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토이 스토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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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화면을 볼 때 카메라는 누구의 자리에 서는가

필름속산책자· 2026. 10. 13.· 3,824자

질문에서 시작하겠다. 아이가 화면을 보고 있을 때, 그 아이를 보는 것은 누구인가. 다시 묻겠다. 아이가 화면을 보고 있을 때 카메라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아이의 뒤인가, 화면의 자리인가, 아니면 그 둘 사이에 끼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장난감의 자리인가. 나는 〈토이 스토리 5〉를 보고 나서 이 질문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한참 몰랐다, 라는 사실을 먼저 적어 두어야겠다. 이것은 첫 편이 나온 지 삼십 년을 넘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영화이고, 네 편의 각본에 모두 이름을 올렸던 앤드류 스탠튼이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편이며, 여덟 살 아이의 방에 개구리 모양의 태블릿이 들어오는 이야기다. 당신은 여기서 뻔한 대답을 기다릴 것이다. 화면은 나쁘고 장난감은 좋다, 라는 대답. 그러니까 기계를 서랍에 넣고 아이가 인형을 끌어안는 결말.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대답을 하지 않기 위해서 카메라의 자리를 몇 번이나 옮긴다. 나는 그 자리바꿈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섬에서부터 말하겠다.

첫 번째 질문.

이 영화는 왜 아이의 방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이 시리즈는 언제나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장면, 그러니까 아이의 눈에 장난감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으로 문을 열어 왔다. 이번에는 아니다. 바다에 떨어진 화물 컨테이너가 무인도에 밀려오고, 그 안에서 신형 버즈 라이트이어 인형들이 깨어나, 하나가 나머지를 깨우고, 하늘의 별 하나를 스타 커맨드라고 믿고 그쪽으로 가기로 한다. 아이는 없다. 이 인형들을 보는 사람이 화면 안에 아무도 없다. 텅 빈 섬. 나는 이 첫 장면이 영화 전체에 던져 놓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보는 아이가 없는 장난감은 무엇인가. 장난감은 아이의 시선 안에서만 장난감이고 그 시선이 사라지면 플라스틱으로 돌아가는가, 아니면 그 시선 없이도 제 길을 가는 무엇인가. 영화는 대답하지 않고 그들을 걷게 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진짜 우주 특공대원이라고 믿는 채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별을 향해 간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시선이 비어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들을 오래 따라가지 않고 이따금 돌아와 볼 뿐이지만, 그 비어 있음은 곧 보니의 방으로 옮겨 간다.

토이 스토리 5 스틸컷

보니는 여덟 살이고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부모는 릴리패드라는 이름의 개구리 모양 태블릿을 선물한다. 상자를 여는 순간부터 아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몇 시간이고, 또 몇 시간이고 본다. 여기서 카메라의 자리를 묻겠다. 이 영화에서 내가 확인한 쇼트 하나는 아버지의 차 안에서 바깥 인도로 단숨에 당겨 들어가는 줌이다. 인도에는 보니가 제 태블릿을 들고 서 있다. 차 안, 그러니까 장난감이 남겨진 자리에서 바깥의 아이를 보는 것이다. 카메라는 아이의 눈을 빌리지 않는다. 아이의 뒤에도 서지 않는다. 아이를 잃어버리는 쪽의 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아이를 급하게 당겨 본다. 그 급함이 이 영화의 슬픔이다. 보는 쪽은 보이는 쪽을 당길 수 있을 뿐 다가갈 수는 없다, 라는 것. 당신은 이 줌이 코미디의 리듬이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그러나 코미디의 리듬으로 찍힌 이별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당신도 알 것이다.

토이 스토리 5 스틸컷

두 번째 질문.

