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T셔츠가 마를 때까지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느린 드라마가 싫어서 세 가지를 찾아봤다

삐뚜름관람· 2026. 11. 03.· 2,530자

나는 말이 느린 드라마를 못 견딘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십 분 넘게 이야기만 하면 리모컨에 손이 간다. 일본 드라마를 멀리한 것도 그래서다. 자막을 따라가다 보면 눈이 먼저 지친다.

아무튼 「T셔츠가 마를 때까지」를 봤다. 2026년 여름 TBS에서 열 편으로 나간 드라마다. 마흔 살 결혼 정보지 편집자 사키코와 찻집을 하는 남편 미츠루, 그리고 고속버스 사고로 이 부부와 엮이는 다른 부부 이츠키와 아즈사의 이야기다. 작가도 연출자도 배우들도 나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보다가 멈추고 세 가지를 찾아봤다.

하나. 편성이다. TBS 금요일 밤 10시 「금요드라마」 틀에서 2026년 7월 10일부터 9월 11일까지 매주 한 편, 마지막 회만 5분 연장이었다. 이건 몰라도 된다. 다만 한 주에 한 편씩 기다리며 본 사람과 몰아 본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 매회 끝에 뭔가 터지고 다음 주로 넘기는 구조는 그 틀에서 나온 것이다. 몰아 보는 사람에게 그 끊김은 좀 그랬다.

둘. 작가다. 극본은 우부카타 미쿠. 2022년 후지TV 「silent」를 쓴 사람이고, TBS 극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앞선 작품들을 훑어보니 하나같이 누군가를 잃은 자리에서 시작한다는 평이 붙어 있었다. 이건 알아야 더 좋다. 이 드라마는 1화 끝에 코인세탁소에서 「당신 남편, 내 아내와 불륜이었어요」라는 말을 던지고 시작하는데, 그 말만 믿고 범인 찾기를 기대하면 중반에 길을 잃는다. 작가의 전작을 알면 이게 수수께끼가 아니라 잃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말을 시작하는가의 이야기라는 걸 미리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몰랐고, 그래서 길을 잃었다.

셋. 연출과 배우다. 연출은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도이 노부히로가 맡았고, 주연 아오이 유우는 지상파 연속극 주연이 18년 만이라고 했다. 주제가는 스피츠의 「미시라누 이토(見知らぬ糸)」. 18년과 주제가는 몰라도 된다. 연출자는 반쯤 알아야 한다. 그 영화도 한집에 사는 두 사람의 몇 해를 따라가는 영화라고 하니, 이 드라마에서 부부가 밥을 먹고 빨래를 개는 장면이 길게 이어질 때 당황할 이유가 하나 줄어든다.

T셔츠가 마를 때까지 스틸컷

입문자가 막히는 장면은 8화다. 사키코가 집을 나간다. 지갑도 가방도 두고 스마트폰만 들고 사라진다. 그런데 드라마는 그를 찾아 뛰지 않는다. 미츠루가 찻집에 이츠키, 친구 치즈루, 고서점 주인 미야우치, 직원 나오토를 불러 모아 자기가 모르는 사키코를 말해 달라고 한다. 네 사람이 아는 사키코가 다 다르다. 나오토에게는 느낌 좋은 사람, 이츠키에게는 어딘가 느낌이 안 좋은 사람, 치즈루에게는 금방 질려 새것을 찾는 사람, 미츠루에게는 물건을 오래 쓰는 사람. 주인공이 사라진 회에 사람들이 앉아서 말만 한다. 리모컨에 손이 갔다.

넘기는 법은 하나다. 이 회가 이 드라마의 방식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사건은 1화에 다 터졌고, 남은 아홉 회는 그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이 서로를 어디까지 아는지 재는 시간이다. 그 자리에서 미츠루가 말한다. 우리가 모르는 세오 사키코 씨가 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한 줄이 이 드라마의 설명서다. 설명서를 8화에 끼워 넣는 드라마라니, 얄밉다.

길을 잃고 나서 좋아진 장면도 적어 둔다. 3화다. 경찰이 사키코에게 전화해 남편은 사고 시각에 버스에 없었다고 알린다. 사키코와 이츠키가 그 휴게소에 가 보니 미츠루가 매점에서 호박이 든 카레빵을 두 개 샀다는 게 나온다. 호박을 못 먹는 사람이다. 사키코는 예전에 그 빵을 그와 같이 먹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남편의 스마트폰 비밀번호는 결혼식 날짜였다. 큰 사건은 전화 한 통으로 끝내고, 카메라는 카레빵 두 개와 비밀번호에 머문다. 느린 드라마라고 투덜댄 내가 여기서 졌다. 느린 게 아니었다. 작은 것으로 큰 걸 말하는 거였다. 호박을 못 먹는 사람이 호박 카레빵을 두 개 샀다는 걸 두고 나는 한참 생각했다. 하나는 누구 거였을까. 드라마는 마지막 회까지 호박을 놓지 않는다. 거기까지는 직접 보고 확인하라.

T셔츠가 마를 때까지 스틸컷

그리고 5화. 사고 1년 뒤로 시간이 건너뛴다. 사키코는 혼자 건조기 필터를 청소하는 사람이 됐고, 찻집 직원 나오토는 미츠루만큼 맛있는 커피를 내리게 됐다. 이츠키가 아들 쇼와 함께 사키코의 집으로 이사 오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사키코가 파스타에 가루 치즈를 쏟아붓듯 뿌린다. 외롭다, 그런데 아직은 생각할 수 없다고 답한다. 그날 밤 피자가 온 줄 알고 열어 준 문 앞에 1년 동안 사라졌던 미츠루가 다녀왔어, 하고 서 있다. 입문자에게 이 회를 권한다. 1화에서 4화까지가 힘들면 여기까지만 버텨 보라. 여기서부터는 나도 리모컨을 놓았다.

다음에 볼 것은 정했다. 같은 작가의 2022년작 「silent」. 열한 편짜리고, 고등학교 때 사귄 남자가 청력을 잃는 병으로 연락을 끊은 뒤 8년 만에 역에서 마주치는 이야기라고 한다. 이번에도 잃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모양이다. 아직 안 봤으니 좋다고는 못 하겠다. 다만 이 작가가 느린 게 아니라는 건 이제 아니까, 이번에는 리모컨을 멀리 두고 볼 생각이다.

추신. 드라마를 다 보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카레빵을 샀다. 호박은 안 들어 있었다. 아쉬웠는지 다행이었는지 아직 모르겠다.

댓글

0 / 1,000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T셔츠가 마를 때까지의 다른 리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