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입에 대한 앙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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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쓰지 않는 설문지

필름속산책자· 2026. 10. 31.· 2,534자

묻는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생각해 보고 싶다. 이 영화는 끝에 설문지를 내놓는다. 그런데 그 설문지가 있다는 것을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알려 준다. 89분 뒤에 당신에게 질문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말해 두는 영화다. 그러니 나도 질문으로 가겠다. 일곱 개를 던지고 하나도 답하지 않을 것이다. 답을 쓰지 않는 쪽이 이 영화에 맞는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줄거리는 짧게만 적는다. 심령 명소로 알려진 묘지에 저주받은 나무가 있다는 괴담을 듣고 대학생 쇼타가 친구들을 모아 담력 시험을 간다. 다음 날 일행 중 한 명이 사라진다. 남은 사람들이 그날 밤을 말하고, 형사가 그 말을 녹음으로 듣는다. 우리가 보는 화면은 그 형사가 들으면서 머릿속에 그린 것이라고 영화는 설명한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릴게요」 하는 목소리로 영화가 열린다. 원작 소설이 있고, 영화는 거기에 몇 가지를 더하고 몇 가지를 바꿨다고 한다.

하나. 끝에 질문이 있다고 먼저 알려 주는 영화에서, 나는 보는 사람인가 답하는 사람인가

첫머리의 일이다. 증언이 시작되기 전에 영화는 이 이야기가 끝나면 설문이 있을 것이라고 고지한다. 어떤 문항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 뒤로 다섯 사람의 말이 이어지는데, 나는 그 말을 듣는 내내 뒤에 올 문항을 가늠하고 있었다. 무엇을 기억해 두어야 하는지, 어디를 놓치면 안 되는지. 공포 영화를 보면서 그런 식으로 몸이 굳은 적은 없었다. 유령이 오기 전에 시험지가 먼저 왔다.

둘.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 왜 없는 사람이 서 있는가

쿠사카베라는 형사가 녹음기 앞에 앉아 다섯 사람의 말을 듣는다. 묘지, 나무, 나무에 올라간 여자. 그 모든 화면이 듣는 사람의 머릿속이라고 영화는 밝혀 둔다. 그런데 형사가 묘지 근처 편의점의 감시카메라를 돌려 보면 그날 밤 거기 찍힌 사람은 셋이다. 네 번째 사람, 안이라는 이름의 여자는 다섯 사람의 말 속에만 있었다. 그러면 내가 본 안은 누가 그린 것인가. 형사인가, 말한 다섯 사람인가, 아니면 그 말을 따라 그린 나인가. 화면은 하나인데 그린 손이 셋이다.

입에 대한 앙케트 스틸컷

셋. 속이 빈 것이 어떻게 사람에게 달려드는가

타츠야는 대학에서 매미 허물을 발견한다. 허물은 속이 빠져나간 것이다. 그런데 그 허물이 매미가 되어 자기에게 달려드는 환영을 그는 본다. 나무 아래에도 허물이 잔뜩 붙어 있었다고 쇼타가 말했다. 잎이 없는 큰 나무와 줄기에 붙은 수많은 허물. 소리도 그렇다. 조용하다가 매미 소리가 쏟아지는 순간이 몇 번 있는데, 그때 화면에 매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몸만 남은 것과 소리만 남은 것. 이 영화가 무섭게 쓰는 것은 왜 늘 반쪽인가.

넷. 위로 가라고 말하는 여자가 왜 아래를 파는가

홋타와 카와세가 쇼타 일행보다 먼저 그 나무에 갔다. 둘은 밤에 나무 앞에서 목이 긴 여자를 본다. 여자는 땅을 파고 있다. 「지옥은 아래에 있으니까. 높이, 높이」 하고 말하면서다. 홋타가 말을 걸자 여자는 소리를 지르고 둘은 달아난다. 나는 이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떠올렸다.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먹힌다고 말하는 사람의 손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 안이 나무에 올라가며 한 말도 같은 말이었다. 「위로 가지 않으면 먹혀 버려」. 올라간 사람과 파는 사람은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한 사람이 둘로 갈린 것인가.

다섯. 없는 사람을 찾는 종이는 누가 만들었는가

끝 가까이에서 형사는 안을 찾는 전단지를 들고 있다. 안은 감시카메라에 찍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전단지에는 처음에 나무 사진이 있다. 형사가 기자에게 저주 같은 말을 내뱉고 나무에서 매미 소리가 쏟아진 뒤, 전단지의 사진은 나무에서 안의 모습으로 바뀐다. 사라진 사람을 찾는 종이가 먼저 있고, 찾을 사람이 나중에 생긴다. 다섯 사람 말고는 안을 본 사람이 없는데 종이는 어떻게 먼저 인쇄되었는가. 이 순서를 나는 아직 받아 들지 못하고 있다.

입에 대한 앙케트 포스터

여섯. 먹히는 쪽에서 먹는 쪽으로, 자리는 언제 바뀌었는가

안이 나무 위에서 되풀이한 말은 먹혀 버린다는 말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같은 소리가 먹을 수 있다는 뜻으로 다시 들린다. 한 마디가 뒤집힌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 오르는 글자 가운데 입이라는 글자만 전부 붉다.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나는 붉은 글자를 세고 있었다. 세다가 놓쳤다. 누가 먹히고 누가 먹는지 영화는 끝내 가르지 않는다. 가르지 않은 자리에 입이 하나 있고, 그 입은 벌어져 있다. 당신은 그 입이 말하는 입이라고 보는가, 먹는 입이라고 보는가.

일곱. 당신은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가

마지막 설문의 문항 가운데 하나다. 다른 문항도 묻는다. 안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 여자인가 저주받은 나무인가 매미인가. 다섯 사람의 녹음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기록을 위해서인가 당신에게 전하기 위해서인가. 지금 답하고 있는 장소는 안전한가. 그 녹음은 경찰 조사가 아니었다. 다섯 사람이 그 나무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이것은 가볍게 쓸 일이 아니라서 여기까지만 적는다. 나는 그 설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 글을 썼고,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다. 그러면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말한 것인가, 아니면 아직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인가. 마지막 질문은 당신에게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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