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2026
나를 충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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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으면 충전, 떨어지면 말다툼
「재수술 전까지 딱 3개월만 날 충전해 줘요.」 이 대사를 듣고 열 편을 끝까지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두 부류로 나뉘실 것이다. 이 대사에서 바로 마음이 충전된 분과, 이 대사에서 바로 방전된 분. 나는 후자였고 내 친구는 전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 주말, 둘이 전부 본 뒤에 전화로 한 시간을 다퉜다. 아래는 그 대화를 기억나는 대로 옮긴 것이다. 작품에 관한 사실은 확인한 것만 적었고, 친구의 말은 친구가 한 말이니 민원은 친구에게 넣어 주시기 바란다.
나 설정부터 정리하자. 인공 심장에 배터리를 단 재벌 3세 백호랑이 있고,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드라마 작가 나보배가 있다. 톱스타 지은호 때문에 인파가 몰리고, 그 인파에 떠밀려 두 사람이 입을 맞춘다. 보배는 그날 처음으로 닿아도 감전시키지 않는 사람을 만난 것이고, 호랑은 그 뒤 병원에서 정전으로 배터리가 방전됐다가 보배 덕에 살아난다. 닿으면 충전, 떨어지면 방전. 그래서 3개월 동거 계약. 여기까지 틀린 것 없지.
친구 없어. 그런데 네 말투가 벌써 틀렸어. 「닿으면 충전」을 그렇게 서류 읽듯 읽으면 어떤 로코도 살아남지 못해.
나 그러면 병원 이야기부터 하자. 대기업 이사가 수술받는 병원에 번개가 쳤다고 비상 전력이 안 돌아서 인공 심장이 방전된다. 나는 그 장면에서 리모컨을 잠깐 내려놓았다. 전기가 끊긴 것은 병원인데 끊어진 것은 내 집중력이었던 것이다.
친구 그 장면 때문에 봤어. 환자복 입은 두 사람이 어두운 병원에서 다시 만나잖아. 보배가 「뭔가 느낌 없으셨어요? 찌릿, 짜릿?」 하고 묻는 거, 그게 이 드라마가 뭘 하려는지 다 말해 주는 거야. 비상 전력이 왜 안 돌았는지 따질 거면 전기 흐르는 여자는 어떻게 믿었어?
나 전기 흐르는 여자는 판타지고, 비상 전력은 시설 관리다. 판타지에는 민원을 못 넣어도 시설 관리에는 넣을 수 있다. 그래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겠다. 보배가 호랑을 「인간 고무장갑」이라고 부르는 대목은 구수했다. 고무장갑이라는 말을 그렇게 설레게 쓴 드라마를 나는 알지 못한다.
친구 봐, 너도 좋았잖아. 생일 파티 장면이랑 놀이공원 데이트는?
나 거기는 밥상이 다 차려져 있었다. 재벌 3세와 평범한 여자의 계약 연애에서 나올 수 있는 수순을 이 드라마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차린다. 계약서를 쓰고, 돈 얘기를 하고, 「이게 맞아요? 0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 같은 대사가 나오고, 같이 살면서 서로 흔들리고, 짝사랑하는 톱스타가 끼어들고, 결혼을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고, 사촌 하나가 뒤에서 일을 꾸민다. 로코를 몇 편 보신 분들이라면 2회에서 10회 줄거리를 받아 적으실 수 있을 것이다.
친구 그래서 편했어. 어떤 사랑을 할지 1회에서 다 보이는데도 다음 화를 끄지 못하는 게 이 장르의 재주야. 네가 「뻔하다」고 할 때 나는 「아는 맛」이라고 해.
나 아는 맛도 조리가 있어야 한다. 톱스타 지은호가 마스크 하나 쓰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보배를 데리러 가는 대목에서 나는 그 세계의 연예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도 못 했다.
친구 지은호는 이 드라마에서 제일 순한 사람이야. 보배 데뷔작으로 인연이 생겨서 1호 팬이 되고, 6화에서 고백하고, 거절당하고, 그러고도 물러서는 모습이 깨끗했어. 그 사람 때문에 호랑이 질투하는 걸 보는 게 중반의 낙이고.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로 갈렸다. 나는 지은호를 설정의 구멍으로 봤고 친구는 사람으로 봤다. 둘 다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장르의 묘한 점이라 하겠다.
나 기자회견 이야기를 하자. 사촌 최도윤이 일을 꾸며서 호랑이 횡령과 비리 의혹으로 기자회견에 서게 되고, 카메라 플래시를 무서워하는 호랑 앞에 보배가 나타나고, 호랑은 회견을 무사히 마치고 고백한다. 7화에서 둘은 진짜 연인이 된다. 여기까지는 나도 손을 들었다. 플래시가 무서운 사람에게 전기 흐르는 사람이 간다는 그림은 이 드라마가 제 설정을 가장 잘 쓴 자리였다.
친구 거기서 울었어. 나는.
나 그러면 마지막 회에서도 울었겠다.
친구 울었지. 도윤이 보배랑 윤 비서를 외딴 절에 가두고 호랑한테는 약 탄 술을 먹이고, 호랑이 배터리가 나가서 쓰러지고, 보배가 평생 숨겨 온 전기로 문을 부수고 나와서 호랑한테 전기를 전부 쏟아부어서 살리잖아. 그 뒤에 보배 몸에서 전기가 안 나오게 되고. 그게 이 드라마의 전부야. 자기를 괴물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그 힘으로 사람을 살리는 거.
나 나는 거기서 두 번째로 갈라섰다. 평생 숨겨 온 능력을 꺼내는 데 납치와 감금과 약 탄 술이 필요했다는 것이 아쉬웠던 것이다. 보배가 사이버 레커 영상 하나로 괴물 취급을 받고, 어머니가 「너를 먼저 생각해」라고 말해 주는 대목까지는 이 사람이 제 힘을 제 발로 받아들이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마지막 한 걸음을 악당이 떠밀어 준다. 그리고 그 악당은 음주운전과 경찰 폭행으로 잡혀간다. 열 편 내내 일을 꾸미던 사람의 퇴장치고는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친구 로코에서 악당 퇴장에 해명을 바라는 사람은 너뿐일 거야. 그리고 보배가 대전 부모님 집으로 말없이 내려갔을 때 호랑이 거기까지 찾아가서 떠나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하잖아. 그게 마지막 한 걸음이야. 악당이 아니라.
나 그 장면은 인정한다. 할머니 회장님이 일단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보배가 작가로 입봉해서 둘이 나란히 첫 방송을 보는 것도, 밥상 위의 마지막 반찬까지 다 차려 놓고 끝낸 것은 과연 성실했다.
친구 그래서 결론이 뭐야. 볼 만했어, 아니야.
나 맹장이 터진 사람이 수술도 안 받고 병실에 누워 있는 장면을 넘길 수 있는 분이라면 볼 만하다. 나는 넘기다가 걸렸고, 걸린 채로 열 편을 다 봤다. 걸렸는데 끝까지 봤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나도 알 도리가 없다.
친구 그게 충전됐다는 뜻이야.
나 아니, 그건 네 해석이고.
아무튼. 한 시간 다툰 끝에 합의한 것은 하나다. 윤 비서와 호랑이 주고받는 티키타카만큼은 둘 다 좋았다는 것. 나머지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직접 보시고 어느 쪽에 서실지 정하시면 되겠다. 닿으면 충전되고 떨어지면 방전된다는 이 드라마는, 보는 사람끼리도 그렇게 만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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