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드래곤볼 슈퍼: 비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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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걸음 앞이 지평선인 별에서

막판뒤집기· 2026. 11. 03.· 2,860자

2화의 계왕성을 보다가 멈췄다. 파괴신이 찾아오기 전, 오공이 혼자 수련하는 그 작은 별 말이다. 설정상 이 별은 걸어서 3분이면 한 바퀴를 돈다. 중력은 지구의 열 배다. 나는 이 두 숫자를 오래 알고 있었는데 둘을 같이 놓고 계산해 본 적은 없었다. 이번에 해 봤다. 틀릴 수 있다. 가정은 가정이라고 적어 두겠다.

먼저 작품 얘기를 짧게. 「드래곤볼 슈퍼: 비루스」는 2015년 TV판의 앞부분을 다시 그린 판으로, 일본에서 10월 11일부터 일요일마다 한 편씩 나오고 있고 전체 19편이 예고돼 있다. 네 편이 나왔다. 오랜 잠에서 깬 파괴신 비루스가 꿈에서 본 초사이어인 갓을 찾아 계왕성과 지구로 오고, 4화 끝에서 오공이 그 이름의 존재가 된다. 이 글은 이야기 평이 아니라 숫자 세 개에 관한 메모다.

계산 1 · 계왕성의 흙 한 숟갈

어른이 걷는 속도를 시속 4킬로미터로 잡자. 3분이면 200미터다. 둘레가 200미터인 공의 반지름은 32미터쯤 된다. 축구장 세로 길이의 3분의 1이 안 되는 별이다. 그 별 표면의 중력이 지구의 열 배라면 별 전체의 밀도를 거꾸로 셈할 수 있다. 표면 중력은 별의 질량에 비례하고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는데, 질량은 밀도 곱하기 부피이고 부피는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니, 정리하면 표면 중력은 밀도 곱하기 반지름에 비례한다. 지구는 반지름이 6,400킬로미터이고 중력이 1배다. 계왕성은 반지름이 그 20만분의 1인데 중력은 10배다. 그러니 밀도는 지구의 200만 배 언저리가 나온다.

지구의 평균 밀도가 1세제곱센티미터에 5.5그램이니, 계왕성은 1세제곱센티미터에 어림잡아 11톤이다. 각설탕 한 개 크기의 계왕성 흙이 시내버스 한 대 무게다. 밥숟갈 하나면 버스 열 대다. 백색왜성이라는 별이 대략 1세제곱센티미터에 1톤이므로, 계왕성은 백색왜성보다 열 배쯤 빽빽하고 중성자별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 별 위에 이글루 모양 집 한 채와 나무 한 그루와 빨간 자동차 한 대가 놓여 있다.

덤으로 두 개 더. 반지름 32미터에 중력 열 배인 별에서는 시속 200킬로미터로 공을 던지면 공이 떨어지지 않고 별을 한 바퀴 돌아 뒤통수로 온다. 시속 285킬로미터면 별을 떠난다. 투수가 던진 공은 못 떠나고, 고속열차는 떠난다. 그리고 어른이 서서 보면 지평선이 열 걸음 남짓 앞이다. 계왕이 집 뒤로 돌아가면 안 보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드래곤볼 슈퍼: 비루스 포스터

계산 2 · 39년 낮잠

비루스는 39년을 자고 일어났다. 설정상 그는 수억 년을 산 존재다. 수억이 몇 억인지는 모르니 2억으로 잡겠다. 39년을 2억 년으로 나누면 5백만분의 1이다. 여든 해를 사는 사람의 일생에서 5백만분의 1은 8분이다. 그러니까 그의 39년 잠은 우리의 점심 먹고 책상에 엎드린 8분이다. 5억 년을 살았다면 3분이다. 어느 쪽이든 낮잠이다. 1화에서 그가 깨자마자 행성 두 개를 부수고 지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깨우는 사람 없이 혼자 깬 낮잠 뒤의 기분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그 사이 지구에서는 마인 부우와의 싸움이 끝나고 몇 년이 흘렀고, 그 몇 년은 비루스에게 1분이 안 되는 시간이었다.

같은 셈으로 하나 더. 비루스의 별에서 계왕성까지는 26분이 걸린다고 돼 있다. 그에게 26분은 우리에게 1초가 안 되는 시간이다. 파괴신이 길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 그리고 계왕성에 도착해서도 오공의 변신을 하나씩 다 지켜본 뒤에야 손을 쓰는 이유를 여기서 찾으면 안 되는지 나는 잠깐 생각했다. 아마 아닐 것이다. 그는 그냥 느긋한 성격일 것이다.

계산 3 · 가위바위보

3화 끝에서 비루스가 지구를 부술지 말지를 가위바위보에 건다. 상대는 오룡이다. 4화 앞부분이 그 승부로 채워진다. 공정한 가위바위보라면 한 판에 비길 확률이 3분의 1이고, 끝까지 가면 오룡이 이길 확률은 2분의 1이다. 파괴신이 지구의 운명을 동전 던지기에 걸었다는 뜻이다. 이상한 일이다. 동전 던지기에 걸 생각이 있는 파괴신은 이미 부수고 싶지 않은 파괴신이다.

그런데 4화의 승부는 자꾸 비긴다. 다섯 판을 연달아 비긴다고 치면 그럴 확률은 243분의 1, 0.4퍼센트다. 이 판이 공정한 가위바위보일 가능성은 낮다. 극장판 설정에서는 비루스가 오룡의 작전을 다 엿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오룡이 이길 확률은 0이고, 비기는 것도 비루스 마음이다. 그렇다면 그 긴 승부는 운이 아니라 파괴신이 시간을 끄는 장면이 된다. 승부가 끝난 뒤 지구를 겨눈 공격을 쏘기 전에 그가 잠깐 머뭇거린다는 지적이 이번 판에 관해 나왔다. 가위바위보 계산과 머뭇거림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틀릴 수 있다.

계산이 이야기를 흔드는가

계산 1은 이야기를 더 그럴듯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버스 열 대 무게의 흙 한 숟갈 위에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는 없다. 그러나 흔들지도 않는다. 이 별의 터무니없는 숫자는 작품이 처음부터 알고 내놓은 것이다. 비루스가 예전에 게임에 지고 홧김에 이 별 대부분을 부쉈고 남은 조각이 지금 크기라는 설정도 있다. 그러니 2화에서 오공이 초사이어인 3이 되는 순간 그 파장이 저승까지 흔드는 새 장면은, 작은 별이 얼마나 작은지를 작품이 스스로 재는 장면이다. 계산 2와 3은 반대로 이야기를 더 그럴듯하게 한다. 낮잠에서 깬 신은 급하지 않고, 급하지 않은 신은 가위바위보를 하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신은 이미 결심이 반쯤 서 있다. 4화 끝의 변신은 그 반쯤 선 결심에 나머지 반을 보태는 장면이다.

우주에는 의미가 없다. 계왕성의 밀도에도, 39년이라는 숫자에도 뜻은 없다. 그런데 그 숫자들 위에 작은 집을 짓고, 낮잠을 재우고, 가위바위보를 시키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보면서 파괴신이 머뭇거린 0.4퍼센트를 세는 사람도 있다. 그게 나다. 다음 편에서 붉은 머리의 오공이 그 별에서 얼마나 멀리 날아가는지는 세지 않을 생각이다. 아마 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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