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이런 엿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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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셋 겹치면 누가 뜻을 보는가
마지막 회에 가서 드라마가 꺼내 놓는 사실은 하나다. 남자를 평생 괴롭혀 온 조직 보스가 남자의 친아버지였다. 나는 이 장면에서 잠깐 멈췄다. 억지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고, 조금 뒤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억지라는 느낌은 어디서 오는가.
확률의 착각이라는 것
사람은 우연을 잘 못 센다. 드문 일이 일어나면 이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놀란다. 그런데 우리가 셈하는 것은 「바로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이고,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그런 종류의 일 중 아무것이나」다. 둘은 크기가 전혀 다르다.
일상의 예 셋. 서른 명쯤 모인 반에서 생일이 같은 두 사람이 나올 확률은 어림잡아 열에 일곱이다. 내 생일과 같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그보다 훨씬 작다. 「누군가와 누군가」는 「나와 누군가」보다 쉽게 일어난다. 둘째, 낯선 도시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운명 같다. 그러나 내가 아는 사람은 수백 명이고, 내가 다니는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 셋째, 꿈이 맞았다고 느끼는 날이 있다. 맞지 않은 꿈은 아침에 잊으니 세지 않는다. 맞은 꿈만 남는다.
이름을 붙이자면 확률의 착각이다. 일어난 뒤에 돌아보면 그 일만 보이고, 일어날 수 있었던 다른 수많은 일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어난 일이 유독 드물고 유독 뜻있어 보인다. 틀릴 수 있지만, 나는 이 드라마의 결말을 이 착각으로 읽어 보려 한다.
결말에 대 보기
드라마는 처음부터 우연을 쌓는다. 조직 보스가 검사를 죽이라고 보낸 부하가, 그 검사의 첫사랑이었다. 검사가 연인이라고 믿었던 서울의 남자는 시장 쪽에서 검찰 안에 심어 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스가 남자의 아버지였다. 하나씩 보면 각각 작은 확률이고, 셋을 곱하면 아주 작은 수가 된다. 억지라는 말은 그 곱셈에서 나온다.
그런데 드라마가 깔아 둔 사정을 다시 보면 이 셋은 서로 독립이 아니다. 보스는 젊은 시절 반칙으로 복싱 체육관에서 쫓겨난 선수였다. 그를 쫓아낸 관장이 남자를 길렀다. 보스는 관장이 아끼는 제자에게 열등감으로 접근했다. 보스의 옛 연인은 남자의 어머니였고, 그 어머니와 어린 남자를 품어 준 사람이 엿 공방의 할머니다. 다 한 체육관, 한 마을, 한 세대 안의 이야기다. 서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훨씬 자주 겹친다. 서른 명 안에서 생일 같은 둘이 쉽게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죽이러 간 사람이 첫사랑」은 드문 일이 아니라, 이렇게 좁은 세계에서는 차라리 일어나기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내 풀이다.
개념이 들어맞지 않는 곳도 있다. 드라마 속 우연은 주사위가 던진 것이 아니라 쓴 사람이 고른 것이다. 확률은 아무도 고르지 않은 세계에서만 셈이 된다. 작가가 고른 우연에 확률을 대는 것은 바둑 기보에 날씨 예보를 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억지라는 말도 결국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가 된다. 나는 그 점을 인정한다. 이 출생의 비밀을 보고 화가 난 사람에게 생일 문제를 설명해도 화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결말 장면으로 돌아간다. 교도소로 가던 차에서 달아난 보스가 할머니 집에서 낡은 앨범을 본다. 거기서 자기가 남자의 아버지임을 안다. 그는 남자를 인질로 잡고 「이제 이 악연을 끊자」고 말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남자는 끝까지 그 사실을 모른다.
여기서 내가 멈춘 이유를 알았다. 같은 사진을 두 사람이 볼 수 있었다. 보스에게 그 사진은 평생을 뒤집는 뜻이었다. 남자에게 그 사진은, 보았다 해도, 어머니의 옛 사진이었을 것이다. 우주는 사진에 뜻을 넣지 않는다. 뜻은 보는 사람이 넣는다. 보스는 뜻을 보았고 그 뜻에 짓눌렸다. 남자는 뜻을 모른 채로 할머니를 구하고, 마당에서 청혼하고, 비 오는 날 결혼식을 올린다. 비를 싫어하던 사람이 그날을 가장 행복한 날로 바꾼다. 그것도 뜻을 넣는 일이다. 비에는 아무 뜻이 없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우연이 많은 드라마가 아니라, 같은 우연에 사람마다 다른 뜻을 넣는 드라마라고 하면 맞을까. 보스는 악연이라 읽고 끊었다. 여자는 기억을 되찾고도 그 자리에 남는 쪽으로 읽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읽지 못했고, 그래서 가장 가벼운 사람으로 마당에 서 있다. 셋 중 누가 옳은지 확률은 말해 주지 않는다. 확률은 그런 것을 묻지 않는다.
이 드라마를 볼까 말까 묻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겠다. 우연이 많다. 그 우연에 화가 날 사람과, 그 우연에 사람들이 각자 다른 뜻을 넣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뒤쪽이었다. 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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