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토이 스토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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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주문기 도입 이후 수첩의 거취에 관한 보고
우리 동네 중국집에 지난봄 테이블 주문기가 들어왔다. 화면을 눌러 짜장면을 시키면 주방에 바로 들어간다는 물건이다.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주문기가 띵 하고 울 때마다 여전히 앞치마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볼펜으로 적으신다. 나는 짜장면이 나오는 동안 몇 가지 의문에 빠졌다. 주문기와 수첩이 서로 다른 말을 하면 누구 말을 듣는가. 주문기가 들어온 뒤에도 수첩이 필요하다면 주문기는 왜 들였는가. 반대로 주문기가 다 하는데도 수첩을 적으신다면 그것은 업무인가 습관인가, 아니면 수첩에 대한 예의인가.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주문기 회사에서는 수첩의 존재를 알고 있는가. 안다면 그것을 실패로 집계하는가, 아니면 사장님의 고객 응대 열의로 집계하는가. 사장님께 여쭤볼까 했으나 짜장면이 먼저 나왔고, 나 같은 민간인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튼.
〈토이 스토리 5〉 되겠다. 1995년에 첫 편이 나온 뒤로 30년을 넘긴 시리즈의 다섯 번째 편이자 4편 이후 7년 만의 속편으로, 러닝타임은 한 시간 사십 분 남짓인데, 줄거리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할 정도로 간단하다. 여덟 살 보니가 학교에서 친구를 못 사귀어 외로워하자 부모님께서 개구리 모양의 어린이용 태블릿 릴리패드를 사 주시고, 그 안의 채팅 기능이 15초 만에 친구를 만들어 주자 보니가 거기 빠져들며, 방에 남은 장난감들, 그러니까 카우걸 제시와 말 불스아이와 우주 특공대 버즈와 공룡 렉스와 그 밖의 여러분께서 또 멸종당할 수는 없다며 자신들의 시대가 끝났다는 공포에 사로잡히시고, 제시께서 무전기로 멀리 떠나 있던 우디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시어 우디가 판초를 걸치고 돌아오신다는 것, 거기까지가 발단 되겠다. 이번 편의 주인은 우디가 아니라 제시이며, 우디는 돌아오셔서도 영화 내내 주로 험한 꼴을 당하시는 역할을 맡으신다.

픽사 속편 좀 보셨다는 분들은 다음 전개를 맞히실 것이다. 하필 최신 기기, 하필 주인이 거기에 빠지고, 하필 옛 장난감들이 집 밖으로 떨어져 나가고, 하필 트럭, 추격, 악당의 패배, 그리고 주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옛 장난감을 끌어안고 기기는 서랍에 들어가는 것. 업계가 30년간 갈고닦은 표준 문안의 정수라 하겠다. 이 영화는 트럭과 추격까지는 성실히 차려 놓고, 마지막 접시를 물린다. 태블릿은 서랍에 들어가지 않는다. 악당으로 나온 릴리패드는 패배하는 대신 제 잘못을 알아차리고 제 발로 짐을 싸며, 끝에 가서는 보니의 방에 장난감들과 나란히 남는다. 옛것이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둘이 같이 일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 다 차려진 밥상을 마지막 접시만 남기고 물리는 솜씨가 하도 공손해서 나는 한참 감탄했다.
내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것은 버즈 군단이다. 영화는 바다에 떨어진 화물 컨테이너가 무인도에 밀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 안에서 신형 버즈 라이트이어 인형 여러 분이 시연 모드로 깨어나시어 「스타 커맨드」로 가야 한다며 밀림을 행군하신다. 1편에서 버즈 한 분이 당신을 진짜 우주 특공대원으로 믿으시던 그 수순을 이번엔 여러 분이 한꺼번에 밟으시는 참으로 버즈스러운 행군인데, 업계 표준 문안을 복사해서 붙인 솜씨가 차라리 장인의 경지라 하겠다. 다만 민원인으로서 여쭙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컨테이너가 바다에 떨어진 경위에 대해 영화는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둘째, 그분들이 뒤에 가서 드론으로 변신하시는데, 그런 기능이 있다는 사전 고지가 전혀 없었다. 설계 오류라기보다 사양 미고지에 해당하겠으나, 그 덕에 기부 트럭을 쫓던 장난감들이 하늘로 들어 올려지니 민원을 넣기도 애매하다. 셋째, 그분들이 우디를 제시에게 해로운 존재로 오인하시어 붙잡아 두시는 대목은 그냥 구수하다.

내가 두 번째로 오래 들여다본 것은 제시가 흘러든 농가의 퇴물들이다. 배변 훈련용 말하는 기계 스마티 팬츠, 길 찾는 기계 아틀라스, 어린이용 카메라 스내피. 한때 장난감 기술 혁신의 최전선에 서셨다가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분들이라, 릴리패드의 십 년 뒤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최신 기기도 언젠가는 구석에 들어간다는 것을 이 영화는 악당 앞에서 직접 말하는 대신 구석에 세 분을 세워 두고 보여 준다. 공문으로 치면 「기술 기기의 수명에 관한 안내」를 본문 없이 첨부 사진으로만 보낸 셈이라, 나는 그 간접 화법이 마음에 들었다. 더 구수한 것은, 퇴물로 소개된 그 세 분이 뒤에 가서는 제시 일행과 합류하시어 두 아이를 잇는 일에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신다는 점이다. 구석에 세워 둔 분들이 실제로는 가장 많이 움직이신 것이다.

곁가지로 버즈께서 영화 내내 제시에게 청혼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시고 한 무릎을 꿇었다 폈다 하시는데, 우주 특공대원이 반지 하나 앞에서 쩔쩔매시는 모습은 딱히 필요한 장면은 아니지만, 이 또한 구수하다.
관청 말투로 한 가지 더 적어 두자면, 이 영화는 본문이 끝난 뒤에 첨부 문서가 두 통 붙어 있다. 하나는 버즈 군단이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 내려앉으시는 것이고, 거기 악당 저그께서 나타나시어 당신이 버즈의 아버지라고 선언하신다. 다른 하나는 릴리패드가 랩을 하는 것이다. 둘 다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으나 자리를 뜨지 마시라는 안내문이 따로 없으니,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일어나신 분들은 첨부를 못 보신 것이 되겠다. 민원 사항으로 접수해 둔다.
마지막은 보니와 블레이즈가 마주 앉아 노는 장면이다. 두 아이가 제시와 버즈를 결혼시키는 놀이를 하고, 공룡 트릭시가 끼어들어 버즈는 제 남편이라고 우기고, 태블릿은 그 옆에 켜져 있다. 우디는 보핍과 함께 다시 길을 떠난다. 그게 다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그 중국집에 갔더니 주문기 옆의 수첩이 좀 달리 보였다. 주문기가 들어왔다고 수첩의 일이 끝난 것이 아니었고, 수첩이 남았다고 주문기가 진 것도 아니었다. 둘이 같은 짜장면을 각자의 방식으로 적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문기도 언젠가는 농가 구석의 배변 훈련기처럼 될 것이고, 그때도 수첩은 아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뭐, 새것이 들어왔다고 옛것의 일이 끝나는 법은 없다. 일은 원래 둘이서 하는 것이었다.
다음에는 주문기로 시키고 나서 사장님께 수첩에도 한 줄 적어 주십사 부탁드릴 생각이다. 사장님은 이미 적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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