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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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0년대 향수가 싫다

밤선율· 2026. 10. 12.· 2,951자

나는 80년대 향수가 싫다. 형광색 운동복이 싫다.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를 보물처럼 찍는 카메라는 더 싫다.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손전등을 들고 숲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참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복고는 그때 거기 없던 사람들이 만든다. 그때 거기 있던 사람들은 대체로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 시절엔 전화가 벽에 붙어 있었고, 밤에 길을 잃으면 그냥 잃은 거였다.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은 1982년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1982년은 향수가 아니라 조건이다. 휴대전화가 없다. 인터넷이 없다. 동네가 통째로 공룡 시대로 떨어졌는데 바깥에 알릴 방법이 없다. 전기와 수도는 첫날 아침에 끊긴다. 포장도로는 동네 끝에서 뚝 끊기고, 그 너머는 절벽과 밀림이다. 깎은 잔디밭과 양철 쓰레기통과 화산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이 영화는 80년대를 예쁘게 찍지 않는다. 80년대를 가둔다. 드디어 누군가 그 시절의 본질을 찍었다. 그 시절은 고립이었다.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 스틸컷

영화는 길거리 잔치로 시작한다. 이웃이 다 모이는 자리에서 해고를 숨기는 남편과 떠날 생각을 하는 아내가 나란히 웃는다. 나는 동네 잔치가 싫다. 그 싫음이 이 영화에서는 쓸모가 있다. 잔치에 왔던 사람들이 다음 날부터 하나씩 죽는다. 첫날 밤에 섬광이 터지고, 아침에 작은 공룡들이 골목으로 들어온다. 두 발로 달리는 작은 놈들이다. 이웃 할머니는 마당에서 처음 보는 풀을 자랑한다. 2억 년 전에 멸종한 풀이다. 개 때문에 투덜대던 옆집 남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익룡 떼에게 죽는다. 길에는 거북 떼가 깔린다. 목이 긴 공룡이 집을 비비고 지나가고, 마당에서 짝짓기를 한다. 이 영화의 공룡은 인물이 모르는 사이에 화면 뒤쪽에서 먼저 움직인다. 앞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뒤에서 걷는다. 나는 그 걸음이 멋있었다.

솔직히 말하자. 가족 이야기는 얇다. 아빠 그렉은 몇 주 전 해고된 걸 숨기고 몰래 피자를 배달한다. 엄마 드니스는 지하실에서 타자기로 소설을 쓴다. 가족에게서 도망치는 이야기다. 딸은 칼 세이건을 읽고, 아들은 친구 팔을 나뭇가지로 부러뜨린다. 좋은 재료다. 그런데 영화는 이 재료를 공룡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깔고, 공룡이 나온 뒤에는 거의 꺼내지 않는다. 싸우던 부부가 같이 도망치면 화해가 된다는 착각. 도망이 화해인가. 공룡도 섞여 있다. 쥐라기의 알로사우루스와 백악기의 스피노사우루스가 같은 골목에 산다. 집에 들어오는 거대한 뱀 티타노보아는 공룡도 아니다. 나는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 싫은데, 이번에는 내가 따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 이유는 하나다. 이 영화는 어른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남자는 공룡 앞에서도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남자다. 반바지 차림으로 울타리를 넘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겁에 질린다. 그리고 죽는다. 알로사우루스가 다리를 물어뜯고 그를 먹는다. 남은 셋은 계속 뛰어야 한다. 나는 이 무정함이 좋았다. 구걸이 없다. 사람들도 그대로다. 아들에게 팔이 부러진 친구의 형은 공룡 시대에서도 아들을 쫓아다닌다. 세상이 끝났는데 동네 싸움은 안 끝난다. 재난 영화의 사람들은 갑자기 착해지는데, 이 영화의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 자신이다.

나는 공룡 영화의 관습을 견디지 못한다. 흰 가운을 입은 과학자의 설명, 유리벽 너머의 연구소, 호박 속 모기, 전기 울타리, 헬리콥터로 날아오는 구조대. 이 영화에는 그게 없다. 설명은 천체물리학자가 되고 싶은 대학 갈 나이의 딸이 한다. 시공간에 금이 가서 동네가 통째로 옮겨졌다는 것. 그게 끝이다. 구조대는 오지 않는다. 무기는 야구방망이, 산탄총, 장난감 활, 벽난로 부지깽이다. 집은 판자로 막는다. 1982년의 교외에는 그것밖에 없다.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 포스터

품위란 가진 것으로 버티는 일이다. 더 좋은 무기를 찾으러 가지 않고, 손에 든 방망이로 문을 지키는 것. (물론 산탄총이 있으면 산탄총이 낫다.) 이 영화의 부부는 끝까지 아마추어다. 그래서 믿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맞는 옷은 그렉의 반바지다. 회색 후드 집업에 반바지, 운동화. 공룡 시대에 반바지. 이 남자는 아무 준비도 안 된 사람이고, 옷이 먼저 그걸 말한다. 울타리 위에 쭈그려 앉아 두리번거리는 그 맨다리가 이 영화의 정직함이다. 만약 이 남자에게 가죽 재킷과 부츠를 입혔다면 나는 이 영화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더. 집에 있는 공룡 도감에는 꼬리를 땅에 끄는 티라노사우루스가 그려져 있다. 1982년의 지식이다. 창밖의 공룡에게는 깃털이 있다. 책이 틀렸다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영화가 80년대에 대해 한 가장 정확한 말이 그 도감이다.

개 이야기를 하자. 개 이름은 스타벅이다. 목줄은 밧줄이다. 가죽 목줄도 아니고 나일론도 아니고 그냥 밧줄. 1982년의 교외에 이보다 맞는 목줄은 없다. 이 개는 울타리를 넘어 사고를 치고, 물속에서 싸우고, 끝까지 살아남는다. 음악은 옛날 모험 영화처럼 부푼다. 나는 그 부풂이 좋았다. 깃털 달린 공룡도 좋았다. 깃털은 멋있다. 세상의 모든 공룡 도감은 다시 그려야 한다. 다만 가족 넷이 차 안에서 서로를 보는 장면은 공룡보다 짧다. 그 짧음이 이 영화의 값이다. 나는 그 값을 알고 샀다.

결말을 말하자. 남은 셋은 이웃집에 열린 웜홀로 뛰어들어 수영장에 떨어진다. 돌아온 곳은 모든 일이 일어나기 20분 전이다. 엄마는 공중전화로 이웃들에게 떠나라고 알린다. 20분 안에. 스마트폰이 없는 1982년에. 들은 사람만 산다. 2년 뒤 엄마는 그 일을 책으로 쓴다. 지하실에서 가족을 떠나는 소설을 쓰던 사람이 가족과 이웃이 겪은 일을 쓴다. 책 제목은 영화 제목과 같다. 나는 이 결말이 찝찝했다. 돌아온 세계의 아빠는 같이 도망친 그 아빠가 아니다. 영화는 그걸 알면서 바비큐 파티로 덮는다. 그 파티에는 이웃 소녀가 둘 서 있다. 같은 얼굴이 둘이다. 영화는 그 둘을 보여 주고 끝낸다. 찝찝하다. 좋다. 둘은 모순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80년대 향수가 싫다. 이 영화는 향수가 아니다. 벽에 붙은 전화기다. 끊기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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