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이런 엿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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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남자친구 열두 회 관찰기
주말에 할 일이 없었다. 열두 회를 한 번에 풀어 놓은 드라마는 그런 주말에 틀게 된다. 다 보고 나니 메모가 남아서 회차대로 옮긴다.
1화
검사가 시골 병원에서 깨어난다.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고, 열 손가락 지문까지 없다. 거기에 복싱 코치가 나타나 남자친구라고 한다. 2년 사귀었고 결혼할 사이라고 한다. 여자는 당연히 안 믿는데, 첫 회가 끝나기 전에 남자가 고백하고 입을 맞춘다. 첫 회에 키스를 넣고 시작하겠다고 만든 쪽에서 미리 말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양말을 개다가 손을 멈췄다(짝을 어디 뒀는지 아직 모른다).
2~3화
여자는 마을을 의심한다. 엿 공방이 늘어선 시골, 자기 옷장 속 옷, 옆집 사람들까지 전부 처음 본다. 남자는 기억을 되살려 주겠다며 데이트를 시키는데, 그 사이 서울에서는 조직 보스가 죽은 줄 알았던 검사의 일을 듣기 시작한다. 로코 두 회에 범죄 드라마 한 숟갈이 들어가는 배합이다. 밥 먹으면서 봤다. 반찬이 남았다.
4화
여자가 서울에 간다. 자기가 누구였는지 마주하는 회차고, 남자의 과거도 여기서 풀린다. 남자는 보스가 검사를 죽이라고 보낸 부하였다. 감시 카메라가 없는 자리에서 여자를 빼내 체육관 관장에게 맡기고, 차를 터뜨리고, 임무를 끝냈다고 보고했다. 지문이 없는 여자를 시설로 보내지 않으려면 가족이나 약혼자여야 한다는 관장의 말에 남자친구가 된 것이다. 거짓말의 출발이 생각보다 행정적이라서 좋았다. 옛 부하가 체육관에 찾아와 그 여자 살린 거 맞느냐고 묻는 장면도 이 회차다. 설거지는 미뤘다.
6~7화
작은 오해가 마을에 소문으로 번지고, 여자가 남자에게 진심을 묻는다. 7화에서 여자가 사라지자 마을 사람이 전부 나서서 찾는다. 여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한밤에 남자를 찾아와 의심하는 눈으로 여자의 과거를 묻는다. 요즘 시골 로코라면 마을 사람들이 떼로 나와 주인공을 찾는 회차가 꼭 한 번은 있고, 이 드라마도 그 수순을 밟는다. 밟는 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패턴이 중반에 되풀이된다는 말은 맞다. 나는 그 틈에 커피를 내리러 갔다 왔다.
8~9화
보스가 남자의 속셈을 알아챈다. 남자는 여자를 일본으로 밀항시키려 배를 타러 가고, 거기서 폭발이 난다. 그 순간 여자의 기억이 전부 돌아온다.
여기서 정색한다. 남자가 여자를 살리려고 한 거짓말은 여자가 기억을 잃은 동안에만 성립하는 거짓말이었고, 기억이 돌아오는 순간 그 거짓말은 여자를 지킨 울타리에서 여자에게 설명해야 할 빚으로 바뀌는데, 드라마는 그 빚 앞에서 흔한 이별 몇 회를 끼워 넣는 대신 여자를 곧바로 일터로 보낸다. 여자는 검사로 돌아간다. 보스를 잡으러 간다.
10~11화
여자는 서울에서 체포에 집중하고, 남자는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 고민한다. 보스가 여자를 바로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이쯤 정리된다. 여자가 숨겨 둔 뇌물 증거가 어디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11화는 마을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회차인데, 보스가 나타나 뒤집는다. 출생의 비밀을 2026년 로코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몰랐다고 쓰지만 사실 반쯤 예상했다).
12화
남자가 할머니를 구하러 보스와 맞선다. 보스는 호송차에서 달아난 뒤 할머니 집의 낡은 앨범에서 남자가 자기 아들임을 알았다. 남자를 인질로 잡고 「이제 이 악연을 끊자」고 말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남자는 모른다. 그다음은 마당 청혼이다. 여자가 「나 벌써 대답한 거 같은데」라고 받는다. 비를 싫어하던 남자가 비 오는 날 마당에서 결혼식을 한다. 열한 회 동안 비를 피하던 사람이 열두 회에 비를 맞는다는 건 쓰는 쪽도 보는 쪽도 아는 수순이다. 그래도 맞을 때는 맞는다.
총평
로코로 시작해 누아르로 갔다가 다시 로코로 돌아온다. 만든 쪽에서도 그렇게 설명했고, 보고 나면 그 설명이 정확하다는 걸 알게 된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 길다는 것이다. 열 회면 됐을 이야기를 열두 회에 담았다는 말에 나도 한 표다. 어린 시절 첫 만남 회상이 몇 번씩 되감기는 것도 그 두 회를 채우는 데 쓰였을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봤다. 중간에 끄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내 경우에는 주말이 길었고, 남자가 마당을 장미로 채우는 장면쯤에서 이미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남자친구라고 우기고, 들키고, 결혼하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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