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2
아이스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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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이유, 그중 하나는 약하다
결론부터 적는다. 「아이스 에이지」(2002)는 좋은 영화다. 81분짜리 애니메이션이고, 매머드와 나무늘보와 검치호랑이가 사람 아기를 가족에게 데려다주는 이야기이며, 줄거리를 이 한 문장 밖으로 늘릴 필요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좋다고 말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유를 셋으로 줄였다. 셋 중 하나는 다른 둘보다 약하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어느 것이 약한지는 끝에 말한다.
같은 상처에서 다른 답을 꺼내는 각본
이 영화에는 사람에게 가족을 잃은 짐승이 둘 있다. 하나는 검치호랑이 무리의 두목 소토다. 사람들이 무리의 절반을 죽였고, 소토는 그 값으로 사람 우두머리의 아기를 데려오라고 부하 디에고에게 명령한다. 다른 하나는 매머드 매니다. 매니가 왜 혼자 다니는지 영화는 한참 동안 말하지 않다가, 얼음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으로 사람 손에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같은 상처다. 그리고 영화는 같은 상처에 두 개의 답을 붙인다. 소토는 아기를 빚으로 본다. 매니는 같은 아기를 데리고 사람들에게 돌려주러 간다. 각본은 이 대칭을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누구도 「우리는 같은 일을 겪었다」고 말하지 않고, 결말이 대신 말한다. 소토는 하프 피크에서 매니를 덮치다 떨어진 고드름에 죽고, 매니는 아기를 안으러 온 아버지에게서 조개와 구슬로 엮은 목걸이를 받는다. 복수를 택한 쪽과 돌려주기를 택한 쪽에게 영화가 쥐여 주는 마지막 물건이 다르다.
반론을 하나 적어 둔다. 이 대칭이 너무 깔끔해서 교훈처럼 읽힌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복수하면 죽고 돌려주면 선물을 받는다는 결말은 아이들 영화가 늘 하던 판정 아닌가. 일리가 있다. 다만 나는 영화가 그 판정을 말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구도 소토에게 「너도 가족을 잃었지 않느냐」고 묻지 않고, 매니도 자기 과거를 아기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두 상처가 같은 종류라는 것은 보는 사람이 동굴 벽과 소토의 첫 명령을 스스로 맞춰 봐야 알게 된다. 교훈은 말해 줄 때 교훈이 되고, 맞춰 보게 할 때는 구조가 된다.
디에고는 이 둘 사이에 있다. 소토의 상처에 속해 있으면서 매니의 길을 걷는다. 용암 벌판에서 매니가 목숨을 걸고 그를 건져 올린 뒤 디에고는 매복 계획을 스스로 털어놓는데, 나는 이 전향을 갑작스럽다고 보지 않는다. 그가 고른 것은 새 마음이 아니라 두 답 중 하나다. 같은 상처를 가진 두 어른 가운데 누구를 따를지 정하는 일이고, 영화는 그 선택지를 처음부터 깔아 두었다.
웃음과 침묵을 한 동굴에 넣은 연출
세 짐승은 아기를 데리고 길 가운데 얼음 동굴을 지난다. 앞부분은 미끄럼틀이다. 얼음 길을 타고 떨어지고 부딪치고 다시 미끄러지는데, 그 사이로 얼음 속에 갇힌 생물들이 차례로 지나가며 진화 과정을 빗댄 농담이 된다. 대사가 거의 필요 없는 구간이고, 속도와 부딪치는 몸만으로 웃긴다. 개봉 당시의 평 가운데 이 동굴 대목을 영화에서 가장 웃기는 장면으로 꼽은 글이 있었다.
같은 동굴의 뒷부분에 벽화가 있다. 매니가 가족을 어떻게 잃었는지 영화가 유일하게 보여 주는 자리이고, 말이 없다.
내가 칭찬하는 것은 벽화 장면 자체가 아니라 배치다. 가장 시끄러운 웃음 바로 뒤에 가장 긴 침묵을 두었고, 둘을 다른 장소로 떼어 놓지 않고 한 동굴 안에 이어 붙였다. 미끄러져 내려온 몸이 아직 들떠 있을 때 벽이 나타난다. 그래서 침묵이 더 크게 들린다. 웃음을 완충재로 쓴 것이 아니라 대조로 쓴 것이고, 이 선택은 아이들이 보는 영화에서 흔하지 않다.
본 이야기와 끝내 섞이지 않는 다람쥐
영화는 다람쥐 스크랫으로 시작한다. 도토리 하나를 얼음에 박으려다 빙하 전체에 금을 내는 장면이다. 이 다람쥐는 그 뒤로도 잊을 만하면 돌아오지만, 세 짐승의 여정과는 한 번도 제대로 합류하지 않는다. 자기 도토리만 쫓는다. 그래서 스크랫의 장면들은 본 이야기 밑에서 따로 돌아가는 두 번째 영화처럼 보인다. 아기와 복수와 매복으로 무거워질 때마다 이 두 번째 영화가 잠깐 올라와 숨을 바꾼다. 리듬을 만드는 장치로서 영리하다.
다만 이것이 셋 중 가장 약한 이유다. 제작 과정을 보면 첫머리의 스크랫 장면은 눈과 얼음을 일찍 보여 주기 위해 뒤에 덧붙인 것이고, 시험 상영에서 반응이 좋아 분량이 늘었다고 한다. 즉 내가 리듬이라고 부른 것은 설계보다 결과에 가깝다. 결과가 좋으면 칭찬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만든 사람이 의도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약하다.
맺음
셋을 합치면 이렇게 된다. 각본은 같은 상처에 두 답을 붙여 놓고 결말로 판정했고, 연출은 웃음과 침묵을 한 동굴에 붙였고, 다람쥐는 그 사이에서 숨을 바꾸었다. 앞의 둘은 이 영화가 아이들 영화의 관성 안에서 꽤 정확하게 한 선택이고, 마지막 하나는 운이 좋았던 선택이다. 운까지 포함해서 좋은 영화라고 적는다.
볼까 말까 망설이는 분께는 보라고 하겠다. 81분이고, 그중 동굴 안의 몇 분은 여러 번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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