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재벌X형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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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내 기장님 얼굴을 못 봤다

삐딱선· 2026. 10. 11.· 1,987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드라마를 좀 잘못 봤다. 재벌 3세 형사가 재력으로 판을 뒤집는 수사물이고, 다들 그 뒤집히는 판을 보는데, 나는 자꾸 판 밑에서 판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 쪽을 봤다. 그중에서도 한 사람에게 아주 심하게 꽂혔다. 기장님이다. 6회에서 진이수가 외친다. 기장님, 하노이로 출발! 범인 잡아야 돼. 나는 그 한 줄을 듣고 그날 밤 내내 기장님 생각만 했다.

생각해 보라. 지금은 야심한 밤이고, 형사들은 활주로 한복판을 질주하고 있고, 전용기는 시동이 걸려 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는 뜻이다. 내 안의 무언가가 '기장님은 자다 깼다, 무조건 자다 깼다, 심지어 내일이 쉬는 날이었다'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조별 과제 발표 전날 새벽 두 시에 전화를 받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도 아마 자다 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화를 받고 나온 사람은 끝까지 화면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재벌X형사 2 스틸컷

나는 여기서부터 드라마가 묻지 않는 것들을 혼자 진지하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비행 계획서는 언제 냈을까. 하노이 공항 착륙 슬롯은 어떻게 났을까. 입국 심사는. 드라마는 그런 걸 단 일 초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안 보여 주는 게 맞다. 그걸 보여 주는 순간 이 드라마는 다른 장르가 되고, 나는 그 다른 장르도 꽤 좋아할 것 같아서 좀 무섭다.

전용기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또 다르다. 주혜라 팀장이 소파에 아주 편안하게 기대앉아 웃는다. 처음 타 보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그러면서 진이수에게 던진다. 야, 돈 많아서 좋겠다? 진이수는 나쁠 건 없다고 받는다. 나는 이 짧은 주고받기가 이 드라마의 성격을 거의 다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부러워하지도 않고 비웃지도 않고, 그냥 쓸 수 있는 걸 쓰자는 쪽. 적응이란 건 원래 이렇게 빠르다.

재벌X형사 2 스틸컷

그런데 이 드라마를 따라다니는 네 글자가 하나 있다. 돈발 수사. 기사마다 붙어 있고 나도 쓰면서 세 번쯤 썼다. 통쾌계의 프리사이즈 같은 말이다. 아무 데나 걸치면 대충 맞고, 대충 맞으니까 아무도 더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 네 글자를 믿고 보다가 나는 9회에서 좀 머쓱해졌다.

예술고등학교 무용실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학생들이 문을 열고, 복도 바닥에 사람이 누워 있고, 형사들이 비닐 덧신을 신고 쪼그려 앉는다. 벽에는 예술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여기서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작년에 죽은 선배의 저주라는 교내 괴담이 돌고 있고, 괴담은 돈으로 안 꺼진다. 무대 위에서 진이수는 날아든 장검을 맨손으로 움켜쥐고 피를 흘린다. 전용기 가진 사람이 칼날을 손으로 잡는다.

재벌X형사 2 스틸컷

(나는 그 소식이 기장님한테도 갔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에 그런 장면은 없다. 없는데 나는 봤다. 대기실 같은 데서 커피를 들고 뉴스를 보다가, 아이고 저 양반 또, 하는 얼굴.) 이건 내가 지어낸 것이니까 그냥 지어낸 걸로 두겠다. 다만 저 손은 지어낸 게 아니다. 재력이 먼저 닿는 곳과 사람 손이 먼저 닿는 곳이 이 드라마에서는 끝까지 다르다.

최종회에서 두 사람은 방탄조끼를 입고 범인 앞에 선다. 초소형 카메라로 자백이 생중계되고, 경찰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주혜라가 직접 유성원에게 수갑을 채운다. 돈이 아니라 손이다. 나는 여기서 좀 울었는데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울 장면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냥 끝까지 직접 채우는구나, 싶었을 뿐이다.

재벌X형사 2 스틸컷

그래서 기장님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열네 회를 다 보고 나니 이 드라마에서 돈이 한 일은 결국 하나였다. 사람을 제시간에 그 자리에 데려다 놓는 것. 멕시코로, 하노이로, 전시회장으로.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전부 손으로 하는 일이고, 손으로 하는 일에는 돈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데려다 놓는 사람과 채우는 사람. 기장님은 앞쪽이고, 그래서 얼굴이 끝까지 안 나온 거라고 나는 혼자 정리했다. 세상에는 제 자리까지만 정확하게 해 주고 사라지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많다.

그리고 나는 인천에서 하노이까지 몇 시간인지 검색해 봤다. 다섯 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기장님, 고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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