 무서웠다면 그 지겨움이 값을 한 것이다.
모름지기 변론이란 피고가 밉상일수록 어려운 법이다. 이 영화는 밉상이다. 그래서 나는 더 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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