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3
더 와일드: 야수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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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나온 차, 돌아선 칼
교도소 문이 열린다. 남자가 나온다. 여덟 해를 안에서 살았다. 문 앞에 차 한 대가 서 있다. 차에서 친구가 내린다.
첫 장면
마중 나온 사람은 도식이다. 여덟 해 전 같은 조직에 있었다. 지금은 그 조직의 우두머리다. 도식이 말한다. 같이 일하자. 우철이 답한다. 조용히 지내겠다. 두 사람은 같은 차에 탄다.
이 장면에 있는 것을 적는다. 문. 차. 두 남자. 한 사람은 제안하고 한 사람은 거절한다. 거절한 사람이 제안한 사람의 차에 탄다. 영화의 110분은 이 한 동작에서 나온다.
도시는 바닷가에 있다. 차는 그 도시로 간다. 거기에 형사 정곤이 있다. 배지를 달고 약을 판다. 자기도 약을 한다. 거기에 봄이라 불리는 여자가 있다. 손목에 지난 일의 흔적이 있다. 영화는 그 일을 설명하지 않는다.
여덟 해 전의 일은 뒤에 나온다. 불법 도박장. 링. 우철은 상대를 쳤고 상대는 죽었다. 상대의 몸에서 약이 나왔다. 약을 먹인 사람은 도식이었다. 우철은 그 일을 덮기 위해 스스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문 앞에 서 있던 차의 주인은 우철이 여덟 해를 대신 산 사람이다. 그 여덟 해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영화는 뒤에 가서 말한다.
우리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
누군가 묻는다. 영화가 앞세우는 문장이다. 첫 장면이 답이다. 여기서부터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은 세 문장이면 된다. 우철은 봄이라 불리는 여자를 지키려고 형사 정곤을 쳤고, 도식이 정곤과 거래해 그를 빼냈다. 대신 북에서 넘어온 마약 조직의 두목 각수를 죽이라는 주문이 떨어졌고, 우철은 각수를 죽이지 않고 손을 잡았다. 봄의 본명은 최명주이고, 여덟 해 전 링 위에서 죽은 복서의 연인이었다.
마지막 장면
칼이다. 쥔 손은 한태의 것이다. 한태는 우철이 데리고 다닌 젊은 사람이다. 우철이 마음에 들어 했고, 한태는 술집에서 일하는 예리에게 마음을 두었다. 그 손이 우철을 찌른다. 우철은 쓰러진다.
그 앞의 일도 적는다. 도식은 자기 오른팔 윤재의 칼에 쓰러졌다. 정곤은 우철의 총에 쓰러졌다. 정곤은 그 전까지 우철을 여러 번 때렸다. 우철은 맞았다. 그리고 영화는 장면 하나를 더 붙인다. 명주다. 약이 그 옆에 있다.
죽은 복서에게는 동생이 있다. 상환이다. 형을 죽인 남자가 형의 연인과 가까워지는 것을 본다. 정곤이 그 귀에 말을 넣는다. 상환은 끝에 가서 손을 쓴다. 영화에서 칼을 드는 손은 하나가 아니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나란히 놓는다. 둘 다 우철 옆에 자기 사람이 있다. 첫 장면에는 친구가, 마지막에는 후배가. 첫 장면의 친구는 우철을 차에 태웠고, 마지막의 후배는 우철을 찔렀다. 두 사람 다 우철이 먼저 믿은 쪽이다.
첫 장면에서 우철은 거절했다. 거절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철은 거절하지 못한다. 칼은 제안을 하지 않는다.
바뀐 것은 손에 든 것이다. 우철은 주먹으로 들어갔다. 주먹으로 사람을 죽였고 그 값으로 여덟 해를 냈다. 나와서 처음 쓴 것도 주먹이었다. 형사를 쳤다. 끝에 가서 그는 총을 들었다. 그리고 칼에 죽었다. 주먹, 총, 칼. 그 순서로 그의 손에서 멀어진다. 마지막 칼은 그의 손이 아니라 남의 손에 있다.
바뀌지 않은 것은 약이다. 여덟 해 전 링 위의 상대 몸에 약이 있었다. 마지막 장면 명주 옆에 약이 있다. 남자들이 다 쓰러진 뒤에도 약은 그 자리에 있다. 바닥에 떨어진 약과 주사기는 영화 중간에도 나온다. 사람은 바뀌고 약은 안 바뀐다.
죽음도 인생이다.
누군가 말한다. 이 영화 안에서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집계다.
강한 놈만 살아남는다고 영화는 광고했다. 네 남자 중 가장 강한 것은 복서였다. 복서가 죽었다. 광고와 영화가 다른 말을 한다. 영화 쪽이 맞다.
나의 의견은 이것이다. 이 영화는 첫 장면에서 이미 끝났다. 거절한 사람이 제안한 사람의 차에 탄 순간, 그 뒤의 110분은 그 승차의 청구서다. 영화는 그 청구서를 한 장도 빼지 않고 보여 준다. 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고 단점이다.
한태가 왜 찔렀는지 영화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개는 주인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버리는 쪽은 주인이라고. 한태가 자기를 버려진 개로 여겼는지, 아니면 다른 셈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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