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재벌X형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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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없다
어떤 악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를 찾는 쪽이 먼저 지친다.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은 대개 그 사람이 당한 일이 아니라 그 일을 설명하려고 보낸 시간이다. 나는 이 말을 오래 믿어 왔고,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 번 더 믿게 됐다.
재벌 3세 형사와 새로 온 강력1팀장의 공조 수사극이다. 열네 회 동안 돈으로 판을 뒤집는 쾌감을 판다. 전용기를 띄우고 사람을 사고 장비를 사고 시간을 산다. 이런 드라마는 보통 마지막에 가서 한 가지를 더 판다. 범인의 사정이다. 이 드라마는 그것을 팔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범인에게도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학대받은 어린 시절이 있고,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은 시기가 있고, 뒤틀린 애정이 있다고 믿는다. 이 드라마는 그 재료를 전부 쥐고 있었다. 유성원은 어릴 때부터 죽음에 집착했고 오래 입원해 있었다. 어머니는 그를 돌보는 대신 덮었고, 나중에는 아들을 자살로 위장해 없애려 했다. 그 재료면 한 시간짜리 사연을 만들 수 있다. 만들지 않았다.
최종회에서 진이수가 그를 두고 말한다. 그냥 미친 거야. 그 여섯 글자가 이 드라마의 유일한 설명이다. 사연을 깔아 주면 관객은 편해진다. 이해할 수 있는 악은 덜 무섭고, 덜 무서운 것은 보기 쉽다. 편하게 해 주는 대신 이 드라마는 정확한 쪽을 골랐다. 이유를 알아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인물에게 재능이 하나 있다면 남의 가장 아픈 자리를 정확히 짚는 능력이다. 그는 진이수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곁에 있었느냐고, 죽는 순간을 직접 봤느냐고 웃으면서 묻는다. 사람을 무너뜨리려는 질문은 대개 이런 모양을 하고 있다.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반응을 보려고 묻는다. 진이수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답하는 순간 그것은 대화가 되고, 대화가 시작되면 지는 쪽은 늘 정상적인 쪽이다.

이 드라마가 겁을 주는 방식은 단순하다. 안전하다고 믿는 자리로 들어온다. 12회에서는 강력1팀 사무실로 시신이 배달된다. 사건을 처리하는 자리에 사건이 도착한다. 수사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타격은 범인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 찾아오는 것이다. 일터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그 뒤로 같은 방에서 같은 일을 할 수 없다. 그래도 이들은 그 방으로 다시 출근한다.
손해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동료가 죽고 장례식이 치러진다. 비서를 쫓던 두 사람의 차는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혼자 지하에 내려가 증거를 찾아낸 형사는 뒤통수를 맞고 쓰러지고, 그 위로 불이 붙는다. 지시는 같이 태워 버리라는 한마디였다. 나는 그 장면에서 화가 나지 않았다. 사람을 치울 것으로 세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그걸 과장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료를 잃은 뒤 주혜라는 자책한다. 팀장이라는 자리는 사람을 보내 놓고 돌아오지 않으면 그 몫을 혼자 받는 자리다. 이 드라마는 자책하는 사람을 길게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다음 일을 준다. 나는 그 처리가 맞다고 생각한다. 슬픔을 다루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은 당분간 할 일을 주는 것이다. 울게 두는 것보다 낫고,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를 한다. 억울해하거나 원인을 찾는다. 둘 다 시간이 많이 든다. 그리고 둘 다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드물게 보여 주는 것은 그 두 가지를 건너뛰는 태도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13회에서 진이수는 수감 중인 서유경을 찾아간다. 유성원이 어릴 때 어떤 아이였는지 듣기 위해서다. 그리고 같은 회차에서 정태선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 정면으로 선전포고를 한다. 이 두 장면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이 드라마의 태도를 보여 준다. 과거를 알아보는 일과 현재를 치는 일이 같은 날에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은 알아보다가 멈춘다. 알아보는 동안은 뭔가 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진이수는 억울해하지 않는다. 가진 것을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돈을 쓰고 나서 변명하지 않는다. 자기가 왜 형사를 하는지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13회에서 그는 사직서를 낸다. 그만두려고 낸 종이가 아니다. 자리를 걸어야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어서 낸 종이다. 사직서가 남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장면은 흔치 않다.

주혜라도 같은 쪽이다. 최종회에서 그는 유성원 앞에 서서 이젠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총에 맞는다. 쓰러지면서 그가 한 일은 옷에 달린 초소형 카메라로 자백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쓰러진 뒤에 카메라를 켠 것이 아니다. 들어가기 전에 켜 두었다. 방탄조끼도 미리 입었고 언론도 미리 불러 두었다. 각오라는 말은 이런 데 쓰는 말이다.
이 사람들이 특별히 용감한 것은 아니다. 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길 수 없는 상대 앞에서 할 수 있는 준비를 전부 해 두고 들어간다. 그게 전부다. 세상이 공평해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불공평한 채로 들어갈 방법을 찾는다. 나는 이쪽이 훨씬 현실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백이 중계되고 유성원이 끌려간다. 뒤이어 암매장된 시신 세 구가 발견된다. 이 드라마가 끝내 하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죽은 사람을 어떤 식으로도 돌려주지 않았다. 유성원을 이해시키지 않았고, 어머니와 화해시키지 않았고, 남은 사람들에게 뒤늦은 보상을 주지 않았다. 그런 장면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거슬리는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쾌함을 위해 절차를 건너뛰는 장면이 적지 않고, 수사가 사람의 힘보다 상황의 호의로 풀리는 회차도 있다. 그걸 흠으로 적는 일은 쉽다. 다만 이 드라마는 자기가 파는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숨기지 않았다. 교훈을 파는 척하면서 쾌감을 파는 작품보다는 쾌감을 판다고 말하고 쾌감을 파는 작품이 낫다. 나는 전자를 오래 참아 왔다.
마지막 장면은 조용하다. 강력1팀은 표창을 받고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휴가를 떠난다. 쉬는 중에 팀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건이야. 대단한 장면이 아니다. 다 끝냈다는 선언도 없고 이겼다는 표정도 없다. 그냥 다시 나간다. 대단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유를 알아야 끝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그 믿음이 사람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둔다. 알아도 끝나지 않고, 모르는 채로도 끝난다. 누군가가 왜 그랬는지를 몇 년째 생각하고 있는 당신에게 이 드라마가 알려 주는 것은 간단하다. 묻지 않고 잡는다. 잡고 나서 쉬러 간다. 순서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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