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이런 엿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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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이 없는 손과 사진 한 장
기억을 잃은 사람이 맨 먼저 잃는 것은 무엇인가. 이 드라마의 첫 장면은 이름이라고 답하지 않는다. 손가락이라고 답한다.
여자가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뜬다. 시골 병원이다. 의사가 말한다. 해리성 기억상실이다. 길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신분증이 없었다. 찾아온 가족이 없다. 다친 정도가 심해 열 손가락의 지문이 사라졌다. 이름을 알 길이 없다. 퇴원하면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보호 시설로 보내진다고 한다.
여자는 벽에 머리를 박는다. 기억을 되찾으려는 동작이다. 기억은 돌아오지 않고 여자가 쓰러진다. 깨어나니 같은 병실 사람들이 말한다. 잘생긴 남자가 찾아왔다 갔다고. 여자가 기다린다. 들어온 남자는 허름하다. 남자가 말한다. 2년을 사귀었다. 결혼할 사이다. 같이 산다. 너는 엿공방에서 일한다. 나는 복싱 코치다. 여자가 증거를 내라고 한다. 남자가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꺼낸다. 둘이 같이 찍힌 사진이다. 나머지 사진은 잃어버린 전화기에 있다고 한다. 가족이나 친구와 통화하게 해 달라는 말에는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답한다. 여자에게 남은 사람이 이 남자 하나라는 뜻이다. 남자는 한 가지를 덧붙인다. 기억을 잃은 여자가 불편하지 않게 방을 따로 썼다고. 두 사람이 같이 산다는 말과 방이 따로라는 말이 한 입에서 나온다.
첫 장면의 사물은 셋이다. 지문이 없는 손가락, 폴라로이드 한 장, 잃어버렸다는 전화기. 손가락은 여자가 누구인지 말해 주지 못한다. 사진은 남자가 정한 여자를 말해 준다. 전화기는 없다. 없는 것이 가장 많은 말을 한다.
남자는 여자를 구진이라는 마을로 데려간다. 엿을 만드는 마을이다. 어떻게 만났느냐는 물음에 남자는 두꺼비에게서 구해 줬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진은 그럴듯하고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남자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여자는 서울의 검사다. 폭력 조직의 보스와 시장의 비리를 녹음한 사람이다. 남자는 그 조직 사람이다. 보스가 여자를 죽이고 처리하라고 시켰다. 남자는 여자를 알아보고 죽은 것으로 꾸몄다. 체육관의 관장이 남자에게 말한다. 여자에게 가장 안전한 자리는 네 옆이라고. 거짓말은 거기서 태어난다. 1회의 끝에서 여자는 남자가 정말 자기를 아는지 시험한다. 갑자기 입을 맞춘다. 남자의 반응을 본다.
그 사이에 열 회가 있다. 항구에서 불이 나고 여자는 물 위에서 그것을 보다가 기억을 되찾는다. 여자는 서울로 돌아가 검사로 보스를 잡는다. 보스는 남자의 할머니 집에서 남자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남자가 제 아들임을 알아본 뒤, 그 말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결혼식 전에 둘은 남자 어머니의 묘에 간다. 남자가 거기서 청혼한다. 여자가 받는다.
마지막 장면은 결혼식이다. 남자 집 앞마당이다. 마을 사람이 전부 와 있다. 비가 온다. 남자는 드라마 내내 비를 싫어한다고 말해 온 사람이다. 나쁜 일이 비와 함께 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는다. 비 속에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이 비 속으로 들어와 같이 춤을 춘다. 부케는 마을 의사에게 간다. 의사는 그것을 한 여자에게 건넨다. 둘이 사귄다는 것이 그렇게 알려진다.
그날 밤 여자는 마을 아주머니가 준 술을 꺼낸다. 첫날밤에 쓰라고 받은 술이다. 둘이 마신다. 남자가 먼저 쓰러져 잔다. 다음 날 아침 여자는 그 일로 남자에게 화를 낸다. 드라마는 이 일을 농담으로 둔다. 그다음이 끝이다. 여자가 구진에서 쌓은 것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남자와 개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는다. 개의 이름은 복이다. 마을 사람 모두가 반쯤 주인인 떠돌이 개다.
마지막 장면의 사물도 셋이다. 비, 술, 사진. 비는 남자가 피하던 것이고 이번에는 맞는다. 술은 마을 사람이 준 것이고 둘이 나눠 마신다. 사진은 여자가 찍는다. 첫 장면에서 여자가 받기만 했던 것들을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자가 고르고 꺼내고 찍는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사진이 하나씩 있다. 첫 장면의 사진은 남자가 들고 왔다. 둘이 찍혀 있고, 여자는 그 사진을 기억하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의 사진은 여자가 찍는다. 셋이 찍힌다. 여자는 이 사진의 앞뒤를 다 안다. 바뀐 것은 사진 속 수와 사진을 쥔 손이다.
안 바뀐 것도 있다. 장소다. 여자는 1회에 끌려오듯 구진에 왔고 12회에 제 발로 구진에 남는다. 남자도 한 가지는 그대로다. 1회의 남자는 여자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12회의 남자는 제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모른 채 서 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죽었다. 1회에는 여자가 모르는 사람이었고 12회에는 남자가 모르는 사람이다. 모르는 자리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갔다.
지문 이야기로 돌아간다. 1회에 여자는 지문이 없어서 누구인지 증명하지 못했다. 12회에 여자는 지문 없이 증명한다. 사진 속 자리로, 비 속에 서 있는 마을 사람들로. 내 생각에 이 드라마는 신분을 묻는 드라마다. 서류가 증명하는 신분과 옆에 선 사람들이 증명하는 신분. 처음에는 앞의 것이 없어서 뒤의 것을 지어냈고, 끝에는 뒤의 것이 진짜가 되어 앞의 것을 묻지 않는다.
남자는 끝까지 모른다. 사진을 본 사람이 왜 그렇게 끝났는지.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찍은 가족사진은 1회의 폴라로이드와 무엇이 다른가.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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