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26
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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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천, 우림천, 하고 자꾸 소리 내어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하천 이름 하나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림천. 사건이 일어난 곳이고, 영화가 그 사건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우림천 여중생 사망 사건. 나는 이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부터 다른 쪽으로 집중이 되지 않았고, 내 안의 무언가가 '저 이름에 뜻이 있다, 무조건 있다, 없으면 내가 붙인다' 하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다들 사건을 보고 있는데 나는 혼자 글자를 보고 있었다.
문제는 영화가 그 이름의 한자를 알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雨林川이라고 읽어 버렸다. (영화가 그렇게 적어 주지 않는다. 나 혼자 그렇게 읽은 것이다.) 비 우, 수풀 림, 내 천. 비와 수풀과 내가 한 이름 안에 들어가 있다. 이렇게 읽고 나니 그때부터는 되돌릴 수가 없었다. 나는 영화가 물가를 비출 때마다 속으로 세 글자를 하나씩 짚었다. 비. 수풀. 내.
그런데 영화는 그 천에 대해 거의 설명해 주지 않는다. 사건이 거기서 일어났고 사람들이 거기를 지나다닌다는 것 말고는 알려 주는 게 없다. 나는 진지하게 궁금했다. 저 천에 다리는 몇 개나 놓여 있나. 여름이면 물이 줄어서 바닥이 보이나. 산책로는 있나, 있다면 밤에 가로등은 켜지나. (영화는 이런 걸 알려 줄 의무가 전혀 없다. 없는데 나는 계속 궁금했다.) 사건이 난 하천의 가로등 개수를 걱정하는 관객이 나 말고 또 있었을까 싶다.
나중에 찾아보니 감독은 이 천을 고르느라 꽤 공을 들였다고 한다. 고가도로가 드리운 그늘과 구렁이처럼 굽이치는 물줄기가 인물들의 삶의 굴곡처럼 보이기를 바랐고, 그런 장소를 부산에서 찾았다고 했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천을 중심에 놓고, 기존 한국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방식의 여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말도 했다. 전작이 칼바람 부는 겨울이었다면 이번에는 여름이다. 그러니까 저 천은 배경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획이었던 셈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괜히 으쓱했다. 거봐, 뜻이 있다니까.
그러다 웃음기가 가신 건 사건 이름을 다시 소리 내어 읽었을 때였다. 우림천 여중생 사망 사건. 이 작명법을 가만히 뜯어보면 참 이상하다. 장소가 맨 앞에 오고, 그다음에 나이와 성별이 오고,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 온다. 사람 이름이 들어갈 자리가 어디에도 없다. 사건계의 택배 송장 같은 문장이다.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갔는지는 또박또박 적혀 있는데, 정작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끝까지 적지 않는다. 뉴스가 이렇게 부르고, 사람들이 따라 부르고, 그러다 보면 그 애는 사라지고 천 이름만 남는다.
영화는 바로 그 지워진 자리에서 시작한다. 한때 야구 간판스타였던 중구와 톱배우였던 남미 부부 앞에 일곱 살짜리 동주가 나타나고, 부부는 그 일로 갈라진다. 8년이 지나 열다섯이 된 동주가 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 중구는 과거의 스캔들 때문에 어디에도 취직이 되지 않고, 남미는 먹방 리포터로 방송 일을 이어 가고 있다. 광이긴 광인데 점수가 붙지 않는 패, 라는 말을 감독이 제목 설명에 썼는데 이 집 사람들이 딱 그렇다.

나는 먹방 리포터가 된 쪽에 오래 마음이 갔다. 카메라 앞에서 먹는 일은 생각보다 고단한 노동이다. 배가 안 고파도 먹어야 하고, 맛없어도 맛있는 표정을 지어야 하고, 한 입 베어 물고 나서 반드시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예전에는 카메라가 그 사람의 얼굴을 담으려고 켜졌는데 지금은 그 사람이 뭘 먹는지를 담으려고 켜진다. 같은 카메라인데 향하는 곳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방송이 끝나고 차에 앉아 아무것도 안 먹고 가만히 있는 장면을 혼자 상상했다. 영화에 그런 장면은 없다. 없는데 나는 봤다.)
이 집 식구들이 길 위에 나란히 서 있는 장면도 좋았다. 체인 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휴대폰을 쥔 사람, 주황색 선글라스를 쓰고 노란 폴로셔츠를 입은 곱슬머리, 표범 무늬 원피스에 모피를 품에 안은 나이 든 사람. 셋 다 같은 데를 보고 있는데 표정이 전부 다르다. 옷차림만 보면 서로 전혀 안 어울리는데, 서 있는 간격은 식구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간격이다. 너무 붙어 있지도 않고 떨어져 있지도 않은, 평생 같이 다녀 본 사람들만 아는 그 애매한 폭.

내가 제일 오래 붙들린 건 밤거리 장면이다. 붉은 승용차 한 대가 서 있고, 그 옆에서 한 남자가 한 손으로 뭔가를 짚은 채 허리를 반쯤 굽히고 고개를 떨구고 있다. 차 문 쪽에는 붉은 코트를 입은 여자가 서서 그 사람을 내려다본다. 다가가지도 않고 돌아서지도 않는다. 나는 여기서 좀 울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저 여자가 아직 차에 타지 않았구나 싶어서였던 것 같다. 탈 거면 진작 탔을 텐데.
그러고 나서 제목이 다시 보였다. 감독은 이 제목을 화투패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는 이미지에서 시작했고, 비광은 광이긴 한데 점수가 붙지 않아 계륵 같은 패라고 했다. 거기에 더해 수십 번을 뛰어 끝내 개울을 벗어난 개구리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 설명을 읽다가 숨이 턱 막혔다. 비광 그림 안에 뭐가 들어 있나. 비가 내린다. 수풀이 있다. 개울이 있다. 비, 수풀, 내. 우림천.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제목을 하천 이름 하나에 통째로 숨겨 둔 것이다. (혹은 내가 혼자 그렇게 읽기로 한 것이다. 둘 중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고, 나는 전자 쪽에 걸겠다.) 포스터도 그 패를 그대로 옮겨 놨다. 비 내리는 밤골목을 빨간 우산 하나가 지나가고, 그 위쪽 붉은 등에 光 자가 떠 있다. 위기의 순간 가장 빛나는 패, 라는 문구가 세로로 적혀 있다. 비가 와야 비광이 나온다. 비를 피하려고 쓴 우산이 아니라, 비가 와서 비로소 그려진 우산인 것이다.
사건에 장소 이름을 붙이면 사람이 지워진다는 말을 아까 했는데, 이 영화가 하는 일은 결국 그 지워진 자리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천 이름만 남은 자리에 한 사람씩 세워 놓는 일. 점수가 안 나는 패들이 그래도 한자리에 모여 앉는 일. 따로 두면 아무것도 아닌데 모아 두면 그제야 점수가 나는 패가 있다는 것을, 화투를 쳐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서랍에서 화투를 꺼내 비광을 찾아 한참 들여다봤다. 개구리는 생각보다 작게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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