카메라가 자리를 바꾸는 장면은 어디인가. 나는 처음에 그것이 무인도에서 보니의 방으로 넘어올 때라고 생각했다. 아니, 다시 말하겠다. 자리바꿈은 그보다 뒤에, 카메라가 아예 물러나 버리는 한 쇼트에 있다. 영화는 어느 순간 보니의 동네를 멀리서 훑는 넓은 쇼트를 보여 준다. 카메라는 집들 위를 지나가다가 릴리패드가 없는 마지막 집에 내려앉는다. 자크 타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고 한 평자가 썼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이 쇼트에서 카메라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장난감의 눈도 아니고 아이의 눈도 아니다. 동네 전체를 하나의 화면으로 내려다보는 자리, 그러니까 태블릿이 아이들을 보는 자리와 같은 높이에 카메라가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보면 아직 화면을 갖지 않은 집은 마지막 한 채뿐이다. 영화는 그 집을 마지막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이미 결말을 말해 버린 셈이다. 그 집도 곧 화면을 가질 것이다. 막을 수 없다. 이 영화는 막을 수 없는 것을 막는 척하지 않는다. 그 정직함 때문에 나는 이 쇼트를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쇼트로 꼽는다.

그런 다음 영화는 더 조용한 장면을 하나 끼워 넣는다. 장난감 여럿이 어느 집을 통째로 가로질러 가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부모까지 포함해서 그 집의 모든 사람이 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여기서 웃음을 기다릴 것이다. 영화도 그것을 웃음으로 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에서 첫 장면의 무인도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섬. 장난감은 이제 사람으로 가득한 집에서도 무인도에 있다. 화면 밖에 있는 것은 장난감이고, 화면 밖은 이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다. 공개된 스틸 가운데 우디와 버즈가 블라인드 틈으로 침대 위의 보니를 들여다보는 한 장을 나는 오래 보았다. 아이는 화면을 보고, 장난감은 아이를 보고, 카메라는 장난감의 등 뒤에 있다. 시선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을 이렇게 찍어도 되는가, 라고 나는 잠깐 물었다. 아이를 들여다보는 장난감의 등 뒤에 서는 것은 아이를 훔쳐보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들여다보는 쪽이 들여다보이는 쪽보다 작고, 약하고, 잊히는 쪽이기 때문이다.

토이 스토리 5 스틸컷

감독의 전작을 말해야겠다. 앤드류 스탠튼은 〈월-E〉에서 이미 화면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찍은 적이 있다. 우주선 안에서 의자에 실려 다니며 눈앞의 화면만 보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 사이를 지나다니던 작은 로봇. 그때 카메라는 로봇의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은 로봇을 보지 않았다. 〈토이 스토리 5〉는 그 자리를 다시 가져온다. 다만 이번에는 화면이 악당이 아니다. 릴리패드는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려 했고, 그 방법이 틀렸을 뿐이며, 틀렸다는 것을 알자 제 발로 기부 상자에 들어간다. 하여튼 스탠튼은 두 편 모두에서 화면을 부수지 않는다. 화면을 보는 사람 곁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서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그는 화면을 비난하는 대신 화면 옆자리를 찍는 사람이고, 나는 그 자리가 두 영화를 잇는 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쓰면 당신이 볼 것을 내가 미리 보아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써야겠다. 이 영화에서 아이들이 노는 장면은 이 시리즈가 늘 해 오던 사실적인 화면이 아니라 파스텔 색의 다른 그림체로 그려진다. 아이의 상상 속을 그리는 방식이다. 마지막에 보니와 블레이즈, 두 아이가 마주 앉아 버즈와 제시의 결혼식 놀이를 하고, 우디는 그것을 지켜보다가 보핍과 함께 떠난다. 그러니까 영화는 두 아이의 상상을 파스텔로 보여 주고, 그 상상을 보는 우디를 보여 주고, 그런 다음 우디를 보내 버린다. 첫 장면에서 비어 있던 자리, 장난감을 보는 아이의 눈이 여기서 돌아온다. 그런데 그 눈은 한 아이의 것이 아니라 두 아이의 것이고, 태블릿은 그 옆에 함께 있다. 카메라는 첫 장면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섬에 있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를 보는 두 아이 곁에 있다. 그리고 그 곁에서 가장 오래 본 자는 떠난다. 보고, 또 보고, 그런 다음 떠난다. 이 자리바꿈이 영화의 대답이다. 보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보는 자리를 다른 이에게 내주는 것, 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자리바꿈을 지지한다.

마지막 질문은 당신에게 넘기겠다. 당신이 누군가의 화면 밖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그 화면을 끄려 할 것인가, 아니면 화면 옆에 서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게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영화는 후자를 택했다. 그것이 예의인지 체념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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