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001
브리짓 존스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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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한마디 없이 뉴욕까지 다녀오신 분께
이분께 먼저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이분 이야기를 멋대로 하는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계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서른둘의 브리짓이 새해 첫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브리짓이고, 출판사 상사 다니엘과 변호사 마크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해가 줄거리예요. 많은 분들이 마크를 '처음엔 재수 없고 나중엔 멋있어지는 남자'로 보실 거예요. 그런데요,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이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자기 사정을 설명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오늘은 이분, 마크 다아시를 읽어 보려고 합니다.

이분의 행동을 한번 볼게요. 새해 첫날, 브리짓의 어머니가 해마다 여는 칠면조 카레 뷔페에 이분은 순록이 그려진 스웨터를 입고 오십니다. 어머니가 바로 전날 주신 옷이에요. 변호사로 일하는 어른이 그 옷을 입고 왔다는 건, 입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머니를 거절하지 못해서였을 거예요. 그 자리에서 어머니가 브리짓을 소개하려 하자 이분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소개는 필요 없다고, 특히 말을 가리지 못하고 술을 물처럼 마시고 담배를 굴뚝처럼 피우며 제 어머니 옷을 입은 노처녀는 싫다고요. 브리짓이 그 말을 다 듣고 있었습니다. 이건 분명히 짚고 가야 해요. 사정이 있다고 해서 그 말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사람 바로 옆에서 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은 그 자체로 상처예요.
그런데 이분이 왜 그러셨을까요. 영화는 이분의 사정을 한참 뒤에야 알려 줍니다. 이분은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 결혼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영화 후반에 브리짓의 어머니 입을 통해서야 나옵니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다니엘이 이분의 아내와 함께 있는 걸 이분이 직접 보셨다는 거예요. 아마 그 뷔페에 오실 때 이분 마음은 '또 누가 나를 짝지어 주려 하는구나' 하는 피로로 가득했을 거예요. 그 피로가 가장 만만한 사람, 어머니 앞에서 거친 말로 터져 나왔던 것 같아요. 이건 이분이 못돼서가 아니에요. 아직 아무에게도 그 일을 말하지 못한 사람이, 말 대신 가시를 내밀었다는 뜻입니다.
이분이 말을 아끼는 사람이라는 건 다른 장면에서도 보여요. 브리짓이 토끼 분장을 하고 혼자 나타난 그 정원 파티에서요. 다니엘은 일이 있다며 런던에 남았고, 브리짓은 파티 주제가 바뀐 줄도 모른 채 왔어요. 그 자리에서 다니엘이 브리짓에게 어울리는 남자냐는 말이 나오자 이분은 딱 한마디만 하십니다. 절대 아니라고요. 망설임 없이요. 그런데 그 말에는 왜 아닌지가 빠져 있어요. 그래서 브리짓은 그 말을 다니엘에 대한 반감으로, 어쩌면 자기에 대한 반감으로 듣습니다. 이분은 브리짓을 지키려고 한 말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사정을 뺀 단호한 말은 듣는 사람에게 그냥 차가운 말로 남아요. 이분이 참 안타까운 지점이에요.
이분이 들은 말도 한번 볼게요. 다니엘은 브리짓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마크가 예전에 자기 약혼녀를 가로챘다고요. 사실은 정반대였는데 브리짓은 그 말을 믿어요. 책 출간 기념회에서 다니엘이 브리짓 곁에 바짝 붙어 있을 때, 이분은 동료 나타샤를 브리짓에게 소개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세요. 브리짓의 친구들까지 '마크가 다니엘의 약혼녀와 잤다'고 믿은 채로 영화의 절반이 흘러갑니다. 이분은 그 말이 돌아다니는 걸 아셨을 거예요. 그런데도 한 번도 바로잡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루비 혼식에서 이분이 들은 말이 있어요. 이분의 아버지가 손님들 앞에서 발표하십니다. 마크가 뉴욕의 큰 법률 회사로 간다고, 나타샤도 함께 가니 결혼까지 하면 좋겠다고요. 그 말을 듣는 이분 얼굴이 놀란 사람 얼굴이에요. 본인도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요. 이 말에는 '계획'만 있고 '사람'이 없어요. 어디로 가는지, 누구와 가는지는 다 정해져 있는데 정작 이분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이분이 듣고 싶었던 말은 아마 아주 단순했을 거예요.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그 한마디요. 그날 그 비슷한 말을 해 준 사람은 부모도 나타샤도 아니고, 떨리는 목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난 브리짓이었습니다. 영국이 훌륭한 남자 한 명을 잃게 됐다고 더듬더듬 말하다가 끝을 맺지 못한 그 연설이요. 그 말을 듣고도 이분은 뉴욕행 비행기를 타십니다.
이분이 끝내 표현하지 못한 마음이 있어요.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야'라는 말입니다. 왜 못 하셨을까요. 이분이 자기를 변호하려면 옛 아내 이야기를 꺼내야 하고, 한때 친구였던 사람이 한 일을 입에 올려야 해요. 자기를 지키는 말이 곧 남을 고발하는 말이 되는 자리였던 거예요. 그래서 이분은 차라리 오해받는 쪽을 고르신 것 같아요. 미련해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이분의 품위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품위 때문에 정작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기를 보여 줄 기회를 계속 놓치셨어요. 설명하지 않는 것과 숨기는 것은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중요해요. 이분은 뉴욕에 가셨다가 돌아옵니다. 브리짓의 집 문 앞에서, 루비 혼식 말고 세례식이나 성인식에도 와 줄 수 있느냐고 농담처럼 묻고, 여기에 잊고 간 게 있어서 돌아왔다고 하세요. 그러고 나서 식탁에 펼쳐진 일기장에서 자기에 관해 적힌 험한 말들을 읽게 됩니다. 이분은 읽고, 나갑니다. 브리짓은 이분이 떠난 줄 알고 눈 내리는 거리로 뛰어나가요. 그런데 이분은 가게에서 새 일기장을 사 들고 서 계십니다. 처음 뷔페에서 이분은 남의 험담을 하는 쪽이었어요. 마지막에는 자기 험담을 읽는 쪽이 됩니다. 그리고 읽고도 떠나지 않아요. 저는 이게 이분께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적어 놓은 글을 보고도 곁에 남는 경험이요. 그 경험이, 이분이 한 해 내내 하지 못한 일을 대신해 준 것 같아요. 자기를 설명하는 일 말이에요.
혹시 주변에 이런 분이 계신가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설명하지 않는 사람, 오해를 받으면서도 입을 다무는 사람이요.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왜 말을 안 해, 답답하게.」 그 말은 이미 입을 닫은 사람을 한 번 더 닫게 만들어요. 대신 이렇게 말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네가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릴게. 그래도 네 쪽 이야기는 꼭 듣고 싶어."
설명하지 않는 사람은 말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말하면 누군가 다친다는 걸 알아서 그러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재촉이 아니라 기다려 주는 사람 한 명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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