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사진의 얼굴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성우 쓸 돈이 없는 줄 알았다고 한다
아흔 살 노인이 아흔 살 노인의 인생을 읽어 준다. 98분 내내 그 목소리다. 본인은 싫다고 했다. 이런 건 성우를 써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읽었다. 성우 쓸 돈이 없는 줄 알았다고, 나중에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오해로 완성됐다. 제작비 걱정 하나가 다큐멘터리의 목소리가 됐다. 다큐멘터리는 원래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찍는 사람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안 되는 것들이 모여서 한 편이 된다.
「사진의 얼굴」은 1964년부터 한국을 찍어 온 일본 사진가의 다큐멘터리다. 60년, 100번 넘는 방문, 10만 컷. 영화에는 그중 1,000장이 들어갔다. 명장면을 모아 보려는데, 이 영화는 장면보다 말이 많이 남는다. 노인이 말하고, 사진이 그 뒤에 선다. 그래서 말과 사진을 섞어서 적는다. 영화 밖의 말도 있다. 밖에 있는 말은 밖에 있다고 적겠다.
한 번 더는 없어. 그건 너희가 놓친 거야!
영화 밖의 말이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전했다. 촬영팀이 초점을 놓쳐도 노인은 같은 동작을 다시 해 주지 않았다. 부탁받고 하는 모습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촬영감독 입장에서는 지옥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보증서다. 화면에 있는 것은 전부 한 번만 있었던 일이다. 60년 동안 망원렌즈로 한 컷에 끝내던 사람이, 자기를 찍는 사람에게도 한 컷만 준 셈이다. 공평하다. 무섭게 공평하다.
베트남에 갈 때는 돈이 없었다. 집에 있던 상장과 상패를 전당포에 맡기고, 아내 몰래 돈을 구해서 갔다고 감독이 전했다. 돌아올 때는 다 낡은 짝짝이 신발을 신고 왔다고 한다. 프리랜서였다. 기획을 매번 신문이나 잡지에 팔아야 했다. 상을 맡기고 사진을 찍으러 간 사람. 상은 되찾았는지 영화는 말해 주지 않는다. 사진은 남았다. 그게 거래의 결과다.
월남으로 떠나는 아들의 귀에 어머니가 뭔가 속삭이는 사진이 있다. 감독은 이런 식으로 드라마가 있는 사진을 골랐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진은 소리를 못 찍는다. 그런데 이 사진 앞에서는 다 들린다. 각자 자기 어머니 목소리로.
1960년대 한국에서 공장 같은 데를 찍으려면 미리 허가를 받아야 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가면 누군가 옆에 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KCIA입니다.
이것도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자기소개다. 뒤에 설명이 하나도 필요 없는 자기소개이기도 하다. 그 시절 한국 기자들은 시위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외국인인 그는 찍을 수 있었다. 외국인이라서 찍은 것이 아니라, 외국인이라서 찍을 수 있었다. 비슷해 보이는데 다른 말이다. 영화는 이 차이 위에서 60년을 버틴다.
청계천 판잣집을 자꾸 찍는다고 한국 기자들이 핀잔을 줬다. 왜 일본 사람이 한국의 가난을 찍느냐고. 노인의 대답은 영화 안에 있다. 건물이 가난한 것이지, 사람이 가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좋은 이유는 따로 있다. 그 대답을 하기까지 60년이 걸린 것이 아니다. 그때도 그렇게 찍었다. 사진이 증거다.
동두천 기지촌 여성들의 사진이 나온다. 감독은 처음에 눈을 흐리게 가리려 했다고 한다. 그러니 슬픈 느낌과 표정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대로 썼다. 수갑 찰 각오로, 라고 했다. 가리는 것이 보호가 아니라 삭제였다는 얘기다. 60년 전에 찍은 사람이 그 얼굴을 지켰고, 60년 뒤에 보여 주는 사람이 그 얼굴을 지켰다. 지키는 방법이 둘 다 그냥 보여 주는 것이었다. 촬영팀은 그 동네의 무연고 묘지를 찍으면서 울었다고 한다. 우리가 너무 몰랐다고.
60년 전 시위 사진 속 대학생을 찾았다.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었다. 여의도공원에서 두 노인이 만난다. 감독은 100미터 전부터 숨어서 지켜봤다고 했다. 그 옆에서 사진가의 아내가 물었다고 한다. 말이 안 통할 텐데 통역을 할까요. 나는 이 대목이 좋았다. 60년 만에 만나는 두 사람 옆에서 통역 걱정을 하는 사람. 가장 실무적인 사람이 가장 오래 기다린 사람이다.
1965년.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서울대생들의 시위. 가랑비. 학생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사진 제목이 「무언의 데모」다. 영화에서 가장 조용한 순간이 이 사진이다. 내레이션이 있고 음악이 있지만, 사진 안에는 아무 소리가 없다. 여의도공원에 선 노인은 아마 이 사진이거나 이 사진 근처의 사진 속 사람일 것이다. 그때도 말이 필요 없었고, 지금은 말이 안 통한다. 그런데 사진은 통했다.
그리고 방. 영화는 도쿄의 작은 방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시작하고, 같은 방으로 돌아와서 끝난다. 사진이 천장까지 쌓인 방. 아내는 그 방이 한국에 공개되면 부끄러울 것 같아 촬영 전에 치워 버렸다고 한다. 감독은 손때가 다시 묻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거의 마지막에 찍었다. 다큐멘터리의 최대 적은 검열이 아니라 청소다. 농담이다. 반만.
영화가 개봉하고 노인은 상영관에서 부끄러워 화장실로 도망쳐 숨고 싶었다고 했다. 60년 동안 남의 얼굴만 찍던 사람이 자기 얼굴을 98분 동안 봐야 했다. 사진가에게 그보다 무서운 벌은 없을 것이다. 아마.
좋은 영화다. 총평은 이걸로 끝이다. 덧붙이면 길어지고, 길어지면 이 노인이 싫어할 것이다. 한 컷이면 된다고 60년을 말한 사람이니까.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