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3

더 와일드: 야수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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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를 만날 확률을 어림잡아 보았다

막판뒤집기· 2026. 10. 29.· 2,778자

8년. 영화가 처음에 내놓는 숫자다. 불법 도박장의 링 위에서 상대를 죽인 전직 복서 우철이 받은 형량이다. 영화는 그가 모범수로 나오는 날에서 시작하고, 교도소 앞에는 옛 동료 도식이 차를 대고 서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셈을 세 번 했다. 틀릴 수 있는 셈이다. 가정은 가정이라고 쓰겠다.

계산 1. 8년은 얼마나 긴가

8년을 날로 바꾸면 2,900일이 조금 넘는다. 시간으로는 7만 시간쯤 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중학교까지 마치는 길이다. 영화는 그가 8년을 다 채웠는지, 모범수 사면으로 얼마를 덜었는지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넉넉하게 8년으로 놓는다. 덜 살았다면 뒤의 계산이 조금 줄어들 뿐이고,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이 숫자가 왜 중요한가. 우철은 나오면서 조용히 지내고 싶다고 말한다. 조용히 지낸다는 말에는 값이 붙어 있다. 복서라는 직업에서 8년은 한 사람의 전성기 전체와 맞먹는 길이다. 스무 살에 데뷔해 서른을 넘기며 물러나는 선수들을 떠올리면 그렇다. 이것도 가정이다. 영화는 우철이 몇 살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둘로 줄어 있다. 친구가 권하는 일, 아니면 바다로 나가는 일. 영화에는 게잡이 배 이야기가 나온다. 7만 시간을 안에서 보낸 사람 앞에 선택지가 둘뿐이라는 것이 첫 번째 계산의 결과다. 영화는 이걸 알고 있다. 도식이 교도소 앞에 서 있는 이유도 아마 그것일 것이다. 선택지가 둘뿐인 사람은 한 선택지만 막아도 된다.

계산 2. 그 여자를 만날 확률

우철은 출소 직후 봄이라 불리는 여자를 만난다. 뒤에 밝혀지는 사실이 있다. 그 여자의 본명은 최명주이고, 8년 전 링 위에서 우철의 주먹에 죽은 복서 지환의 연인이었다. 지환에게는 동생 상환이 있다. 상환은 형을 죽인 남자와 형의 연인이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본다.

이게 우연이라면 얼마나 드문 우연인지 어림잡아 보자. 가정 하나. 영화의 무대는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라고 감독이 밝혔으니, 거기 사는 성인 여성을 10만 명으로 놓는다. 가정 둘. 그중 우철의 지난 일과 얽힌 사람은 한 명이다. 그러면 출소 직후 처음 말을 트는 여자가 바로 그 사람일 확률은 10만 분의 1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칸의 지하철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는 일, 여행지 식당에서 옆집 사람과 마주치는 일, 중고 서점에서 내가 팔았던 책을 다시 사게 되는 일. 그 정도로 드물다.

확률이 이만큼 낮으면 보통은 우연을 버리고 설계를 의심한다. 영화도 같은 답을 내놓는다. 봄은 우연히 거기 있던 게 아니라 도식이 우철에게 보낸 여자였다. 그러니까 10만 분의 1은 애초에 확률이 아니었다. 누군가 분모를 1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계산은 이야기를 흔들지 않고 오히려 받쳐 준다. 억지라고 느껴지는 만남이 사실은 억지가 맞고, 억지를 부린 사람이 영화 안에 있다.

다만 영화가 그 설계를 얼마나 알고 비틀었는지는 내가 확신하지 못한다. 도식이 봄의 지난 일까지 알고 보냈는지, 거기까지는 몰랐는지, 내가 본 자료로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 알고 보냈을 것이다. 알고 보냈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은 칼이 나오는 장면이 아니라 두 사람이 처음 인사하는 장면이다.

더 와일드: 야수들의 전쟁 스틸컷

계산 3. 네 남자, 배신의 자리 수

우철, 도식, 정곤, 각수. 네 남자가 있다. 둘씩 짝을 지으면 여섯 쌍이 나온다. 배신에는 방향이 있으니 누가 누구를 치는지까지 따지면 자리는 열두 개다. 영화가 그 열두 자리 중 몇 개를 쓰는지 세어 보았다.

확인된 것만 적는다. 도식은 8년 전 지환에게 약을 먹였고, 우철은 그 일을 덮기 위해 스스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첫 배신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끝나 있다. 우철이 나온 뒤에는 도식과 비리 경찰 정곤이 거래해 우철을 빼내고, 그 값으로 우철에게 북에서 넘어온 마약 브로커 각수를 치라고 시킨다. 도식은 정곤도 거추장스럽게 여겨 우철의 손으로 치우려 한다. 각수는 자기를 죽이러 온 우철을 마음에 들어 한다. 끝에 가면 도식은 자기 부하 윤재의 칼에, 정곤은 우철의 총에 쓰러지고, 우철은 적이 아니라 곁에 있던 젊은 조직원의 칼에 쓰러진다.

여기에 조연들의 칼까지 넣으면 자리는 더 늘어나지만, 네 남자만 놓고 세면 열두 자리 중 대여섯이 찬다. 많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 장르의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면 특별히 큰 숫자는 아니다. 이 영화가 다른 점은 숫자가 아니라 순서다. 가장 큰 배신이 가장 앞에, 그러니까 상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놓여 있다. 뒤의 배신들은 그 첫 번째의 이자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한 달 만에 썼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 이 순서가 더 이해된다. 한 달 안에 열두 자리를 다 채울 수는 없다. 대신 가장 큰 하나를 맨 앞에 묻어 두고, 나머지 110분을 그것을 파내는 데 쓰는 쪽을 택했다. 적은 재료로 긴 시간을 버티는 방법으로 나쁘지 않다. 다만 파내는 데 110분이 다 필요했는지는 조금 의심한다.

더 와일드: 야수들의 전쟁 포스터

셈을 셋 하고 나니 남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7만 시간, 10만 분의 1, 열두 자리 중 대여섯. 이 숫자들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주는 우철이 몇 해를 안에서 보냈는지 세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 속 사람들은 전부 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식은 아마 우철이 자기 대신 산 햇수를 셀 것이고, 상환은 형이 죽은 날부터의 날수를 셀 것이다. 의미 없는 숫자에 의미를 붙이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인다. 나는 그 점이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람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추신. 내가 본 자료들은 명주가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지를 서로 다르게 적고 있었다. 약 옆에 남겨진다는 데까지는 같다. 그 뒤는 쓰지 않는다. 확인하지 못한 숫자는 계산에 넣지 않는 것이 이 글의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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