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92
원초적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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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다섯 건과 답변서 한 통
서른한 번. 첫 장면에서 침대에 묶인 남자가 송곳에 찔린 횟수라 하겠다. 그 뒤 두 시간 남짓, 나는 이 숫자보다 많은 수순을 셌다. 아래에 민원으로 올린다. 담당 부서가 어디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민원 1 · 형사의 과거 적재량 초과
닉 커런 형사의 이력을 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수사 중에 관광객 둘을 쏜 적이 있다. 그래서 별명이 '슈터'다. 감찰 조사를 받는 중이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술과 약을 끊은 지 석 달이다. 그리고 경찰 상담사와 사귀다 헤어졌다. 한 사람에게 이만큼을 실으면 차축이 휘는 법이다. 이것은 설계 오류가 아니라 과적이다. 시정 요청. 어두운 과거는 1인 1건으로 제한해 주시기 바란다. 남는 과거는 거스 형사에게 나눠 주셔도 좋겠다.
민원 2 · 취조실의 용도 변경
캐서린 트라멜은 변호사 없이 제 발로 경찰서에 온다. 숨길 게 없다고 한다. 형사들 앞에서 담배를 끄지 않고, 외투를 벗으며 흰 실크 스카프는 늘 좋아했다고 한다. 다리를 꼬았다 푼다. 그러고는 거짓말탐지기에 앉아 아무 반응도 내지 않는다. 검사관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거나 이런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한다. 취조실은 형사가 쓰는 방으로 알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용의자가 쓰는 방이 되었던 것이다. 시정 요청. 용도 변경 신고를 미리 하셨는지 확인 바란다.
덧붙여, 취조 전에 대학에서 온 전문가가 설명하고 상담사가 한 줄로 옮긴 대목이 있다. 그녀는 자기 책대로 사람을 죽일 만큼 멍청하겠느냐고 말할 것이라고. 캐서린은 들어와서 정확히 그렇게 말한다. 예고편이 본편보다 먼저 나오는 셈인데, 이것은 민원이라기보다 감탄에 가깝다.
민원 3 · 수사 방식이 독서임
이 영화에서 단서는 현장이 아니라 책에서 나온다. 캐서린의 전작에는 록스타가 흰 스카프로 묶인 채 송곳에 찔려 죽는다. 다른 책은 부모를 죽이고 사고로 꾸미는 소년 이야기인데, 캐서린의 부모는 배가 터져 죽었고 보험금이 5백만 달러였다. 새 책 제목은 '슈터'이고, 닉이 원고에서 읽은 것은 계단을 뛰어오르는 형사와 엘리베이터에 다리를 걸친 파트너의 시체다. 그리고 거스가 그 모양으로 죽는다. 형사가 하는 일은 다음 장을 미리 읽는 것뿐이다. 시정 요청. 형사에게 독서 외의 업무를 배정해 주시기 바란다. 아니면 직함을 편집자로 바꾸시든지.
민원 4 · 언덕길 자동차 2회 사용
샌프란시스코가 배경이면 언덕에서 차가 날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모양이다. 닉은 캐서린의 검은 스포츠카를 마린 카운티의 굽은 길에서 쫓다가 관광버스와 부딪힐 뻔한다. 나중에는 불을 끈 검은 차가 닉을 덮치고, 닉이 그 차를 노스비치 언덕으로 쫓고, 차는 공사장에 뒤집힌다. 운전자는 록시였다. 목이 부러졌다. 차는 캐서린 명의였다. 한 편에 언덕길 추격이 두 번이면 한 번은 반납하셔야 한다. 시정 요청. 둘 중 하나를 걸어서 쫓는 장면으로 교체 바란다. 그 도시는 걷기에도 좋은 곳이라 들었다.
민원 5 · 열린 결말의 문단속
사건은 다른 사람 몫으로 종결되고, 닉은 축하를 받는다. 캐서린이 그의 집에 온다. 둘은 침대에서 앞날을 얘기한다.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자고 닉이 말하고, 캐서린은 아이는 싫다고 한다. 그럼 아이는 빼자고 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침대 옆 바닥으로 내려간다. 송곳이 있다. 이것을 열린 결말이라 부르시는 분들이 많다. 문을 열어 두셨다면서 열쇠를 문 앞 바닥에 놓아 두신 것이다. 시정 요청. 열어 두실 거면 끝까지 열어 두시고, 닫으실 거면 닫아 주시기 바란다. 반쯤 열린 문이 밤에 제일 무섭다.
그래도 구수한 것
거스 모랜 형사다. 컨트리 바에서 취해 있다가 식당에서 깨고, 닉에게 그 관광객들 때문에 아직도 송곳 쪽으로 기어들어 가느냐고 화를 낸다. 감찰 닐슨의 대여 금고에서 석 달 전에 넣고 한 푼도 안 쓴 5만 달러가 나왔다고 알려 주는 것도 거스다. 그리고 오클랜드 건물에서 405호에 혼자 올라가겠다고 한다. 혼자 올라가겠다는 파트너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이 장르의 수순이고, 거스는 수순을 어기지 않았다. 405호는 없는 방이었다. 투박하고, 자꾸 화를 내고, 결국 수순대로 간 사람. 이 영화에서 제일 사람 같았다.
답변서
귀하의 민원에 감사드린다. 본 작품은 1992년에 제작된 바, 귀하께서 수순이라 부르신 것들은 당시에는 수순이 아니라 발명에 가까웠음을 알려 드린다. 취조실의 다리 꼬기는 그 뒤 숱한 작품이 베껴 가면서 뻔해진 것이지 본 작품이 뻔한 것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언덕길 추격 2회는 샌프란시스코시의 지형 탓이며, 형사의 과거 적재량에 관하여는 담당 각본가가 일언반구 해명이 없었음을 알린다. 침대 밑 송곳에 관하여는, 귀하께서 무서우셨다면 본 작품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본다. 아무튼. 이상.
추신. 서른한 번을 직접 세신 분은 없을 것이다. 나도 경찰이 센 숫자를 받아 적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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