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92
원초적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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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열쇠고리였다
오클랜드의 어느 건물 4층. 한 여자가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 있다. 맞은편의 남자가 총을 겨누고 손을 빼라고 한다. 여자는 자동응답기에 남은 메시지를 듣고 왔다고, 거스는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남자가 쏜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열쇠고리였다.
이 영화를 두고 사람들이 묻는 것은 하나다. 범인이 캐서린인가, 베스인가. 나는 그 질문이 베스를 두 번 죽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 답장이 올 수 없는 사람에게.
베스에게
당신은 이 영화에서 네 번 말한다. 아직 그가 그립다고. 당신이 안은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고. 그의 상담 기록을 넘긴 건 그가 경찰에서 쫓겨나지 않게 하려던 것이었다고. 그리고 마지막에, 사랑한다고. 네 번 다 닉에게 한 말이고, 네 번 다 닉은 제대로 듣지 않았다.
영화는 당신을 두 가지로 쓴다. 처음에는 닉을 설명하는 사람으로. 그가 술과 약을 끊었다는 것, 그 뒤로 잠자리가 엉망이라는 것을 관객은 당신의 상담실에서 듣는다. 나중에는 캐서린의 반대편에 세울 사람으로. 금발 가발과 비옷과 피 묻은 송곳이 계단참에서 나오고, 당신 집 책장 뒤에서 38구경 권총이 나오고, 서랍에서 캐서린의 사진이 나온다. 당신은 그때 이미 말을 할 수 없다.
대학 시절 이야기를 생각한다. 캐서린은 닉에게 리사라는 여자가 자기를 따라다녔고 머리 모양까지 따라 했다고 말했다. 당신은 닉에게 한 번 잤을 뿐인데 그녀가 집착했다고 말했다. 같은 이야기를 둘이 반대로 했다. 영화는 어느 쪽이 맞는지 보여 주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은 끝까지 살아서 말하고, 한 사람은 4층에서 멈춘다. 살아남은 쪽의 말이 기록이 된다. 그것은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다.
당신이 처음 캐서린에 대해 한 말을 기억한다. 거의 모르는 사이였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름이 돋았다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과 어긋나는 말이다. 사람들은 그 어긋남을 당신의 거짓말로 읽는다. 나는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옛 이름을 버리고 결혼으로 성을 바꾼 사람이, 그 이름으로 살던 시절을 캐묻는 남자 앞에서 할 수 있는 첫 대답이 그것 말고 무엇이었을까.
당신 집에서 나온 권총이 닐슨을 쏜 총과 같다고 했다. 그 총을 거기 둔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은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405호는 없는 방이었고, 거스가 만나러 간 옛 룸메이트는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었고, 당신과 거스의 자동응답기에는 메시지가 없었다. 함정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았다. 그런데 그 함정에 당신이 걸려든 쪽인지 판 쪽인지는 묻지 않고 끝났다. 닉은 범인을 잡았다고 축하를 받았다.
해설
통념부터 적는다. 이 영화는 범인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 열린 결말이고, 마지막 침대 밑의 송곳이 캐서린을 가리킨다는 것이 가장 널리 퍼진 읽기다. 그 읽기에서 베스는 누명을 쓴 사람이 된다. 그 다음으로 흔한 읽기는 캐서린이 송곳, 베스가 총, 둘 다 범인이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베스는 캐서린의 짝으로만 불린다.
나는 다르게 보았다. 베스가 범인인가 아닌가보다 먼저 물을 것이 있다. 이 영화는 왜 두 번째 여자가 필요했는가. 캐서린 한 사람만 있으면 마지막 송곳은 답이 된다. 답이 되면 영화는 수수께끼를 잃는다. 수수께끼를 살리려면 캐서린과 같은 머리색을 할 수 있고, 같은 대학을 다녔고, 같은 남자와 잤고, 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 베스는 그 조건을 채우려고 놓인 사람이다. 사람이라기보다 조건이다.
조건으로 쓰이는 사람의 장면을 세어 본다. 상담실에서 닉의 상태를 대신 읊는다. 닉이 거칠게 덮칠 때 그만하라고 말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닉이 닐슨을 쏜 혐의로 조사받을 때 밤 열 시에 그를 봤고 멀쩡했다고 증언한다. 닉은 다음 날 어제 한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사과하고, 베스는 진심이었을 거라고, 자기는 감당할 수 있다고 답한다. 보호하고, 증언하고, 감당하는 일. 이 영화에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베스뿐이다. 거스조차 닉에게 화를 낸다.
그 자리에서 보면 이야기는 이렇게 바뀐다. 한 여자가 대학에서 한 번 잔 상대에게 시달렸다. 이름을 바꿨다. 전남편은 죽었고 그 죽음도 살인이었다. 사귀던 형사는 관광객을 쏜 적이 있는 사람이고, 그가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상담 기록을 감찰에 넘겼다. 그 일로 형사에게 열 번 열다섯 번 잔 게 전부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메시지 하나를 듣고 건물에 갔다가, 그 형사의 총에 맞았다. 이렇게 적으면 범인 찾기 영화가 아니다. 한 사람이 지워지는 영화다.
캐서린이 소설을 끝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닉이 결말을 묻자 짧게 답한다.
여자가 그를 죽인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 캐서린은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 형사는 살아 있다. 죽은 것은 형사의 파트너와 형사의 옛 애인이다. 소설이 현실을 미리 적었다면 적은 대로 되지 않았다. 되지 않은 자리에 베스가 있다.
내 읽기도 의심해 본다. 베스를 누명 쓴 사람으로 세우는 것은 결국 그녀에게 자리 하나를 다시 정해 주는 일이다. 피해자라는 자리. 영화가 범인 후보라는 자리를 줬듯이. 그녀가 정말로 닐슨을 쐈을 가능성을 나는 지울 수 없다. 권총은 그녀의 집에 있었다. 다만 집에 있는 총과 손에 든 총은 다르다. 이 영화는 그 차이를 묻지 않았고, 나는 묻고 싶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닉과 캐서린은 침대에서 앞날을 얘기한다. 아이 얘기가 나오고, 캐서린은 아이는 싫다고 한다. 카메라가 침대 옆 바닥으로 내려간다. 송곳이 있다. 사람들은 거기서 캐서린을 본다.
나는 거기서 4층 복도를 본다. 주머니에서 열쇠고리를 꺼내지 못한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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