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2
아이스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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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가지 않는 매머드 곁에서
요즘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계세요.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데 왜 그걸 먼저 묻느냐 하실 수도 있어요. 「아이스 에이지」는 2002년에 나온 81분짜리 애니메이션이고, 매머드 한 마리와 나무늘보 한 마리와 검치호랑이 한 마리가 사람 아기를 가족에게 데려다주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는 그게 거의 전부예요. 그런데 이 단순한 길이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꽤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서, 오늘은 「어떤 분께 어떤지」를 하나씩 적어 보려고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저는 전문가가 아니고, 아래 적은 것은 한 관객의 감상입니다. 결말도 적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쪽으로 갈 마음이 나지 않는 분께
영화의 첫머리에서 동물들은 빙하기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큰 줄기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데, 매머드 매니만 그 흐름을 거슬러 반대쪽으로 걸어요. 이분은 남쪽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덥고 붐비는 데를 누가 가느냐고 받아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좋았습니다. 모두가 가는 방향이 있고, 거기에 발이 안 떨어지는 날이 있잖아요. 그럴 때 매니처럼 투덜거리는 말로 버티는 분이 계실 거예요. 영화는 이분을 다그치지 않습니다. 왜 혼자 거꾸로 가는지도 한참 뒤에, 얼음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으로 조용히 알려 줄 뿐이에요. 사람 손에 가족을 잃은 매머드가 사람들이 몰려 사는 쪽으로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조심할 점이 있어요. 그 동굴 장면은 대사 없이 지나가는데,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이유가 누군가를 잃은 일이라면 이 장면이 생각보다 길게 남을 수 있습니다. 혼자 보시는 날이면 그 장면 앞에서 잠깐 멈춰도 괜찮다고 저는 생각해요.
맡은 일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무거운 분께
강가에서 매니와 시드는 아기를 떠맡게 됩니다. 아기 엄마는 호랑이에게 쫓겨 아기를 안고 폭포로 뛰어들었고, 물가에서 아기를 두 동물 쪽으로 올려 보낸 뒤 물속으로 사라져요. 영화는 그다음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시드는 아기를 두고 갈 수 없다고 하고, 매니는 「우리」라는 건 없다고, 처음부터 없었다고 선을 긋습니다. 그러고도 매니는 아기와 함께 걷기 시작해요. 저는 이 어긋남이 참 사람 같다고 느꼈습니다. 말로는 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몸은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는 날들이 있잖아요. 이분이 아기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에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아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조심할 점은 아기 엄마가 사라지는 장면이 영화 초반에 있다는 것이에요. 아이와 같이 보시는 분이라면 그 장면에서 아이가 「저 엄마 어디 갔어」 하고 물어 올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이 올 수 있다는 걸 미리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 다를 거예요.
믿어도 되는지 모를 사람이 곁에 있는 분께
검치호랑이 디에고는 아기를 데려오라는 두목 소토의 명령을 받고 일행에 끼어듭니다. 사람 흔적을 자기가 더 빨리 쫓을 수 있다고 하면서요. 매니는 이분을 믿지 않고, 그래도 길잡이로는 쓰기로 합니다. 믿지 않으면서 같이 걷는 것, 이게 영화의 중간 부분 전체예요. 저는 디에고의 자리에 먼저 서 보고 싶었습니다. 무리의 절반을 사람에게 잃었다는 이분에게 아기는 복수의 값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아기를 보는 눈이 흔들리는 것도, 그걸 들키지 않으려는 것도 이상해서가 아니에요. 그런데요, 이유가 있다고 해서 두 동물을 매복 자리로 끌고 가던 일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영화도 그 점을 쉽게 넘기지 않아요. 용암 위에서 매니가 목숨을 걸고 디에고를 건져 올린 다음에야, 디에고는 앞에 매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털어놓습니다.
곁에 믿기 어려운 사람이 있는 분께 이 영화가 「믿어 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다만 믿지 않는 채로도 같은 길을 걷는 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상대가 먼저 입을 열 자리를 남겨 둔 것이 매니가 한 일이었다는 것은 적어 두고 싶어요. 조심할 점은 「결국 돌아선다」가 영화의 답이지, 현실의 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웃을 힘이 하나도 없는 분께
길 가운데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대목이 있습니다. 얼굴을 가렸다 보이며 「아기 어디 갔지, 여기 있네」 하는 까꿍 놀이를 되풀이해도 소용이 없어요. 그런데 디에고가 험한 얼굴을 쑥 내밀자 아기가 웃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처음 소리 내어 웃었어요. 웃기려고 애쓴 쪽은 실패하고, 웃길 마음이 전혀 없던 쪽이 웃긴다는 것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웃을 힘이 없는 날에는 웃기려 드는 사람이 오히려 버거울 때가 있잖아요. 이 영화의 웃음은 대체로 그런 식이에요. 도토리 하나를 묻으려는 다람쥐가 잊을 만하면 끼어드는 것도, 무언가를 해내려다 어긋나는 쪽이 웃음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조심할 점은 따로 없는데, 다만 이 영화가 내내 가볍지는 않다는 것은 미리 적어 둡니다.
보지 않는 편이 나은 분께
최근에 아이를 돌보던 중 큰 이별을 겪은 분께는 이 영화를 권하기 어렵습니다. 초반의 폭포 장면이 그래요. 엄마가 아기를 물가에 밀어 올리고 사라지는 그 몇 초를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지나가는데, 설명이 없어서 더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또 마지막에 두목 소토가 떨어지는 고드름에 맞아 죽는 장면이 있어요. 아이용 영화답게 잔인하게 그리지는 않지만, 죽음을 직접 보여 주는 장면이기는 합니다. 이 두 장면이 지금의 마음에 걸릴 것 같으면 조금 뒤로 미루어도 늦지 않습니다. 영화는 어디 가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한마디
영화 끝에서 매니는 아기를 아버지에게 돌려주고, 크게 다친 줄 알았던 디에고도 걸어 돌아오고, 세 동물은 그제야 남쪽으로 향합니다. 영화 첫머리에서 혼자 거꾸로 걷던 매머드가 마지막에 둘과 함께 남쪽으로 걷는 것. 이 영화가 한 일은 사실 그 방향 하나를 바꾼 것뿐이에요. 누가 설득해서가 아니라, 옆에서 같이 걸은 시간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거꾸로 걷고 있는 분이 곁에 계시면, 방향을 돌리라는 말 대신 그 옆에서 얼마쯤 같이 걸어 주세요. 그거면 된다고, 저는 그렇게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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