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4
재벌X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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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X형사
한수그룹 회장의 막내아들 진이수는 경영전략실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출근은 하지 않고, 백화점을 통째로 빌려 상황극을 벌이며 삽니다. 어느 날 친구를 베고 달아나는 남자를 쫓다가 잠복 중이던 강력 1팀장 이강현에게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되죠. 그 남자가 경찰이 몇 달째 쫓던 살인범으로 밝혀지고, 아버지의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에서 아들의 유치장 소식이 터지자, 집안은 변호사 자격증을 근거로 그를 경찰 특채에 밀어 넣습니다. 강하경찰서 강력 1팀의 낙하산 형사가 된 재벌 3세가 열여섯 회 동안 사건을 풀어 가는 이야기예요.
원작은 러시아 채널 원의 드라마 '실버 스푼'입니다. 넷플릭스가 사들인 첫 러시아 드라마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죠. 거기서도 부잣집 아들이 경찰과 충돌한 뒤 아버지 손에 경찰서로 보내지고, 상관은 여자고, 자살로 알려진 어머니의 죽음을 캐게 됩니다. 뼈대는 거의 그대로 가져왔어요. 극본은 넷플릭스 '마이 네임'을 쓴 김바다, 연출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과 '악귀'에 공동 연출로 이름을 올린 김재홍입니다. 둘 다 어두운 쪽에서 온 사람들인데, 이번에 만든 물건은 금요일 밤에 편하게 보라는 쪽이죠.

돈 많은 형사라는 설정은 대개 두 가지 길로 빠집니다. 하나는 돈이 만능열쇠가 되어 수사가 쇼핑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돈을 벗어던지고 고생해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길이에요. 이 드라마는 첫 번째 길을 숨기지 않고 갑니다. 요트를 띄우고 헬기를 띄우고, 사이비 교주와 밥 한 끼 먹는 데 1억을 씁니다. 그 대신 두 번째 길의 설교는 거의 하지 않아요. 돈 쓰는 걸 끝까지 부끄러워하지 않는 주인공을 유지한 건 선택이라고 쳐야겠죠. 다만 그 돈이 사건을 직접 푸는 대목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대개는 문을 여는 데 쓰이고, 문 안의 일은 사람이 해요.
이 설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재벌가 안쪽을 아는 사람만 읽을 수 있는 단서죠. 3회의 요트 살인 사건이 그걸 합니다. 모델이 요트에서 죽고, DN그룹의 세 아들과 회장의 두 부인이 경찰서로 몰려와 싸우는데, 진이수는 재벌가 소문을 캐서 회장이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가져오고, 이강현은 죽은 모델의 어머니가 그 회장의 비서였다는 기록을 가져와요. 둘을 합치면 모델은 내연녀가 아니라 혼외자가 됩니다. 돈이 아니라 그 세계의 문법을 아는 것이 수사가 되는 순간이에요. 통하는 장면은 여기입니다. 그리고 이게 첫 사건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만해요. 혼외자가 이복형제들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로 문을 여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혼외자이고, 형이 있거든요. 열여섯 회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여기서 거의 다 말한 셈입니다.

걸리는 건 최면입니다. 7회와 8회에서 최면으로 사람을 죽였을지 모른다는 가설로 수사가 시작되고, 최면 치료로 유명한 병원장이 범인이에요. 결말에서 최면에 걸린 범인이 칼이 어디 있는지 말하고, 깨어나서 증거가 없지 않냐고 따지면, 진이수는 방금 본인 입으로 말했다며 체포합니다. 그게 증거가 되는지는 넘어가더라도, 문제는 같은 최면이 주인공의 과거를 여는 열쇠로도 쓰인다는 거예요. 어릴 때 본 어머니의 죽음을 그 병원장이 아버지의 의뢰로 최면을 걸어 그림 한 점으로 바꿔 놓았고, 같은 사람이 다시 최면을 걸어 기억을 돌려줍니다. 한 주짜리 사건을 푸는 장치와 열여섯 회를 푸는 장치가 같은 도구인 거죠. 편리하긴 합니다. 최면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규칙은 끝까지 설명하지 않아요.
속도도 좀 그렇습니다. 11회와 12회의 사이비 단체 오륜회 사건을 보면, 교주와 독대하는 밥 한 끼에 1억을 쓰고 두 사람이 잠입해 들어가는 것까지는 이 드라마의 문법이에요. 문제는 뒷정리입니다. 경찰서장이 교주와 돈거래를 하는 영상이 칩 하나에서 나오고, 그 영상으로 서장이 물러나고, 뇌물 누명을 썼던 팀장의 아버지가 새 서장이 됩니다. 조직의 문제가 인사 한 번으로 정리되는 속도가 이 드라마의 속도예요. 사이비가 요양병원 봉사를 돌며 돈 많은 노인을 고르는 과정은 꽤 구체적으로 보여 주면서, 경찰 안쪽의 문제는 영상 하나로 끝내죠. 바깥은 자세하고 안쪽은 빠릅니다.
배우 쪽은 나쁘지 않습니다. 안보현은 능청과 정색 사이를 오가는 역할인데, 정색 쪽이 더 낫더군요. 박지현은 액션을 많이 직접 소화했다고 하고, 12회에서 손이 묶인 채 수조에 빠져 젖은 얼굴로 버티는 장면이 그 증거예요. 강력 1팀은 팀장 이강현, 박준영, 최경진에 진이수를 더해 네 명입니다. 부검의 윤지원까지 세면 경찰 쪽에 선 여성이 셋이죠. 메인 포스터의 주역 열한 명 중 여성은 다섯입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요즘 수사물치고 꽤 균형이 잡혀 있어요. 다만 최경진은 놀라고 촬영하는 역할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고, 이강현의 어머니 고미숙은 재벌 사위 만들기 쪽으로만 쓰입니다. 형 진승주를 맡은 곽시양은 온화한 얼굴과 서늘한 눈빛을 번갈아 내놓는 역할인데, 열여섯 회 내내 그 두 가지만 요구받습니다. 각본이 그에게 준 카드가 두 장뿐이에요.
결말에서 형이 범인이고, 회장 자리를 지키려고 25년 전 어머니까지 죽였다는 사실은 요트 사건을 본 사람이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습니다. 놀라게 하려고 만든 결말은 아니에요. 그 집에서 형이 너만 없었으면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조용한 장면입니다. 열여섯 회 동안 돈으로 연 문이 많았는데, 그 문만은 돈 없이 열었죠. 지문 감식 보고서 한 장으로요. 돈으로 문을 열고, 문 안의 일은 손으로 하는 드라마고, 그 정도면 됐죠.
(덧) 제목의 X는 곱하기 기호로 읽는 게 맞을 겁니다. 더한 게 아니라 곱했다는 뜻이겠죠. 포스터 카피는 "돈도 빽도 안 통하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인데, 그곳까지 모시는 데는 돈과 빽을 씁니다.
(덧) 원작의 주인공은 경찰서에서 자기 차가 번번이 망가지는 수모를 겪습니다. 한국판 주인공의 초록색 스포츠카는 환영식 레드카펫 뒤에 멀쩡히 서 있어요. 대우가 다르죠.
(덧) 안보현과 박지현은 '유미의 세포들' 이후 다시 만난 조합입니다. 여기서는 우정과 애정 사이 어딘가에서 끝납니다. 두 번째 시즌이 그 사이를 어떻게 하는지는 다른 글의 몫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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