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사진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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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은 왼쪽 눈이 맞춘다

삐딱하게보기· 2026. 10. 29.· 2,597자

삔또는 내가 제일 잘 맞췄어. 요즘은 전부 컴퓨터가 자동으로 맞추지만. 아흔의 사진가가 영화 속에서 이렇게 말할 때 나는 웃었다. 그리고 그가 오른쪽 눈에 의안을 끼고 있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 준 뒤로는 같은 말을 웃으며 들을 수 없었다. 어릴 때 잃은 눈이다. 60년 동안 초점을 가장 잘 맞췄다는 사람은 그것을 한쪽 눈으로 해 온 것이다.

이 글은 「사진의 얼굴」에 나오는 물건 하나를 느리게 보려는 글이다. 물건은 카메라다. 정확히 말하면 카메라와, 그 뒤에 붙는 왼쪽 눈이다. 기종을 나는 끝내 알아보지 못했고 알아보려 애쓰지도 않았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상표가 아니라 무게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흔의 성치 않은 몸이 그것을 메고 다니는 모습을 영화는 숨기지 않는다.

첫 번째 장면. 카메라가 사진가의 손이 아니라 아내의 손에 들려 있다. 아내가 그것을 챙겨 남편에게 건넨다. 어디든 갈 수 있게. 영화가 그 전에 들려준 이야기를 알고 보면 이 동작의 무게가 달라진다. 아내는 1960년대에 통역으로 그를 만나 1970년에 결혼했고, 결혼식 이틀 뒤부터 사라지는 남편을 기약 없이 기다리며 살았다. 사진 찍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이 미워서 말도 하지 않고 한국으로 떠난 적도 있다. 사진만으로 살림이 되지 않던 시절에는 일흔다섯까지 일을 했다. 그 사람이 지금은 카메라를 챙겨 준다. 이 물건이 두 사람 사이에서 56년 동안 무엇이었는지를 영화는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는 한 동작으로 처리한다. 모름지기 소품이란 설명될 때가 아니라 건네질 때 말을 하는 법이다.

사진의 얼굴 스틸컷

두 번째 장면. 2024년, 사진가는 동두천에 다시 간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옛 성병관리소 건물과 상패동의 무연고 묘지를 찍는다. 무거운 장비를 멘 채다. 그는 60년 전 이 동네 기지촌의 여성들을 찍었고, 묘지 앞에서 그때 찍은 사람들 중 누군가도 여기 묻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카메라는 애도의 도구가 된다. 꽃을 놓는 대신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나는 그 장면에서 카메라를 든 손보다 카메라 뒤의 왼쪽 눈을 생각했다. 60년 전에 그 얼굴들을 봤던 바로 그 눈이다. 오른쪽은 그때도 보지 못했다.

세 번째는 카메라가 아니라 그 다음 물건이다. 암실, 그리고 확대경. 그는 지금도 확대경으로 사진을 한 장씩 들여다보고 현상 과정을 하나하나 손으로 다룬다. 카메라가 찍은 것을 왼쪽 눈이 다시 확인하는 셈이다. 청계천 판잣집을 찍을 때 그는 망원렌즈로 멀리서 찍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멀리서 당겨 온 얼굴을 60년 뒤 책상에서 확대경으로 다시 당긴다. 그렇게 당겨진 얼굴들이 영화에 올라온다. 가랑비 속에 선 대학생들의 침묵시위, 파병을 앞두고 부모와 밥을 먹는 군인, 돼지와 아이들을 데리고 장에서 돌아오는 한복 차림의 여인. 두 번의 당김 사이에 10만 장이 있고, 영화는 그중 1,000장을 골랐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대목에서 질투가 났다. 사진 때문이 아니다. 사진은 질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질투가 난 것은 감독이 의안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기사를 보니 감독은 편집을 다 끝낸 뒤에야 그가 의안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너무 중요한 반전이라 여겨 도쿄로 다시 건너가 그 장면을 찍었다고 한다. 나라면 못 했을 것이다. 다 끝난 영화를 다시 여는 일도, 그것을 반전이라는 말로 부를 용기도. 그리고 그 반전은 통한다. 초점 자랑을 하던 농담이 의안을 안 뒤로는 다른 온도로 들린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나, 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다시 열었나, 다.

만든 사람들의 손을 상상해 본다. 상상이다. 카메라를 든 아흔 노인을 찍는 카메라는 그의 것보다 가벼웠을까, 무거웠을까. 동두천 묘지에서 촬영팀은 그가 셔터를 누를 때까지 자기들의 셔터를 참았을까. 나는 참았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참지 않았다면 그 장면이 애도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물건은 주인의 발을 막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난을 찍었다는 이유로 입국이 막힌 적이 있고, 북한에서는 이산가족의 모습을 찍었다는 이유로 또 막혔다. 양쪽의 명단에 다 오른 사진가다. 북한에는 일곱 번 들어갔고, 한국에서는 7년 동안 사진을 찍지 못했다. 여권을 막는 물건을 60년 동안 내려놓지 않은 것이다. 영리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련하다고는 할 수 있는 일이고, 나는 미련한 쪽의 편이다. 유행하는 장비와 유행하는 주제를 좇는 쪽이 늘 더 고상해 보이는 법인데, 이 사람은 같은 나라의 같은 얼굴들을 60년 동안 들고 다녔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적는다. 이 카메라는 무겁고 늘 거기 있다. 그는 1965년 부산항에서 파병 열차를 찍다가 방첩부대에 붙잡혔을 때 필름을 몰래 되감아 주머니에 넣고 빈 필름을 끼웠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람과 먼저 관계를 쌓은 뒤 단 한 장만 찍는 방식을 쓴다고도 했고, 가까이서 찍을 때는 반드시 당사자의 양해를 구했다고도 했다. 멀리서는 망원렌즈, 가까이서는 양해. 카메라의 거리가 곧 예의의 거리였던 셈이다. 이런 사람의 카메라는 소품이 아니라 신체다. 영화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종을 알려 주는 데 시간을 쓰지 않았다고, 나는 믿기로 한다.

사진의 얼굴 포스터

볼까 말까 하는 분에게. 사진을 보러 가면 1,000장을 얻고, 카메라를 보러 가면 한쪽 눈을 얻는다. 나는 후자를 권한다. 초점은 눈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 60년이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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