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재벌X형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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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내 기장님 얼굴을 못 봤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드라마를 좀 잘못 봤다. 재벌 3세 형사가 재력으로 판을 뒤집는 수사물이고, 다들 그 뒤집히는 판을 보는데, 나는 자꾸 판 밑에서 판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 쪽을 봤다. 그중에서도 한 사람에게 아주 심하게 꽂혔다. 기장님이다. 6회에서 진이수가 외친다. 기장님, 하노이로 출발! 범인 잡아야 돼. 나는 그 한 줄을 듣고 그날 밤 내내 기장님 생각만 했다.
생각해 보라. 지금은 야심한 밤이고, 형사들은 활주로 한복판을 질주하고 있고, 전용기는 시동이 걸려 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는 뜻이다. 내 안의 무언가가 '기장님은 자다 깼다, 무조건 자다 깼다, 심지어 내일이 쉬는 날이었다'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조별 과제 발표 전날 새벽 두 시에 전화를 받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도 아마 자다 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화를 받고 나온 사람은 끝까지 화면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부터 드라마가 묻지 않는 것들을 혼자 진지하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비행 계획서는 언제 냈을까. 하노이 공항 착륙 슬롯은 어떻게 났을까. 입국 심사는. 드라마는 그런 걸 단 일 초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안 보여 주는 게 맞다. 그걸 보여 주는 순간 이 드라마는 다른 장르가 되고, 나는 그 다른 장르도 꽤 좋아할 것 같아서 좀 무섭다.
전용기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또 다르다. 주혜라 팀장이 소파에 아주 편안하게 기대앉아 웃는다. 처음 타 보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그러면서 진이수에게 던진다. 야, 돈 많아서 좋겠다? 진이수는 나쁠 건 없다고 받는다. 나는 이 짧은 주고받기가 이 드라마의 성격을 거의 다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부러워하지도 않고 비웃지도 않고, 그냥 쓸 수 있는 걸 쓰자는 쪽. 적응이란 건 원래 이렇게 빠르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따라다니는 네 글자가 하나 있다. 돈발 수사. 기사마다 붙어 있고 나도 쓰면서 세 번쯤 썼다. 통쾌계의 프리사이즈 같은 말이다. 아무 데나 걸치면 대충 맞고, 대충 맞으니까 아무도 더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 네 글자를 믿고 보다가 나는 9회에서 좀 머쓱해졌다.
예술고등학교 무용실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학생들이 문을 열고, 복도 바닥에 사람이 누워 있고, 형사들이 비닐 덧신을 신고 쪼그려 앉는다. 벽에는 예술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여기서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작년에 죽은 선배의 저주라는 교내 괴담이 돌고 있고, 괴담은 돈으로 안 꺼진다. 무대 위에서 진이수는 날아든 장검을 맨손으로 움켜쥐고 피를 흘린다. 전용기 가진 사람이 칼날을 손으로 잡는다.

(나는 그 소식이 기장님한테도 갔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에 그런 장면은 없다. 없는데 나는 봤다. 대기실 같은 데서 커피를 들고 뉴스를 보다가, 아이고 저 양반 또, 하는 얼굴.) 이건 내가 지어낸 것이니까 그냥 지어낸 걸로 두겠다. 다만 저 손은 지어낸 게 아니다. 재력이 먼저 닿는 곳과 사람 손이 먼저 닿는 곳이 이 드라마에서는 끝까지 다르다.
최종회에서 두 사람은 방탄조끼를 입고 범인 앞에 선다. 초소형 카메라로 자백이 생중계되고, 경찰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주혜라가 직접 유성원에게 수갑을 채운다. 돈이 아니라 손이다. 나는 여기서 좀 울었는데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울 장면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냥 끝까지 직접 채우는구나,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기장님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열네 회를 다 보고 나니 이 드라마에서 돈이 한 일은 결국 하나였다. 사람을 제시간에 그 자리에 데려다 놓는 것. 멕시코로, 하노이로, 전시회장으로.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전부 손으로 하는 일이고, 손으로 하는 일에는 돈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데려다 놓는 사람과 채우는 사람. 기장님은 앞쪽이고, 그래서 얼굴이 끝까지 안 나온 거라고 나는 혼자 정리했다. 세상에는 제 자리까지만 정확하게 해 주고 사라지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많다.
그리고 나는 인천에서 하노이까지 몇 시간인지 검색해 봤다. 다섯 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기장님, 고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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