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이런 엿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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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약속에 피가 묻어도 괜찮은가

삐딱하게보기· 2026. 10. 25.· 2,267자

결론부터 말하겠다. 이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의 약속을 절반만 지켰고, 나는 지키지 않은 절반 쪽에 서서 박수를 쳤다.

약속

모름지기 로맨틱 코미디란 관객과 두 가지를 약속하는 장르다. 하나, 두 사람은 끝에 가서 반드시 맺어진다. 둘, 그 길에서 아무도 진짜로 다치지 않는다. 오해는 풀리고 경쟁자는 물러나고 비밀은 들춰져도 웃음으로 끝난다. 그래서 우리는 안심하고 본다. 결말을 알면서도 보는 것이 이 장르의 쾌락이다. 스릴러가 모르는 데서 재미를 꺼낸다면 로맨틱 코미디는 아는 데서 꺼낸다. 그래서 이 장르를 유치하다고 하는 사람은 많고, 나는 그 유치함을 변호하러 여기 앉았다.

이 드라마는 약속을 첫 회부터 큰 소리로 한다. 기억을 잃고 병원에서 깨어난 검사 앞에 복싱 코치가 나타나 남자친구라 한다. 2년을 사귀었고 결혼을 약속했고 같이 산다고 한다. 거짓말이다. 그러나 장르는 벌써 알고 있다. 거짓말로 시작한 연인은 끝에 가서 진짜가 된다는 것을. 첫 회가 끝나기 전에 남자는 고백한다. 「살면서 좋아해 본 여자가 너 하나라 내가 방법을 잘 몰라.」 그리고 입을 맞춘다. 첫 회에 입을 맞추는 드라마는 관객에게 미리 영수증을 끊어 주는 것이다. 돈은 받았으니 물건은 꼭 드리겠다는.

이런 엿 같은 사랑 스틸컷

이행

첫째 항목, 결합. 이것은 넉넉히 지켰다. 어느 비 오는 날, 서울로 가던 여자가 발길을 돌려 남자의 뒤로 와 우산을 씌우고 입을 맞춘다. 보통은 남자가 하는 동작을 여자가 한다. 여자가 분홍 장미를 좋아한다고 하자 남자는 마당을 장미로 덮는다. 오빠라고 불러 달라 조르고, 틈만 나면 예쁘다고 말한다. 유치하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유치함에 약하다. 과하다고 욕먹는 것은 대개 작정하고 과하게 만든 것이고, 작정하고 만든 과함에는 만든 이의 체온이 남는다. 마당을 장미로 채우려면 누군가 새벽에 꽃을 사러 가야 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꽃집에 전화를 돌리는 미술팀의 손을 상상했다. 상상이다. 그러나 그 손이 없으면 장면도 없다.

기억이 돌아온 뒤에도 여자는 남자를 떠나지 않는다. 사건이 끝나고 남자가 마당에서 청혼하자 여자는 「나 벌써 대답한 거 같은데」라고 받는다. 비를 싫어하던 남자는 비 오는 날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결합의 약속은 이렇게 끝까지 성실하게 이행된다. 나라면 이렇게 부끄럼 없이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질투의 정확한 이름이다.

이런 엿 같은 사랑 포스터

배반

둘째 항목, 아무도 진짜로 다치지 않는다. 이것을 드라마는 어겼다. 엿 공방과 복싱 체육관이 있는 마을에서 웃고 있으면 화면은 느닷없이 조직 보스의 세계로 건너간다. 살인 지시가 내려지고 사람이 고문당하고 총이 나온다. 여자가 열 손가락의 지문을 잃은 것도 고문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를 살리기 위해 한 일은 감시 카메라의 사각에서 여자를 빼내고 차를 폭파시켜 보스에게 임무를 마쳤다고 보고한 것이다. 여자를 일본으로 몰래 보내려고 배를 타러 간 밤에는 배가 터진다. 여자의 기억은 그 폭발과 함께 돌아온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라면 비 오는 날 우산 아래서 돌아왔을 기억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거짓말 치고는 피 냄새가 너무 짙다. 많은 사람이 이 지점을 욕했다. 달콤한 것과 피비린 것을 한 그릇에 담았다고, 가벼워야 할 장르를 스스로 망쳤다고.

그리고 마지막 두 회. 보스는 남자가 제 친아들임을 할머니 집의 낡은 앨범에서 알게 된다. 그는 남자를 인질로 잡은 채 「이제 이 악연을 끊자」고 말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남자는 그 사실을 끝내 모른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가장 낡은 장치가 가장 어두운 방식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마지막 회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이 배반을 변호한다. 약속은 깨질 수 있어야 약속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을 것이 뻔한 세계에서 두 사람의 결합은 당연한 일이지 쟁취한 일이 아니다. 이 드라마의 마을이 그토록 따뜻하게 보이는 것은 그 바깥에 진짜로 사람을 죽이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고, 그 세계에서 온 남자가 매번 돌아올 곳을 고르기 때문이다. 결혼식의 비가 축복으로 보이려면 그 전에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 했다. 보스의 죽음은 장르가 치른 값이다. 그 값을 치르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를 나는 더 많이 보았고, 더 빨리 잊었다.

한계는 인정한다. 피를 들이는 데 열두 회는 길었다. 중반에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되풀이하고, 어린 두 사람의 첫 만남은 회상으로 몇 번씩 되감긴다. 값을 치르는 것과 값을 질질 끄는 것은 다르다.

그래도 볼까 말까 묻는다면 보라고 하겠다. 다만 로맨틱 코미디를 보러 들어갔다가 피 묻은 로맨틱 코미디를 보고 나오게 될 것이다. 사탕이 달다는 것은 혀가 알고, 사탕이 귀하다는 것은 빼앗겨 본 손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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