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T셔츠가 마를 때까지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누가 사라지면서 시작하는 드라마가 또 나왔다
2024년 6월 21일 금요일, 코인세탁소. 책을 읽는 남자에게 모르는 여자가 세탁기 쓰는 법을 묻더니, 남편에게는 못 할 질문이라며 흰 티셔츠 한 장에 얼마까지 쓰느냐고 묻는다. 남자는 3천 엔쯤이라고 한다. 여자는 자기 남편은 1만 5천 엔 내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건 잡담이니까, 다시 안 볼 사이니까, 극단적으로 말해 미움받아도 되니까 솔직하게 말하라고 한다. 「T셔츠가 마를 때까지」 7화에 나오는 미츠루와 아즈사의 첫 만남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이 작가가 또 그 수순으로 왔다는 걸 알았다. 사람이 하나 없어진 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말로 메우는 수순.
요즘 일본 드라마라면 이 수순을 모를 수 없다. 2022년 가을 후지TV 목요극장 「silent」 열한 편. 고등학교 때 사귄 남자가 청력을 잃는 병에 걸려 일방적으로 이별을 말하고 연락을 끊었다. 8년 뒤 여자가 역에서 그를 보고,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가 수화로 답하는 걸 보고 병을 안다. 여자는 수화를 배우기 시작한다. 2024년 여름 후지TV 월요일 9시 「海のはじまり(바다의 시작)」 열두 편. 대학 때 헤어진 연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남자가 장례식에서 여섯 살 아이를 만나는데, 그 아이가 자기 딸이다. 둘 다 극본은 우부카타 미쿠. 그리고 2026년 여름 TBS 금요드라마 「T셔츠가 마를 때까지」 열 편, 극본 같은 사람. 흐름이라고 쓰고 한 사람이라고 읽어도 된다(앞의 두 편은 기사와 자료로 확인한 것이고, 끝까지 본 건 이번 것 하나라는 자백을 여기 적어 둔다). 다만 한 사람이 네 해 동안 방송사를 바꿔 가며 같은 수순을 세 번 통과시키고 세 번 다 화제가 되면 그건 개인기가 아니라 흐름이다. 수순은 이렇다. 누가 사라진다. 남은 사람이 그 사람을 안다고 믿었던 만큼 몰랐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빈자리를 사건이 아니라 대화로 채운다. 역에서, 장례식장에서, 세탁소에서.

남편이 사라지고, 돌아오고, 다시 나가고, 끝. 이 작품이 흐름을 그대로 따른 곳은 그 시작과 끝이다. 시작은 사라짐이다. 나가노의 고속버스 사고로 사키코의 남편 미츠루는 행방불명, 이츠키의 아내 아즈사는 사망. 3화에서 경찰이 사키코에게 전화해 남편은 사고 시각에 버스에 없었다고 알린다. 사라진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까지가 시작이다. 끝은 이름 붙이기를 거부하는 관계다. 마지막 회 부제가 「이름 없는 관계가 될 때까지」인데, 사키코가 이츠키에게 이혼을 결심한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 그 부제의 설명이다. 가족이나 부부라는 형태에 매달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사람하고만 있고 싶다고 한다. 이츠키는 인간관계만큼 되돌릴 수 없는 것도 없다고 받는다. 죽은 아즈사도 같은 회에서 고서점 주인에게 친구도 가족도 아닌, 이름 없는 관계의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앞의 두 작품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니 거기까지만 쓴다.
벗어난 곳은 둘이다. 하나는 포장이다. 앞의 두 작품은 상실을 상실로 내놓는다. 이 작품은 상실을 미스터리로 포장한다. 「제3금요일의 비밀」이라는 문구를 홍보 단계부터 내걸고, 1화 끝에 코인세탁소에서 당신 남편과 내 아내가 불륜이었다는 말을 던지고, 매회 끝에 다음 주를 기다리게 하는 장면을 놓는다. 8화 끝에서 사라진 사키코가 바닷가에서 모르는 남자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식이다. 금요일 밤 10시에 한 편씩 보는 사람을 다음 금요일까지 붙들어 두는 장치다. 이 포장이 득인지 실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포장을 뜯는 데 여섯 회가 걸렸고, 뜯고 나서야 안에 든 게 전작과 같은 물건이라는 걸 알았다.
다른 하나는 사라진 사람의 처리다. 「silent」의 남자는 들리지 않게 되어 떠났고, 「바다의 시작」의 여자는 죽어서 없다. 사라진 쪽에 이유가 있고, 남은 쪽은 그 이유를 받아들이는 일을 한다. 이 작품의 미츠루는 살아 있고, 1년 뒤에 제 발로 돌아오고, 7화에서 어릴 때부터 사람 관계를 끊고 사라지고 싶어지는 버릇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부모에게 아이는 필요 없었다는 말을 친척들 대화에서 들었고, 여덟 살에 처음 집을 나갔고, 사키코를 만나고 10년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집을 사고 여기서 평생 둘이, 더는 못 도망간다고 느낀 순간 다시 도망치고 싶어졌다고 한다. 사라진 사람에게 이유를 주되 그 이유가 동정을 사지 않게 쓴 것이 이 작품의 차이다. 7화가 나간 뒤 불륜보다 못됐다는 반응이 쏟아진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 말을 다 들은 사키코는 얼룩은 빼면 되고 자기는 얼룩 빼기가 특기라고 말하고, 더럽히기 전에 버리는 쪽으로 살아온 남자에게 그건 치사하다, 그쪽만, 하고 집을 나간다.
여기서 한 번 정색한다. 비밀을 가진 사람이 비밀을 가진 이유를 길게 설명하는 장면을 다 보고 나면 보통은 그 사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게 드라마의 관성인데, 이 작품은 그 설명을 끝까지 듣고 나서도 미츠루를 좋아하게 되지 않도록 써 놓았고, 그 대신 설명을 들은 사키코가 무엇을 하는지를 보게 만든다. 이해는 시키지 않는다. 다음 행동만 보여 준다.

흐름 속 위치를 정리하면 이렇다. 상실로 시작하고 대화로 메우고 이름을 안 붙이는 수순은 그대로다. 다른 점은 상실을 미스터리로 포장했다는 것, 그리고 사라진 사람을 돌아오게 해서 미움받게 했다는 것. 앞의 둘보다 보기 불편하고, 그래서 더 오래 보게 된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아마 누가 사라지면서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볼 것이다. 빨래는 계속 나오니까.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