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드래곤볼 슈퍼: 비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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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오라가 가린 것, 새로 그린 것
1화에 공룡을 사냥하는 종족이 사는 별이 나온다. 그 별의 적이 화면에 잡히는 순간 몸 둘레에 붉은 오라가 돈다. 멋있으라고 두른 게 아니다. 구판에서 손이 넷이고 눈이 넷이던 캐릭터를 손 둘, 눈 둘로 고쳤고, 고친 자리가 덜 보이게 오라를 씌웠다. 구판과 비교한 글을 읽고 알았다. 알고 나니 그 장면만 보인다.
「드래곤볼 슈퍼: 비루스」는 2015년 TV판을 다시 만든 것이다. 만든 쪽에서는 「인핸스드판」이라고 부른다. 새 컷을 넣고, 전 컷을 다시 촬영하고, 음악과 효과음을 새로 입히고, 이야기를 원작자의 원안에 가깝게 다시 짰다는 공식 설명이 붙어 있다. 일본에서 10월 11일부터 일요일 밤에 한 편씩, 한국에서는 나흘 뒤 목요일 밤에 나온다. 전체 열아홉 편 중 네 편이 나왔다. 오랜 잠에서 깬 파괴신이 초사이어인 갓이라는 이름을 찾아 지구로 오고, 4화 끝에서 오공이 그 이름의 존재가 되는 데까지다.
나는 리메이크가 싫다. 정확히는 리메이크가 으레 저지르는 짓이 싫다. 색만 바꿔 놓고 다시 그렸다고 말하는 것. 농담을 몽땅 빼서 어른이 된 척하는 것. 심의 때문에 고친 자리를 안 고친 척하는 것. 회상으로 빈자리를 메우는 것. 「원작자의 뜻대로」를 광고 문구로 쓰는 것. 다섯이다. 리메이크라는 물건은 이 중 셋은 꼭 저지른다. 이 작품은 몇 개를 저질렀는지 세어 봤다.
셋째부터. 붉은 오라 얘기는 위에 했다. 저질렀다. 고친 것 자체는 이해한다. 2026년의 심의는 2015년의 심의와 다르다. 가리는 방식이 문제다. 오라는 이 시리즈에서 힘을 뜻하는 기호다. 그 기호를 모자이크로 썼다. 힘이 아닌 것을 힘처럼 보이게 만든 셈이고, 기호를 그렇게 쓰는 건 틀렸다.
첫째. 기존 TV판 프레임을 색만 바꾼 장면이 확인됐다는 지적이 있다. 저질렀다. 다만 전부는 아니다. 2화의 계왕성 전투, 그러니까 초사이어인과 초사이어인 2 상태의 싸움은 구판 것을 버리고 전부 다시 그렸다. 구판에서는 오공이 비루스에게 덤비는 걸 멀리서 잡아서 혼자 날뛰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번에는 가까이서 잡는다. 그리고 오공이 촐싹대며 뛰어들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서 변신하는 장면이 새로 들어갔다. 이 걸음이 이번 판에서 제일 좋다. 걸음 하나로 열 컷의 색 보정을 셈에서 뺐다. 용서는 아니다. 셈에서 뺀 것이다.
둘째. 농담은 많이 뺐다. 1화에서 구판 두 편 분량을 한 편으로 눌렀고, 그 과정에서 오반과 비델의 데이트, 오천과 트랭크스가 선물을 찾아다니는 얘기, 베지터 가족의 리조트 여행이 날아갔다. 3화의 베지터 개그도 대부분 없다. 2화에서 비루스가 보이던 과장된 반응도 지워졌다. 그 자리에 어두운 명암이 들어왔다. 파티 장면을 너무 잘라서 분위기가 급변한다는 불만이 있고, 나도 3화에서 한 번 어리둥절했다. 반은 저질렀다. 그런데도 어른이 된 척은 아니다. 비루스가 과장된 반응을 안 하니까 관찰하는 자의 근엄함이 생겼다. 농담을 뺀 자리에 긴장이 들어왔으면 그건 어른인 척이 아니라 어른이다.
넷째. 4화에 베지터 가족의 놀이공원 에피소드가 회상으로 들어갔다. 구판에서 본편이던 것을 한 토막으로 접었다. 저질렀다. 다만 이건 3화에서 뺀 농담의 영수증 같은 것이다. 빈자리를 메웠다기보다 뺀 것을 어디에 뒀는지 보여 준 것에 가깝다. 반만 저질렀다고 치겠다.
다섯째. 「원작자의 원안에 가깝게」는 공식 문구에 있다. 저질렀다. 다만 1화에 만화판에만 있던 이미지 트레이닝이 들어왔다. 오공이 프리저와 셀과 부우를 머릿속에 불러내 싸우는 장면이다. 광고 문구를 장면으로 갚았다. 이것도 셈에서 뺀다.
그리고 하나 더. 1화 베지터의 수련 장면에서 중력 수치가 「Loading…」으로 떠 있다. 구판의 숫자를 지우고 새 숫자를 안 넣었다. 설정 오류를 수습하겠다는 사람들이 숫자 하나를 비워 둔 것이다. 나는 이게 이번 판에서 제일 솔직한 컷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써 놓은 리메이크를 나는 처음 봤다.
셈을 하면 이렇다. 다섯 중 셋을 저질렀고 둘은 반만 저질렀다. 저지른 셋 중 둘은 장면으로 갚았다. 리메이크 평균보다 낫다. 평균보다 낫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는 건 안다.
물광이 줄고 배경 색이 바뀌었다는 건 맞다. 3화에서 베지터가 변신할 때 보라색 이펙트가 붙은 것도 봤다. 나중 이야기에서 나올 것을 미리 당겨 쓴 색이라고 한다. 맞는 선택인지는 열아홉 편이 끝나야 안다. 지금은 예쁘다는 것만 안다.
붉은 오라로 돌아간다. 그 오라를 보고 나는 이 작품을 안 믿기로 했다가, 2화의 걸음을 보고 반쯤 되돌렸다. 리메이크를 보는 자세가 그 정도면 맞을 것이다. 반만 믿고, 나머지 반은 다음 주 일요일에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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