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3

더 와일드: 야수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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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살겠다는 사람의 다음 직장

고요한땀· 2026. 10. 29.· 2,569자

나는 웃기려는 영화에서는 잘 웃지 못하고, 웃기려 하지 않는 영화에서 자주 웃는다. 성격의 결함이다. 이 영화는 웃기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다. 교도소에서 나온 전직 복서, 약을 파는 경찰, 북에서 넘어온 마약 브로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판을 짜는 조직의 친구. 음악도 조명도 한 번도 웃으라는 신호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여섯 번쯤 웃었다. 웃은 자리를 적어 두고, 왜 웃었는지는 나중에 변명하겠다. 미리 말해 두면, 전부 영화가 가장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였다.

  1. 조용히 살겠다는 사람의 다음 직장. 우철은 친구 도식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다음에 그가 떠올리는 일자리는 게잡이 배다. 한국 영화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남자는 전부 바다로 간다. 육지에는 조용한 자리가 한 군데도 없다는 뜻인지, 바다에 가면 아무도 따라오지 못한다는 믿음인지 나는 모른다. 어느 쪽이든 그 남자는 배에 타지 못한다. 배에 탈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영화는 15분에 끝났을 것이다.
  2. 조용히 살겠다는 사람이 가장 먼저 때린 사람. 우철은 나오고 얼마 안 되어 봄이라 불리는 여자가 험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상대를 때린다. 상대는 경찰 정곤이다.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때리지 말아야 할 직업이 하나 있다면 그것이다. 그는 그 직업부터 때렸다. 영화는 이 장면을 정의감으로 찍었고 나는 정의감으로 보았지만, 조용히 살겠다는 말과 그 주먹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짧다는 사실만은 웃지 않고 넘기기 어려웠다. 그 뒤로 그는 친구와 경찰 사이의 거래에 묶이고, 그 거래의 값으로 사람을 죽이러 가라는 말을 듣는다. 조용히 살기 위해 낸 첫 주먹이 가장 소란한 길을 열었다.
  3. 복싱을 진지하게 찍었다는 말. 우철과 도식이 주먹을 나누는 장면이 있다. 배우는 이 장면을 굉장히 진지하게 찍었는데 보는 사람들이 웃었다고 간담회에서 말했다.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을 죽인 주먹과 그 죽음을 설계한 사람이 나란히 서서 주먹을 나눈다. 두 사람 다 그 손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고, 그걸 아는 사람들이 복싱을 한다. 진지함이 모자라서 웃긴 게 아니라 진지함이 너무 정확해서 웃긴 것이다.
  4. 경찰이 꼭 있어야 하는 거래.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각수와 마약을 거래하는 자리에는 비리 경찰 정곤이 있어야 한다. 불법 거래에 공증인이 필요하고, 그 공증인이 경찰이다. 그는 약을 팔고 자기도 약을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웃고 나서 조금 무서워졌다. 법이 없는 세계가 아니라 법이 참석하는 세계라서다. 참석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은 없는 법보다 비싸다.
  5. 살 돈이 아까워서 죽이기로 하는 셈. 내가 본 자료가 맞다면, 도식은 각수에게서 큰 물량을 받기로 약속해 놓고 돈이 아깝다고 느낀다. 그래서 친구를 보내 각수를 치우려 한다. 값을 치르는 대신 판매자를 없애면 물건이 공짜가 된다는 계산이다. 물건값이 아깝다고 점원을 없애는 손님은 없는데, 이 세계에서는 그게 할인이다. 웃고 나면 한 칸 뒤에 더 나쁜 생각이 온다. 도식은 8년 전에도 같은 셈을 했다. 상대 선수에게 약을 먹이는 값이 정직하게 지는 값보다 쌌던 것이다.
  6. 입에 들어간 총. 정곤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말이 많은 사람이다. 배우는 자기 연기를 주둥이 액션이라고 불렀고, 입을 거칠게 하려고 고향 사투리와 욕을 얹었다고 했다. 영화는 그 입에 권총이 들어가는 장면을 찍었다. 말 많은 사람의 입을 막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영화가 그 말장난을 알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알고 했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영리한 장면이고, 모르고 했다면, 그래도 영리한 장면이다.
더 와일드: 야수들의 전쟁 스틸컷

변명을 하겠다. 위의 여섯 장면은 전부 진지하게 찍혔다. 웃긴 것은 연출이 아니라 상황의 논리다. 사람이 자기 원칙을 세운 직후에 그 원칙을 깨는 것, 값을 아끼려다 더 큰 값을 치르는 것, 말로 사는 사람이 말 때문에 죽는 것. 전부 오래된 농담의 뼈대인데, 영화는 그 뼈대 위에 농담 대신 피를 올렸다. 이 영화의 사람들은 각자 자기 셈이 정확하다고 믿고 움직이고, 그 셈이 하나하나는 전부 맞는다. 도식의 셈도 맞고 정곤의 셈도 맞고 우철의 거절도 맞다. 전부 맞는 셈이 한 방에 모이면 전부 죽는다. 블랙코미디란 그런 것이다. 틀린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결과가 참사인 것.

그렇다면 영화는 이 우스움을 알고 있는가. 반쯤은 알고 있다고 본다. 감독은 이 영화가 마약 영화가 아니라 종교 영화라고, 욕망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농담으로 듣지 않았다. 구원을 말하는 영화가 끝에 가서 거의 아무도 남기지 않는 것은, 영화가 자기 뼈대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알면서 웃지 않기로 한 영화와 몰라서 웃지 않은 영화는 화면에서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내가 여섯 번 웃은 것이 영화의 공인지 내 결함인지, 거기까지는 확신이 없다.

더 와일드: 야수들의 전쟁 포스터

끝에 가면 네 남자 중 셋이 쓰러지고 명주는 약 옆에 남는다. 웃을 사람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까지 코미디가 아니다. 내가 여섯 번 웃은 것은 전부 그 전이었고, 마지막은 웃을 틈을 주지 않았다. 그것이 이 영화가 자기 우스움을 다루는 방식이라면, 그 방식은 정직하다. 웃기지 않은 장면이 웃긴 이유를 끝까지 설명하지 않고, 대신 웃을 사람을 하나씩 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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