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94
사탄 탱고
작품 페이지에서 댓글 반응 보기 →
받아쓰기로 먹고사는 동네
결론부터 말할게요. 일곱 시간 넘는 영화에서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둘이었어요. 끝 무렵에 나오는 서기 둘. 한 사람이 읽고 한 사람이 타자기를 치는데, 그게 이 영화에서 본 노동 중에 제일 노동 같았어요.
영화 얘기부터 해야겠죠. 헝가리의 집단농장이 망한 자리에 남은 사람들 이야기예요. 1994년 작품이고 흑백이고, 상영 시간이 439분. 샷이 150개 남짓이라고 하니까 한 컷에 평균 3분꼴이죠. 올 9월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봉했고, 중간에 두 번 쉬면서 세 토막으로 틀더라고요. 그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비 맞고 걷고, 술 마시고, 기다려요. 그래서 나는 거꾸로 봤어요. 그 안에서 누가 뭘로 먹고사나.
처음 여덟 분은 소예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농장 마당을 소들이 어슬렁거려요. 진창에 발 담근 소, 카메라 쪽으로 걸어오는 소. 소를 치는 사람은 안 나와요. 이 농장에서 마지막으로 일한 게 저 소들인 것 같더라고요. 그다음에 나오는 사람들은 일을 안 해요. 돈 얘기만 해요.
그 돈이 뭐냐면, 농장에서 함께 일해 번 돈이에요. 원작 소설엔 여덟 달치 품삯이라고 적혀 있어요. 슈미트가 그 돈을 들고 크라네르하고 둘이 그날 밤에 뜰 작정이었는데, 슈미트 부인하고 같이 있다가 그걸 엿들은 후터키가 끼어들어서 셋이 나누기로 해요. 여덟 달 일한 돈을 이렇게 나눠요. 일한 사람이 몇인데.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는 다들 아시죠. 죽었다던 이리미아시가 돌아와요. 아이 장례식에서 연설을 해요. 아이가 죽은 건 당신들 탓이라고, 새로 농장을 시작하자고, 그런데 자본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돈을 내요. 여덟 달 품삯이 연설 한 번에 넘어가요. 그러고 집을 부수고 노래하면서 떠나고요.
그런데 이리미아시도 일하는 사람이에요. 이게 이 영화가 좀 다른 데예요. 두 번째 장에서 그 사람은 페트리나하고 경찰 건물에 불려 가요. 제복 입은 사람이 질서와 자유에 대해 한참 늘어놓고요. 사람들은 자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려워한다, 그런 말. 그러고 나서 둘은 그 사람 밑에서 일하게 돼요. 이리미아시가 마을에서 한 일은 다 그 일이에요. 사람들을 모으고, 돈을 걷고, 사람들 하나하나를 적어서 보고서를 쓰는 일. 술집에 앉아서 페트리나한테 받아 적게 하는 장면도 있어요. 그 보고서가 영화 끝에 서기 둘 앞에 가요.
여기서 밥 얘기 하나. 이리미아시하고 페트리나가 술집에서 콩 수프를 시켜요. 페트리나가 햄 넣어서, 라고 덧붙여요. 영화 내내 뒤만 따라다니던 사람이 거기서만 또박또박 말해요. 일하는 사람이 밥에 대해서 제일 또박또박해지는 거, 그거 맞아요.
서기 장면으로 가요. 둘이 앉아서 한 사람이 이리미아시가 손으로 쓴 보고서를 읽어요. 험한 말이 많아요. 다른 사람이 그걸 공문서 말로 바꿔서 타자기로 쳐요. 욕을 조금 덜 욕 같게 다듬는 거죠. 두 사람은 그걸 무슨 큰일처럼 하지 않아요. 그냥 오늘 할 일이에요. 다 치고 나면 서류를 넣고 서류함을 닫아요. 그 안에 마을 사람들 전부가 들어가요. 나는 그 장면이 영화에서 제일 무서웠어요. 험하지 않아서요. 일은 일이다, 그 얼굴로 사람들 살림을 서류 몇 장으로 만들어요.
그럴듯한 데는 거기예요. 다듬는 사람들 얼굴이 진짜 사무실 사람 얼굴이에요. 아닌 데도 있어요. 이리미아시가 보고서를 그렇게 꼼꼼하게 쓸 사람으로 보이진 않더라고요. 비 오는 길을 그렇게 걸어 다니면서 언제 썼나. 글쎄, 그건 소설 쪽 사정일 수도 있어요.
의사 얘기도 해야 해요. 그 사람 일은 창가에 앉아 밖을 보고 공책에 적는 거예요. 사람마다 공책 한 권. 후터키는 뭔가를 두려워한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런 걸 적어요. 창밖 풍경을 그림으로도 그려서 날짜 다른 석 장을 비교해요. 그게 의사 일이냐 하면 아니죠. 환자를 보는 장면은 없어요. 술을 사러 나갔다가 비에 넘어지고, 병원에 열사흘 있다 와서는 크라네르 부인이 또 안 왔다고 적어요. 받아쓰기로 하루를 채우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동네에서 그나마 꾸준히 뭔가를 하는 사람이 이 사람이에요. 그게 좀 서글프더라고요.
마차꾼 켈레멘은 일하는 사람 맞아요. 비 맞고 쓰러진 의사를 마차에 실어다 집에 데려다 줘요. 이리미아시 봤다는 소식도 그 사람이 가져오죠. 그런데 술집에서 그 얘기를 하는데 아무도 안 들어요. 터벅터벅 걸어왔다고, 걸었다고, 또 걸었다고, 같은 말을 되풀이해요. 소식 전하는 게 일인 사람이 소식을 전하는데 듣는 사람이 없어요. 그것도 일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후터키. 트럭에 실려 도시까지 가서 사람들이 천 포린트씩 받고 각자 다른 마을로 보내질 때, 후터키는 자기는 경비 일 자리를 찾겠다고 해요. 천 포린트 받고 혼자 가요. 메시아 따라서 집까지 부순 사람이 결국 고르는 게 야간 경비예요. 나는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람 같은 선택이었어요. 농장이 망했으면 다음 일을 찾는 거지, 다른 뭐가 있나.
천 포린트가 그때 헝가리에서 얼마짜리인지는 나도 몰라요. 그런데 영화 안에서 그 돈의 자리는 분명해요. 여덟 달 품삯을 냈고, 돌려받은 게 그거예요. 연설 값이죠.
볼까 말까 묻는 분께는 이렇게 말해요. 일곱 시간 동안 사건은 별로 없어요. 그런데 누가 밥값을 어떻게 버나 하는 눈으로 보면 비는 데가 별로 없어요. 다들 뭔가를 하고 있어요. 적고, 걷고, 따르고, 타자 치고. 그걸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