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사진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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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다큐 설계 기준에 관한 민원 네 건과 답변서

예민한책장· 2026. 10. 29.· 2,729자

10만 컷 중 1,000컷. 영화에 들어간 사진의 수를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98분 안에 사진 한 장이 평균 6초쯤 머문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사진만 나오는 영화가 아니니 실제로는 그보다 짧게 스치는 것도 많고, 내가 초시계를 들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기사에 적힌 숫자 둘을 나눠 봤을 뿐이다. 6초면 얼굴 하나를 알아보고 잊기에 꼭 맞는 시간이라 하겠다.

「사진의 얼굴」은 1964년부터 60년 넘게 한국을 찍어 온 일본 사진가 한 분의 다큐멘터리다. 올해 아흔이시다. 이런 작품에 민원을 넣는 일이 얼마나 염치없는지는 나도 안다. 그래도 넣는다. 거장을 모시는 다큐에도 설계 기준이라는 것이 있고, 기준에 못 미치면 시민은 창구에 갈 수 있다. 미리 밝혀 두자면 민원인은 사진가 편이다. 민원은 영화 쪽에 넣는다. 그리고 민원인은 영화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보통 관객이라는 점도 적어 둔다. 전문가인 척해 봐야 금방 들통나는 분야다.

민원 1 · 연대순 진열에 관한 건

영화는 1960년 미나마타에서 출발해 1964년 한국 첫 방문, 청계천 판잣집, 베트남 파병, 동두천 기지촌, 평양 순으로 간다. 시간순이다. 사진가가 원고지에 쓴 글을 본인 목소리로 읽어 주고, 그 위로 그 시절 사진이 올라온다. 사진집에 성우가 붙은 꼴이라 하겠다. 사진이 워낙 좋아서 그 순서로도 98분이 가긴 간다. 다만 10만 장에서 1,000장을 추린 손이 누구 손인지 영화는 일언반구 설명이 없다. 기사를 보니 고른 쪽은 감독이다. 그렇다면 사진가가 60년 동안 스스로 버린 컷에 대해서는 영화가 한 번도 묻지 않은 셈이 된다. 찍은 것만 진열하고 버린 것은 묻지 않는 설계. 설계 누락으로 보고 시정을 요청한다.

연대순의 부작용 하나 더. 이분은 한국에서 가난을 찍었다고 한동안 입국이 막혔고, 북한에서는 이산가족을 찍었다고 또 막혔다. 남북 양쪽의 명단에 오른 사진가인 것이다. 한국에서 7년 동안 촬영을 못 한 적도 있다. 이 정도면 한 편의 영화가 따로 나올 사연인데, 연표 위에서는 한 칸이다. 사연이 큰 순서가 아니라 연도 순서로 진열하다 보니 큰 사연과 작은 사연이 같은 크기의 칸에 들어간다. 이것은 시정 요청이라기보다 안타까움의 기록으로 남긴다.

민원 2 · 오물 사건 처리에 관한 건

1960~70년대 청계천 판잣집을 찍을 때 이분은 왜 일본 놈이 한국의 가난을 찍느냐는 소리를 들었고, 어느 주민은 면전에 오물을 끼얹었다. 영화는 이 일을 전한 뒤 사진가의 말로 정리한다. 건물이 가난할 뿐 사람은 가난하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너무 빨리 좋다. 오물을 뒤집어쓴 날 저녁과 다시 카메라를 든 다음 날 아침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 영화는 그 사이를 건너뛰고 60년 뒤의 정리된 문장으로 간다. 그날의 젊은이는 없고 노인의 결론만 있다. 공정 생략이다. 그 사이를 복원해 주시기 바란다.

민원 3 · 「그때 그 사람」 수순에 관한 건

60년 전 서울대 시위 사진 속 학생이 노인이 되어 여의도공원에서 사진가와 다시 만난다. 이 장면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속으로 「왔다」 했다. 인물 다큐의 정석 수순이다. 옛 사진을 꺼낸다, 그 사람을 찾는다, 두 노인이 만난다, 사진 속 젊은 얼굴과 지금 얼굴을 관객이 알아서 겹쳐 본다. 차려진 밥상이니 먹기는 먹는다. 다만 이 영화가 아니어도 여러 번 받아 본 밥상이라는 점은 적어 둔다. 상투적 공정이라고까지는 못 쓰겠고 표준 공정이라고 쓰겠다. 시정 요청은 보류한다.

사진의 얼굴 스틸컷

민원 4 · 손 떨림 고백 처리에 관한 건

베트남에서 전사자 유족이 무덤 앞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찍을 때 손이 떨렸다고 이분은 고백한다. 그리고 곧 덧붙인다. 슬픔이나 연민 때문에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면 보도 저널리스트의 자격이 없다고. 고백이 몇 초 만에 직업윤리로 봉합된다. 나는 떨린 손 쪽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아흔의 노인이 원고지에 연필을 꾹꾹 눌러 쓰는 장면이 영화 곳곳에 있는데, 떨렸다는 손이 바로 그 손이다. 그 손이 자격론보다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봉합을 한 박자 늦춰 달라는 민원이 되겠다.

그래도 구수한 것

한복 입은 여인이 장을 보고 돌아오는 사진이 있다. 돼지 한 마리와 아이들이 따라온다. 부산 산비탈에 집들이 쏟아져 내릴 듯 붙어 있는 사진도 있다. 이런 사진이 올라올 때는 민원 1을 취하하고 싶어진다. 사진이 구수하니 영화도 덩달아 구수해지는 것이다. 아무튼.

사진의 얼굴 포스터

답변서 (영화를 대신하여)

귀하의 민원을 검토하였습니다. 본 영화는 사진가의 인생이 아니라 사진을 주인공으로 설계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사진가 본인도 개봉 무렵 인터뷰에서 자신은 조연이고 주인공은 찍은 사진들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따라서 버린 사진의 표정, 오물 맞은 날 저녁, 떨린 손의 뒷이야기는 설계 범위 밖임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연대순 진열은 60년을 98분에 넣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으며, 여의도공원 장면은 표준 공정에 따라 시공되었습니다. 사진 1,000장은 시정 없이 현상 유지합니다.

답변서를 받고 보니 반박할 말이 없다. 사진이 주인공이라는데 사진가 이야기를 더 달라고 했으니 민원인이 창구를 잘못 찾은 것이다. 그래서 볼까 말까 하시는 분들께는 이렇게 말씀드리겠다. 사진가의 인생이 궁금한 분은 2할쯤 허전할 것이고, 사진이 궁금한 분은 1,000장을 6초씩 보고 나오게 된다. 둘 중 어느 쪽이 남는 장사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추신.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세어 보니 느낌표를 칠 자리가 한 군데도 없었다. 아흔 노인이 느낌표 없이 60년을 읽어 주는데 민원인이 느낌표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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